210430 청년 시국선언 발표

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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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청년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짧은 연명 모집 기간 동안 총 507명이 선언에 이름을 올려 주셨습니다.
투명가방끈 정래 활동가의 발언 내용과 선언문을 함께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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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대남 이대녀 아닌 대학입시거부자 김정래입니다. 저는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의 활동가이고 동시에, 말씀드린대로 2018년도 대학입시거부자이기도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18년 당시, 투명가방끈을 통해 대학입시거부선언에 참여했습니다. 실은 대학입시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을 줄이고 밥을 줄여가면서 공부하라던 교사의 말을 기억합니다. 자아실현은 교과서 속에서나 나오는 말이었습니다. 학생의 지상과제는 대학입시, 더 크게 말하면 스스로를 질 좋은 상품으로 만드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대학에, 시장에, 무엇보다 자본에, 자신을 상품으로 내던지라고 떠밀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상품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루를 살아도 상품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입시거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 보니 살기가 참 팍팍했습니다. 알바에만 6번 떨어지고 겨우 콜센터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콜센터 노동은 고됐습니다. 콜센터에서 상담을 하면서 잘못하지 않아도 죄송합니다 고객님, 이용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콜센터 휴게실에서 밥을 먹는데 창밖에 법무법인 사무실이 보였습니다. 주차되어있는 외제차가 보였습니다. 그게 너무 야속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같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사람의 가치는 같지 않았습니다. 소위 ‘못 배운 사람’과 ‘배운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은 전혀 같지 않았습니다. 고졸 노동자가 태반이었던 제가 다닌 콜센터는 최저임금 받고 일했고, 제가 보았던 창밖 법조타운 사람들이 받는 돈은, 저는 만져본 적도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학교에도, 기업에도 저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학력이 낮은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벌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본이 보기에 우리 학력 낮은 노동자는 좋은 상품이 아니어서입니다. 자본이 보기에 가방끈 짧은 노동자는 사람이 아니라 품질이 안 좋은 상품입니다. 기업은 노동자를 쇼핑합니다. 그러다 쓰고 버립니다. 교육은 그걸 부추깁니다. 기업이 쇼핑하기 좋게 학생들을 진열합니다. 학생은 노동자가 됩니다. 기업들의 쇼핑 대상이 됩니다. 저는 대학에, 기업에 자신을 팔고 싶지 않아 대학거부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에게 무엇이 돌아왔습니까. 저임금 감정노동이 돌아왔습니다. 저를 저질 상품, 그리고 낙오자라고 부르는 사회의 목소리가 돌아왔습니다.   



청년 세대가 공정을 요구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의 기회란 건 더 좋은 상품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버려지는 것도 받아들이란 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허울 좋은 공정사회가 아니라, 나를 인간으로 대하는 사회를 원합니다. 사람을 상품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는 사회를 원합니다. 일터는 나의 상품가치를 평가받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는 나의 상품가치를 쌓는 곳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권리를 누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권리는 돈을 주고 사고 팔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육은 무상화되어야 하고, 평준화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에게 학벌과 학력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점수를 매기는 교육과 사회는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어느 대학 나왔느냐, 대학은 나왔느냐를 따지면서 사람을 줄새우는 어줍잖은 공정이 아니라, 더 평등하고 더 차별없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하기에, 시국선언에 참여했습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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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국선언문



오늘의 시대는 실패했다. 세대가 아닌 시대를 교체하라



보수양당정치가 사회 모순 해결에 한계를 보이자, 세대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재·보궐선거가 지난 후 한국사회는 세대를 화두로 뜨거운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세대론은 시대와 체제의 문제를 세대의 문제로 협소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보수양당정치와 마찬가지로 대안이 될 수 없다.



청년세대는 세대론의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세대론은 청년세대의 문제를 담아내고 있지 않다. 시대의 모순은 세대가 아닌 불안정 노동자, 차별받는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빈민, 농민, 이주노동자, 동물 등 배제와 차별로 불안정과 불평등에 희생된 이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 역시 이러한 시대의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세대론은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복합적인 시대의 모순을 세대의 문제로 은폐한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한다고 해도, 자본주의 체제와 맞서지 않는 정치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을 일깨운 역사적 경험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요구는 세대교체도, 정권교체도 아닌 시대의 교체이다. 계급갈등을 노동조합 이기주의로, 가부장제의 문제를 성별갈등으로, 나이위계를 세대갈등으로, 주거권의 문제를 땅값과 시장활성화로, 기후위기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새로운 성장신화로 왜곡하는 기존 정치는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가 없다.



