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매년 수능 날마다 '고졸'인 내가 하는 일

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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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수 기자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아래 수능) 날이 다가올 때면 수험생을 향한 응원과 격려의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긴장하지 말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침착하게 ○번 답안을 고르라'는 이야기부터 '수능 당일에는 소화 잘 되는 음식을 도시락으로 준비해야 한다' 같은 조언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시험 보느라 수고한 수험생들을 위한 인생 선배의 한마디'는 그동안 너무 자주 반복되어 왔기에, 이제는 '수험생들에게 오늘 꼭 한 마디 해주고 싶어서 못 견디는 당신을 위한 한 마디, 충고 좀 하지 마라'라는 말도 들릴 정도다.

이런 말들이 누구에게나 익숙할 만큼 한국 사회에서 수능은 매년 어김없이 진행되는 일상의 풍경이자, 많은 사람이 겪게 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수능이 반드시 '모두' 겪는 일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이 의외로 쉽게 잊히곤 한다. 수능을 대하는 엄숙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고3 시절 수능을 보았고 대학에 1년 다닌 적이 있기는 하지만, 졸업하지 못하고 자퇴하였기에 나의 최종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다. 그러므로 내가 수험생들을 위해 해줄 조언 같은 건 아쉽게도 좀처럼 떠오르질 않는다. 나 역시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다만 수능 당일이 되면 내가 몇 년째 해오는 일이 있다. 해마다 수능 날 아침, 나는 조용히 휴대전화를 들어 특정 전화번호(#2540-2011)를 입력하고 문자 메시지를 작성한다. 입시경쟁교육·학력학벌차별사회·대학중심주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시민단체 '투명가방끈'에 문자 후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문자 1건에 3천 원,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몇 통의 문자 메시지로 응원의 말들을 보낸다. 숨 막힐 정도로 수능의 무게에 짓눌릴 수험생들을 향한 격려가 온종일 쏟아지는 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 한 사람이나 나처럼 고졸 딱지를 달고서 세상을 살아갈 많은 이들의 뒷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은 잠깐일 뿐, 그 이후에도 삶은 계속 이어진다. '수능 만점자'가 아닌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만점자 인터뷰'가 수능 후 가장 중요한 뉴스처럼 보도된다. 이런 세상에서 '수능'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건 언제까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게 될까?


수능 날 아침 수험생들을 향한 응원의 말 이후 시험 종료가 다가올 즈음 이어지는 것은 '올해는 제발'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우려의 목소리다. 시험을 끝낸 수험생이 성적을 비관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수능 다음날 뉴스에서 종종 들려오기 때문이다.

수험생을 응원하면서도 그들이 심한 압박감에 짓눌리지 않기를 바란다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거나 시험에 응시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수험생을 응원하는 마음'과 '고졸을 응원하는 행동'이 모순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일생일대의 시험이니 반드시 잘 보라'는 응원과 '그까짓 시험 때문에 비관적인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들이야말로 너무 상반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 전자의 말과 후자의 말이 같은 무게로 공존하려면, 수능 이외에 다른 길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17일 <한겨레>에 투명가방끈 활동가가 기고한 글 "어떤 시험에도 '인생이 걸려서'는 안 된다"에 크게 공감한다.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한 사람 앞에 놓인 길'이 낭떠러지가 아니라는 사례를 늘려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투명가방끈을 소액이나마 후원하는 일이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라고 믿는다. '그깟 시험 때문에 죽지 말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수험생들이 시험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8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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