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당한 내가 거부한다.
양지혜 선언문
1.
지금 이 순간, 나의 친구들은 수험장에 있다.
1년간 그들과 함께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수시 면접이나 실기를 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인간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장소였다. 평가의 대상이 되어, 자신의 상품성을 증명하는 과정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모의고사 점수를 받고, 그간 쌓아온 내신 성적을 확인하며, 내가 고작 이정도 가격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을까? 내게는 소중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 입시 앞에서는 평범하고 초라한 개인이 되었다. 누군가는 학교 안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물으며 괴로워했고, 누군가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왜 조건이 필요한지 의아해했다.
나는 이 순간, 나의 친구들과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탈락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수능을 보든 안보든 우리는 절망적이다. ‘세상은 지금 끝없이 선명한 미래’다.
2.
나는 학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입시를 포기하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더욱 그랬다. 학교에서 내게 주어진 자리는 오로지 책상과 의자뿐이었다. 그 곳에 앉아서 창문 바깥세상을 염탐하며 죽은 듯이 하루를 보냈다.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청소년세미나모임 세모에서 공부하며 학교 밖 세상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것,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웠다. 나를 옭아매는 학교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대학에 가서, 또 다른 시간표를 만나고 선후배 간의 위계에 시달리며 살고 싶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입시교육의 노예로 편입되고 싶지 않았다. 입시를 위해 당장의 내 삶을 유예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공간이 답답하고 불편했고, 내 삶을 내가 오롯이 만지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그러면서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날에는 속상했고, 시험기간에는 벼락치기를 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입시 교육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시험 점수 몇 점에 일희일비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모범생’이라는 칭찬을 듣는 게 불편해졌다. 내 안의 노예근성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불안감에 못 이겨 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고3이 되고 나는 내가 대학에 갈 수 없는 사람임을 알았다. 나는 입시와 어울리지 않고, 입시라는 긴 터널을 통과할 자신도 없었다. 매일 자신의 욕망을 짓누르고 다른 사람의 욕망에 맞추어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학교는 언제나 우리에게 겁을 준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낙오당할 거라고. 조금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이 경쟁에서 탈락하고 말 거라고. 그러나 탈락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탈락되지 않는 소수’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기 보다는 ‘모두가 탈락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시만을 위한 공간인 학교에서 나는 거부 당해왔다. 교실은 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앞으로도 이 사회에서 거부당하는 자리에 있을 것이다. 오늘로써 내가 탈락하지 않는 소수가 되기란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나는 거부당하는 위치에서 이 사회의 학벌에 의한 부조리들을 거부하며, 모두가 탈락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꿈꿀 것이다.
오늘, 나는 대학거부 선언을 한다. 거부당한 내가 거부한다.
2015년 11월 12일
양지혜
거부당한 내가 거부한다.
양지혜 선언문
1.
지금 이 순간, 나의 친구들은 수험장에 있다.
1년간 그들과 함께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수시 면접이나 실기를 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인간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장소였다. 평가의 대상이 되어, 자신의 상품성을 증명하는 과정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모의고사 점수를 받고, 그간 쌓아온 내신 성적을 확인하며, 내가 고작 이정도 가격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을까? 내게는 소중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 입시 앞에서는 평범하고 초라한 개인이 되었다. 누군가는 학교 안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물으며 괴로워했고, 누군가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왜 조건이 필요한지 의아해했다.
나는 이 순간, 나의 친구들과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탈락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수능을 보든 안보든 우리는 절망적이다. ‘세상은 지금 끝없이 선명한 미래’다.
2.
나는 학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입시를 포기하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더욱 그랬다. 학교에서 내게 주어진 자리는 오로지 책상과 의자뿐이었다. 그 곳에 앉아서 창문 바깥세상을 염탐하며 죽은 듯이 하루를 보냈다.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청소년세미나모임 세모에서 공부하며 학교 밖 세상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것,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웠다. 나를 옭아매는 학교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대학에 가서, 또 다른 시간표를 만나고 선후배 간의 위계에 시달리며 살고 싶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입시교육의 노예로 편입되고 싶지 않았다. 입시를 위해 당장의 내 삶을 유예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공간이 답답하고 불편했고, 내 삶을 내가 오롯이 만지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그러면서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날에는 속상했고, 시험기간에는 벼락치기를 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입시 교육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시험 점수 몇 점에 일희일비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모범생’이라는 칭찬을 듣는 게 불편해졌다. 내 안의 노예근성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불안감에 못 이겨 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고3이 되고 나는 내가 대학에 갈 수 없는 사람임을 알았다. 나는 입시와 어울리지 않고, 입시라는 긴 터널을 통과할 자신도 없었다. 매일 자신의 욕망을 짓누르고 다른 사람의 욕망에 맞추어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학교는 언제나 우리에게 겁을 준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낙오당할 거라고. 조금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이 경쟁에서 탈락하고 말 거라고. 그러나 탈락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탈락되지 않는 소수’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기 보다는 ‘모두가 탈락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시만을 위한 공간인 학교에서 나는 거부 당해왔다. 교실은 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앞으로도 이 사회에서 거부당하는 자리에 있을 것이다. 오늘로써 내가 탈락하지 않는 소수가 되기란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나는 거부당하는 위치에서 이 사회의 학벌에 의한 부조리들을 거부하며, 모두가 탈락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꿈꿀 것이다.
오늘, 나는 대학거부 선언을 한다. 거부당한 내가 거부한다.
2015년 11월 12일
양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