오늘의 시대는 위기의 시대이다. 탄소자본주의가 야기한 기후위기로 지구 생태계가 파괴되기 전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은 이제 6년 밖에 남지 않았다. 코로나19 역시 자본의 자연착취로 인한 기후재앙 중 하나였다. 동시에 코로나19는 시장경제를 마비시키며 모든 삶을 시장에 의존해왔던 사회 구조의 취약성도 함께 드러냈다. 이에 더해 시장경제가 양산한 양극화와 불평등, 계층사회는 과연 이 사회에서 무엇이 정의인지 반문케 하고 있다.



시대의 위기가 야기한 삶의 위기에 대한 정치적 대안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는 시국선언을 통해 시대적 과제를 설정하고, 대안을 요구할 것이다. 이제 구시대를 폐막하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올린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소수에게만 허락된 경쟁사회의 신화는 평범한 이들의 삶을 해결할 수 없다. 재산과 소득의 차이가 교육의 차이로, 교육의 차이가 학력·학벌의 차이로, 그리고 그것이 다시 일자리와 소득의 격차로 이어지며 삶의 질을 결정하는 불평등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역과 소득 등 조건의 격차가 명백한 현실에서 ‘기회의 평등’이나 ‘개인의 능력에 의한 공정한 경쟁’이란 허구적이다. 교육이 상품화되고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과정이 된 사회에서는 교육도 본래의 의미를 잃고 청년들의 삶도 경쟁 속에 피폐해지고 있다. 우리는 경쟁과 차별로 이루어진 교육과 취업의 과정을,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며 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과정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모든 사회의 출발선인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보편적 권리로 보장하며, 위계화 된 학벌을 평준화하고 학력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하며, 비정규직-정규직 등 노동과 삶에서의 구분을 없애야 한다.



하나. 우리 삶이 불안정하고 가난한 이유는 삶의 필수품을 시장에 거래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토지의 상품화는 평범한 이들에겐 주거권을 박탈하면서 소수에겐 불로소득을 보장한다. 토지, 교육, 의료, 식량과 같은 삶의 필수품은 소수 자본의 소유가 아닌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토지, 교육, 의료, 식량 등 삶의 필수품을 시장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되돌려 놓길 원한다. 사회의 공공성 강화를 통해 삶의 권리를 보장하라.



하나. 비성소수자, 비장애인 남성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정상성 바깥의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에서 구성원의 대다수는 경쟁의 장에 동등하게 올라설 수 없다. 특권적 소수만이 올라선 경쟁에서의 ‘공정’은 허상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정상성’ 바깥의 사람들을 열악한 지위에 놓고 착취한다. 자본주의는 ‘정상성’으로 분할된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우리의 재생산권과 경제권, 인권을 억압한다.



우리는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체제를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적 차별과 배제가 아닌 다양한 삶과 정체성이 보장되는 평등한 사회를 요구한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 역시 비성소수자-비장애인-남성에게만 허락된 보편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평등한 사회를 요구한다.



하나. 인류는 멸종을 향해 가고 있다. 성장과 이윤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자본주의가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현재 세계 소득 상위 10%가 온실가스의 절반을 배출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될 경우 미래는 분명하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재앙이 일상이 될 것이다. 세계적 흐름에 맞춰 문재인 정부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한다고 하지만, 문재인 정부 그린뉴딜의 실상은 그린펀드, 신녹색산업성장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를 반성하지 않는 기후위기 대응은 오히려 기후위기를 녹색성장이라는 또 다른 성장신화의 명분으로 삼고 있고, 그 과정의 고통은 농민과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는 정의롭지도 않고, 기후위기를 막아내기에도 불충분하다. 기후위기의 주범은 자본주의다. 우리의 요구는 기후변화가 아닌 체제전환이다.



2021년 4월 30일
청년 시국선언 참여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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