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대학입시거부선언] 졸리고 허무한 곳을 넘어서 _일움

졸리고 허무한 곳을 넘어서

 


제가 지금껏 학교를 다니며 분명히 느낀 것은, 학교는 졸리고 허무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긴 수업시간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 고요합니다. 교사의 목소리만이 교실을 가득 메웁니다.
어느 날 조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입시에서 다루는 지식만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몇 시간 째 귀에 꽂히며 웅웅대는 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건조하게 지문을 읊다가 자는 학생들에게 간간히 일어나라고 명령하는 목소리가 지겨워 참을 수 없었습니다. 쉬는시간, 점심시간이 되고 길었던 침묵을 비집고 터져 나오는 것은 고작 다양한 혐오 발언과 그것을 재빠르게 쫒는 웃음들뿐이라는 게 너무도 따분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왜 모인 걸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는 없을까? 지금 우리가 원하는 교육은 뭘까? 많은 질문들과 나름의 결론들이 있었지만, 학교에만 들어서면 저를 압도하는 고요와 고함들에, 제가 상상했던 전환들은 기억 저 편으로 사그라듭니다.
 
작년은 제가 정말 입시를 잘해내고자 했던 해입니다. 저는 한국 사회가 청소년의 몸에 요구하는 것들을 기꺼이 내면화했습니다. 저는 기계처럼 입시를 준비하려 들었고, 생각처럼 되지 않는 제 몸을 끊임없이 자책했고, 그러다 꾸역꾸역 책상에 앉았고, 여전히 기계같지 않은 제 몸에 우울해했습니다. 이럴 시간에 공부를 하지, 라고 또 자책하고 우울해하면서 저는 결국 한시도 제 마음에 솔직할 수 없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저는 공부할 수도, 쉴 수도 없는 공간에서 그저 멍하니 떠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허무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능을 치고 나서 몰려온다는 알 수 없는 허무함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습니다. 한국의 학생들 대부분은 그 허무함에 질린 날들을 견뎌내며 살아갑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허무함에 질린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교육부를 보며, 교육부라는 곳이 참 게으르고 폭력적인 공간임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제는 ‘입시 성공’이라는 것이 선택이 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상식이 되어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입시에 죽고 사는 것은 미련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원하는 것 하고 살아야지’ 라는 말은 ‘일단 대학은 가야지’ 가 되고, 그 말은 ‘가려면 좋은 대 가야지’, ‘인서울은 해야지’. ‘서울대 갈 각오로 해야지’. 가 되고, 나중에는 지역별로, 성적별로 ‘oo대는 가야지’. 에 다다릅니다. 맹목적으로 바라야 하는 것들은 끊임없이 주어지며, 청소년으로서의 '지금'이 모조리 삭제될까지 그 목표들은 고요하고 숨 막히게 우리들을 조여옵니다.
 
저는 제 '지금'을 지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성인으로 ‘거듭나기까지’ 묵묵히 지금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시험 준비를 하지 않았고, 그러자 제가 막연하게 두려워하고 타자화했던 것들이 제게 하나둘씩 다가왔습니다. 저는 제가 입시를 준비하지 않을 때, 제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순식간에 바뀌는 교사의 시선, 표정, 말투를 압니다. ‘입시 준비를 위한 일정을 착실히 따라가지 않는 학생답지 못한 학생’이라는 낙인은 끈질기게 저를 쫒아옵니다.
 
저는 학교가 학생들의 삶을 짓누르려들수록, 더 끈질기게 통쾌한 전환들을 상상하려고 합니다. 저는 대학 입시 거부를 시작하며 제 자신을 오롯이 마주해가고 있습니다. 대학 입시 거부자로 학교에 남아있으면서는 조용하고 촘촘하게 학생들을 가두던 것들을 하나하나 마주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가 죽을만큼 공부하래? 공부해두면 다 도움 돼!’ 라는 무신경한 말로 제 시간들을 버리려 들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지금 학생들의 삶에 이상함을 느끼고, 한국의 교육이 엇나가고 있음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고, 비로소 입시 경쟁 아래에서 죽어나간 많은 마음들을 위로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제는 우리를 옭아매던 경쟁의 굴레에 이별을 고하고 싶습니다.
 


2020년 12월 3일
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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