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학보] 청년 여성의 눈으로 본 「제21대 대선」 : ‘나중’을 넘어 ‘다음’으로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CGi-THjVhQ
글: https://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73731

제21대 대통령 선거는 시민의 손으로 만들어낸 역사적 순간이자, ‘정치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결과다. 지난 5개월 동안 광장에서 사람들은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사회로의 대개혁을 외쳤다. 그러나 제21대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지금, 후보들은 서로를 향해 비난 공세만 쏟아낼 뿐 앞으로의 세상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제 혐오 정치나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 아닌, 시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을 구체화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이대학보는 광장을 채웠지만 금세 묻힌 변화의 목소리 속 ‘청년 여성’에 주목한다. 대학생, 취업 준비생, 그리고 학교 밖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청년 여성들은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들은 어떤 삶을 꿈꾸고, 어떤 사회를 원하며,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가? 청년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제21 대선, 그 속에 담긴 한국 사회의 과제와 가능성을 기록한다.
‘안 뽑는데 어떻게 취업하나요’, 선거용 청년 일자리 정책
박소영(정외·21)씨는 근본적인 노동 구조의 개혁에 대한 경각심을 가진 새로운 정부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소영 취재미디어기자
올해 2월 졸업유예를 한 박소영(정외·21)씨는 취업 준비생이다. 그는 우리대학 언론고시반(미디어 커리어 센터·MCC)에서 기자가 되기 위해 삼면이 막힌 책상 앞에 앉아 매일 신문을 읽는다. 취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박씨는 스스로를 ‘백수’라 부른다. 그는 운 좋게 언론고시반에 합격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학교의 지원이 없었다면 “맨몸으로 전쟁터에 떨어진” 기분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인생에 공백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한 그는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불안하기만 하다.
지난 정부는 청년 일자리 지원을 위해 2022년에는 구직자 도약보장 패키지를, 2023년에는 미래내일 일경험 사업을 시행했다. 청년 일자리 관련 지원 사업은 직무역량을 중시하는 기업 채용 방식에 맞춰 청년에게 일경험을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박씨는 이를 “실질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청년 세대의 표심을 노린 선거용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박씨는 청년 고용의 가장 큰 문제로 신입 채용을 꺼리는 기업 행태를 꼽았다. 많은 기업이 경력 채용 또는 비정규직 채용만 하거나, 심지어 채용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간혹 채용이 있어도 모집 인원이 턱없이 적다. 박씨는 “신입을 안 뽑는데 어떻게 취업을 할 수 있냐”며 회의감을 토로했다.
그는 청년 실업 관련 정부 정책에 전혀 기대를 걸지 않는다. 여러 정부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지만 여전히 청년 일자리 문제는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근본적인 노동 구조의 개혁에 대한 경각심을 가진 새로운 정부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학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
학력차별철폐운동단체 ‘투명가방끈’의 활동가 난다(활동명)씨는 대학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을 원한다. 김지수 취재미디어기자
학력차별철폐운동단체 ‘투명가방끈’의 활동가 난다(활동명)씨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등수로 사람을 나누는 게 일상화된 학교에서 답답함과 불안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퇴 후에도 나이 대신 학번을 묻고, 이력서에 대학 전공을 써내야 하는 현실은 그에게 ‘당연함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소외감을 안겼다. 입시 아니면 취업만을 목표로 하는 현행 교육 제도 속에서 그가 기댈 수 있는 공적인 시스템은 거의 없었다.
난다씨는 “성취를 벗어난 교육 과정을 상상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지, 누구와 논의할 것인지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 교육 정책과 발전 계획 등을 논의하는 국가교육위원회에는 2025년 5월 기준 청년 2명이 포함돼 있고, 청소년은 없다. 난다씨는 “비진학 청년과 청소년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은 채 교육이 소수의 입장에서만 논의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능력에 따른 차별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를 완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사회적 배려 대상자 등 교육 약자와의 동행을 통해 희망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는 ‘희망사다리교육’ 정책에 관해 그는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정말 괜찮은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 평준화 역시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는 대학 서열에 따라 “어떤 사람은 위에 있고 어떤 사람은 아래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능력주의적 체제를 바꾸기 위함이다. 대학은 개인의 서열을 나타내는 곳이 아니라 배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 평준화가 실질적으로 의미 있으려면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와 사회 안전망의 지역 평준화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난다씨는 대학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를 바란다. 그는 정해진 입시와 직업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은 결국 능력주의로 인한 차별을 명시하고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으로 실현된다고 믿는다.
