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대학거부선언: 한채림 "나는 객관식 교육을 부정한다."

나는 객관식 교육을 부정한다

한채림 선언문


 내게 세상은 생각보다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하루에 수십 장씩 풀어온 학습지와 시켜서 읽은 책들은 지금의 내게 스트레스였던 배경지식에 불과하다.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지식의 바다였고, 나는 그 지식들 중 유달리 국수사과 영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해야 했다. 이론, 또 이론.. 그리고 시험, 또 시험 그리고 방학. 매번 달력에 내가 앞으로 치러야 할 시험 개수를 적어놓고 검은 펜으로 다시 지우곤 했다.
 
나는 매번 다른 이들에게 꼰대에 지나지 않았다. 너 그렇게 공부하면 안 돼. 선생님께 예의를 갖춰야지. 대학은 안 갈 거니? 참으로 한심한 소리였다. 이제 그 정도 오지랖으로 그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그에 분노한 부모님에 의해서 돈을 벌어야 했으며 식당부터 청소까지 두루 아르바이트를 섭렵한 뒤에야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학교를 진지하게 다니던 얼마 전 나의 존재는 고작 흙 섞인 눈을 파먹고 빙수의 맛을 알았다고 하는 일개 멍청이였다.
 
학교에 있던 동안 많은 이들이 나를 서열 아래로 인식했다. 교사는 훈육과 통제의 대상으로 나를 봤고, 학생은 경계와 경쟁의 대상으로 나를 봤다. 대학 입시를 포기했다고 말하는 순간 아스팔트에 난 나무를 바라보는 듯 한 그들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마치 '왜 먼저 포기해? 난 시작도 안 했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졌다는 것처럼. 승패의 갈림길은 입시의 성공과 실패에, 사회적인 시선에 있다는 것처럼. 지금 나는 그들에게 '난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을 되돌려 보여주고 있다.
 
교사들은 내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 가방을 서슴없이 뒤졌고 화장품을 어른들의 전유물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앗아갔다. 몇몇은 욕을 했고 몇몇은 성희롱을 했으며 몇몇은 체벌을 했다. 흔한 일이었다. 우리는 돈을 지불하고 다니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곤 속도, 효율, 엉덩이와 어깨의 근육 뭉침뿐이었다. 그리고 사회의 기본이라며 가르쳐준 것이 복종이라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우리는 공부하고 있지 않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하는 소위 '근로자'로 길러지고 있다. 끈기와 복종으로 이루어진 밤샘 공부는 우리의 몸을 해치고 정신을 헤집어 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이다. 사실 그렇게 살다가 언젠가는 '학자금대출' 에 눌려 생전 처음 해 보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당신의 삶이 자유롭지 않은 이유는 남들과 똑같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한 일이 같으면 그들이 노력한 수준을 판단하기 쉬워지고 사람을 끌어들이기 쉬워진다. 그렇다. 당신은 판단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인정받고 판단 받고 싶어 하지 마라. 남들이 당신의 겉모습을 보고 1분 내에 판단하면 당신의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는 객관식 입시 교육을 반대한다.


2015년 11월 12일
한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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