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아홉 살 청소년이다. 나와 같은 청소년들은 대부분 지금쯤 수능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입시를 치르지 않고, 대학에 가지 않을 것이다.
이 나라의 입시경쟁은 지금 청소년들에게, 학생들에게, 사람이 아닌 기계의 삶을 강요하고 있다. 하루에 열 몇 시간씩 자리에 앉아 공부할 것을 요구한다. 먹고 자고 쉬는 시간조차도 입시공부를 위해 최소화하란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들과, 내가 지금 놀고 쉬고 싶은 마음은 모두 수능 끝난 뒤로 미뤄두란다. 옆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야 한단다. 옆 사람을 짓밟지 못한 사람은 패배자란다. 이 미친 레이스에서 뒤쳐진 사람은 불량품이란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는 입시만을 위해 살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나의 모든 권리와 행복을 ‘입시 이후’로 유예해둔 ‘미래의 주인공’도 아니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행복을 ‘유예’해도 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청소년들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미래 말고 지금 당장 여기에서 행복해지고 싶다. 그것이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입시경쟁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사람이 기계 취급받는 사회에서, 기계 취급으로부터의 ‘탈출’이 끊임없이 시도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입시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살하고 있다. 특히 매년 이맘때쯤이면 곳곳에서 ‘불량품’ 판정을 받은 사람들의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이젠 수능 때마다 “오늘은 또 몇 명이 죽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하고 싶다. 사람을 우수한 입시기계와 ‘불량품’으로 나누는 교육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 나라에서 그 어떤 사건사고보다도, 그 어떤 질병보다도 많은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이 미친 입시경쟁은 반드시 사라져야만 한다.
나는 지금, 입시경쟁의 줄 세우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기계로 살아갈 것을 거부한다. 나는 입시경쟁에 참여할 엄두도, 한 달에 수백만 원씩 하는 대학 등록금을 낼 돈도 없는 탈 가정 청소년이다. 배우는 것은 즐겁지만, 어디에 필요한지도 모를 내용들을 머릿속에 우겨 넣어야만 하는 입시는 배우고 싶지 않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생각을 행동에 옮기고 있는 청소년이다. 제대로 된 배움 없이, 그저 ‘사람대접’을 위해서, 미래에 그나마 나은 노동환경을 얻기 위해서 다녀야 하는 대학은 다니고 싶지 않은, 평범한 청소년이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앞으로 내가 어디를 가든 내게 꼬리표처럼 붙어 다닐 것이다. 입시경쟁에서 승리해야만, 대학을 나와야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이 미친 사회에서 나는 불량품 취급받을 것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다는 당연한 이야기는 “그러게 어릴 때 공부 열심히 하지 그랬냐? 는 말과 함께 무시당할지도 모른다. 사람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 대우를 당연하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이 미친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이 미친 입시경쟁 학벌주의 사회에 엿을 날리기 위해, 나는 불량품으로서 선언한다. 나와 같은 ‘불량품’들과 함께, 불량품 취급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말한다. 나는 불량품이 아니다. 나를 불량품 취급하는 불량 사회는, 이제 작작 좀 해라!
입시기계가 되길 거부하는 ‘불량품’의 선언
윤쓰리 선언문
나는 열아홉 살 청소년이다. 나와 같은 청소년들은 대부분 지금쯤 수능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입시를 치르지 않고, 대학에 가지 않을 것이다.
이 나라의 입시경쟁은 지금 청소년들에게, 학생들에게, 사람이 아닌 기계의 삶을 강요하고 있다. 하루에 열 몇 시간씩 자리에 앉아 공부할 것을 요구한다. 먹고 자고 쉬는 시간조차도 입시공부를 위해 최소화하란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들과, 내가 지금 놀고 쉬고 싶은 마음은 모두 수능 끝난 뒤로 미뤄두란다. 옆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야 한단다. 옆 사람을 짓밟지 못한 사람은 패배자란다. 이 미친 레이스에서 뒤쳐진 사람은 불량품이란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는 입시만을 위해 살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나의 모든 권리와 행복을 ‘입시 이후’로 유예해둔 ‘미래의 주인공’도 아니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행복을 ‘유예’해도 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청소년들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미래 말고 지금 당장 여기에서 행복해지고 싶다. 그것이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입시경쟁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사람이 기계 취급받는 사회에서, 기계 취급으로부터의 ‘탈출’이 끊임없이 시도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입시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살하고 있다. 특히 매년 이맘때쯤이면 곳곳에서 ‘불량품’ 판정을 받은 사람들의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이젠 수능 때마다 “오늘은 또 몇 명이 죽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하고 싶다. 사람을 우수한 입시기계와 ‘불량품’으로 나누는 교육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 나라에서 그 어떤 사건사고보다도, 그 어떤 질병보다도 많은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이 미친 입시경쟁은 반드시 사라져야만 한다.
나는 지금, 입시경쟁의 줄 세우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기계로 살아갈 것을 거부한다. 나는 입시경쟁에 참여할 엄두도, 한 달에 수백만 원씩 하는 대학 등록금을 낼 돈도 없는 탈 가정 청소년이다. 배우는 것은 즐겁지만, 어디에 필요한지도 모를 내용들을 머릿속에 우겨 넣어야만 하는 입시는 배우고 싶지 않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생각을 행동에 옮기고 있는 청소년이다. 제대로 된 배움 없이, 그저 ‘사람대접’을 위해서, 미래에 그나마 나은 노동환경을 얻기 위해서 다녀야 하는 대학은 다니고 싶지 않은, 평범한 청소년이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앞으로 내가 어디를 가든 내게 꼬리표처럼 붙어 다닐 것이다. 입시경쟁에서 승리해야만, 대학을 나와야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이 미친 사회에서 나는 불량품 취급받을 것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다는 당연한 이야기는 “그러게 어릴 때 공부 열심히 하지 그랬냐? 는 말과 함께 무시당할지도 모른다. 사람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 대우를 당연하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이 미친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이 미친 입시경쟁 학벌주의 사회에 엿을 날리기 위해, 나는 불량품으로서 선언한다. 나와 같은 ‘불량품’들과 함께, 불량품 취급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말한다. 나는 불량품이 아니다. 나를 불량품 취급하는 불량 사회는, 이제 작작 좀 해라!
2015년 11월 12일
윤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