권리의 연결성, 혐오를 넘어 연대의 정치로
우리대학 장애인권 자치단위 ‘틀린그림찾기’의 명(활동명, 사회·24)씨는 “권리는 파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소영 취재미디어기자
우리대학 장애인권 자치단위 ‘틀린그림찾기’에서 활동하는 명(활동명, 사회·24)씨는 지난 12월부터 꾸준히 윤석열 퇴진 집회를 포함한 시위에 참여했다.
명씨는 윤석열 정부가 내건 생산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생산성 담론’의 폭력성을 비판했다. 4월28일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협상의 대상이 아닌 처벌의 대상”이라며 ‘전장연 방지법’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명씨는 지하철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을 태우는 공간이라 설명하며, “사람들이 지하철이 지연될 때 불편을 호소하는 것은 생산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생산성 발휘에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불편함과 민폐, 나아가 폭력으로 프레임화하는 이전 정부의 태도는 결국 약자 혐오를 공고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권리를 파이의 개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률적인 등급에 따른 지원의 차등은 권리를 뺏고 빼앗기는 문제로 인식하게 한다. 특히 등록 장애인 중심의 지원 제도는 결국 끊임없이 자신의 장애를 증명하도록 만들며 이중적인 혐오를 생산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은 등록 장애인이 아닌 경우가 많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명씨는 누군가의 불편에 대한 지원은 등록이 아니라 개별적 불편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해방은 연결돼 있다’는 슬로건을 인용하며 권리의 희미한 경계와 관계적 의미를 강조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 차별금지법 등 지금까지의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개인의 교차성을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 명씨는 별개처럼 보이는 다양한 권리가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려면 국가가 나서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 대권 주자도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법을 고심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신경다양성: ADHD, 자폐스펙트럼장애, 학습장애, 지적장애 등 뇌신경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다름을 생물적 다양성으로 인식하는 관점
[이대학보] 청년 여성의 눈으로 본 「제21대 대선」 : ‘나중’을 넘어 ‘다음’으로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CGi-THjVhQ
글: https://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73731
제21대 대통령 선거는 시민의 손으로 만들어낸 역사적 순간이자, ‘정치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결과다. 지난 5개월 동안 광장에서 사람들은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사회로의 대개혁을 외쳤다. 그러나 제21대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지금, 후보들은 서로를 향해 비난 공세만 쏟아낼 뿐 앞으로의 세상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제 혐오 정치나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 아닌, 시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을 구체화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이대학보는 광장을 채웠지만 금세 묻힌 변화의 목소리 속 ‘청년 여성’에 주목한다. 대학생, 취업 준비생, 그리고 학교 밖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청년 여성들은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들은 어떤 삶을 꿈꾸고, 어떤 사회를 원하며,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가? 청년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제21 대선, 그 속에 담긴 한국 사회의 과제와 가능성을 기록한다.
‘안 뽑는데 어떻게 취업하나요’, 선거용 청년 일자리 정책
박소영(정외·21)씨는 근본적인 노동 구조의 개혁에 대한 경각심을 가진 새로운 정부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소영 취재미디어기자
올해 2월 졸업유예를 한 박소영(정외·21)씨는 취업 준비생이다. 그는 우리대학 언론고시반(미디어 커리어 센터·MCC)에서 기자가 되기 위해 삼면이 막힌 책상 앞에 앉아 매일 신문을 읽는다. 취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박씨는 스스로를 ‘백수’라 부른다. 그는 운 좋게 언론고시반에 합격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학교의 지원이 없었다면 “맨몸으로 전쟁터에 떨어진” 기분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인생에 공백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한 그는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불안하기만 하다.
지난 정부는 청년 일자리 지원을 위해 2022년에는 구직자 도약보장 패키지를, 2023년에는 미래내일 일경험 사업을 시행했다. 청년 일자리 관련 지원 사업은 직무역량을 중시하는 기업 채용 방식에 맞춰 청년에게 일경험을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박씨는 이를 “실질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청년 세대의 표심을 노린 선거용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박씨는 청년 고용의 가장 큰 문제로 신입 채용을 꺼리는 기업 행태를 꼽았다. 많은 기업이 경력 채용 또는 비정규직 채용만 하거나, 심지어 채용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간혹 채용이 있어도 모집 인원이 턱없이 적다. 박씨는 “신입을 안 뽑는데 어떻게 취업을 할 수 있냐”며 회의감을 토로했다.
그는 청년 실업 관련 정부 정책에 전혀 기대를 걸지 않는다. 여러 정부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지만 여전히 청년 일자리 문제는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근본적인 노동 구조의 개혁에 대한 경각심을 가진 새로운 정부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학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
학력차별철폐운동단체 ‘투명가방끈’의 활동가 난다(활동명)씨는 대학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을 원한다. 김지수 취재미디어기자
학력차별철폐운동단체 ‘투명가방끈’의 활동가 난다(활동명)씨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등수로 사람을 나누는 게 일상화된 학교에서 답답함과 불안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퇴 후에도 나이 대신 학번을 묻고, 이력서에 대학 전공을 써내야 하는 현실은 그에게 ‘당연함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소외감을 안겼다. 입시 아니면 취업만을 목표로 하는 현행 교육 제도 속에서 그가 기댈 수 있는 공적인 시스템은 거의 없었다.
난다씨는 “성취를 벗어난 교육 과정을 상상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지, 누구와 논의할 것인지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 교육 정책과 발전 계획 등을 논의하는 국가교육위원회에는 2025년 5월 기준 청년 2명이 포함돼 있고, 청소년은 없다. 난다씨는 “비진학 청년과 청소년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은 채 교육이 소수의 입장에서만 논의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능력에 따른 차별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를 완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사회적 배려 대상자 등 교육 약자와의 동행을 통해 희망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는 ‘희망사다리교육’ 정책에 관해 그는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정말 괜찮은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 평준화 역시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는 대학 서열에 따라 “어떤 사람은 위에 있고 어떤 사람은 아래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능력주의적 체제를 바꾸기 위함이다. 대학은 개인의 서열을 나타내는 곳이 아니라 배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 평준화가 실질적으로 의미 있으려면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와 사회 안전망의 지역 평준화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난다씨는 대학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를 바란다. 그는 정해진 입시와 직업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은 결국 능력주의로 인한 차별을 명시하고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으로 실현된다고 믿는다.
권리의 연결성, 혐오를 넘어 연대의 정치로
우리대학 장애인권 자치단위 ‘틀린그림찾기’의 명(활동명, 사회·24)씨는 “권리는 파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소영 취재미디어기자
우리대학 장애인권 자치단위 ‘틀린그림찾기’에서 활동하는 명(활동명, 사회·24)씨는 지난 12월부터 꾸준히 윤석열 퇴진 집회를 포함한 시위에 참여했다.
명씨는 윤석열 정부가 내건 생산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생산성 담론’의 폭력성을 비판했다. 4월28일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협상의 대상이 아닌 처벌의 대상”이라며 ‘전장연 방지법’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명씨는 지하철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을 태우는 공간이라 설명하며, “사람들이 지하철이 지연될 때 불편을 호소하는 것은 생산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생산성 발휘에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불편함과 민폐, 나아가 폭력으로 프레임화하는 이전 정부의 태도는 결국 약자 혐오를 공고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권리를 파이의 개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률적인 등급에 따른 지원의 차등은 권리를 뺏고 빼앗기는 문제로 인식하게 한다. 특히 등록 장애인 중심의 지원 제도는 결국 끊임없이 자신의 장애를 증명하도록 만들며 이중적인 혐오를 생산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은 등록 장애인이 아닌 경우가 많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명씨는 누군가의 불편에 대한 지원은 등록이 아니라 개별적 불편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해방은 연결돼 있다’는 슬로건을 인용하며 권리의 희미한 경계와 관계적 의미를 강조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 차별금지법 등 지금까지의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개인의 교차성을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 명씨는 별개처럼 보이는 다양한 권리가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려면 국가가 나서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 대권 주자도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법을 고심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신경다양성: ADHD, 자폐스펙트럼장애, 학습장애, 지적장애 등 뇌신경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다름을 생물적 다양성으로 인식하는 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