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혜원 발언문>
안녕하세요 투명가방끈 상임활동가 연혜원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날이 찾아왔고, 모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수능 잘보세요, 수능 화이팅입니다 인사를 건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인사가 진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 궁금합니다. 정말 그 끔찍한 시간들을 잊어서 그런 인사를 건네는 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제는 남일이라 그렇게 편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지요.
우리가 처음 경쟁을 배우는 곳이 학교라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닌가요? 수능이란, 학교교육이 곧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과정이며, 그러므로 학교는 우리를 줄을 세워도 괜찮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국가적인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얘기가 저한테는 정말 반사회적으로 느껴집니다. 사회는 같이 살아야 하는 곳인데, 그럼 학교가 가르쳐줘야 하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함께 사는 법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수능이 계속 존재하는 이상, 학교는 영원히 경쟁을 가르치는 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능이 사라져야 경쟁이 아닌 교육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수능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시험 따위 때문에 고통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모두 시험 그 이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감히 수능으로 사람을 줄 세우고, 사람을 평가하지 마십시오. 교육의 역할을 그런 식으로 축소하지도 마십시오. 저는 수능이 얼마나 폭력적인 제도인지 영원히 기억하고, 매년 이야기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일움 발언문>
영원히 불안할 우리의 밤을 위하여
안녕하세요. 2020년, 제작년 수능날에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한 일움입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현실에 오픈마이크 데이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대구지역에서 청소년 인권 운동을 이어오고 있고요. 현재 고3이라 수능 원서 사진은 졸업 앨범을 찍다 같이 찍었는데, 원서 접수는 하지 않았어요. 교사도 이제 절 포기하고, 학교도 저를 포기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해방이 되었을까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계속 계속 울고 싶어요!
우선 수능을 저는 안 치는데도 제 학교에 들어찰 수험생 분들을 생각하니까 저는 제 심장이 다 떨리는 것 같아요. 다들 저처럼 떨려서 습관적으로 괜찮아. 수능 대박 날거야. 파이팅. 이런 말들을 내뱉는데요. 우리들의 불안한 밤을 간편하게 위로하기에는 성공 기원이 딱이니까 다들 그러시는 거 같아요. 근데 그런다고 수능이 다 대박나나요? 앞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학에 가서 원하는 교육을 받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나요? 그게 아닌데, 말이 좋다고 뱉어놓으면 그게 얼마나 가닿을 수 있을까요? 수능? 할 수 있어. 하면 어 그래. 네 감사합니다. 하고 개개인의 친절한 사람들의 선의는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든 잠은 혼자 드는 거잖아요. 그 불안 어떡할 거에요. 자다가 과호흡오고, 수능장 가서 공항 올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또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발생할거고 발생하고 있을텐데. 이거 어떡할 건데요. 저는 우리가 이런 집단적 정신재난 상태인 것에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한가지 웃긴 것은 수능이 끝나고 난 후인데요. 자기학대, 자기착취를 12년 내내 학습시켜놓고 해방이라고 떡 내놓으면 누가 편히 쉴 수 있나요? 저는 아직도 자기학대에 중독되어있어요. 조금이라도 쉬거나 게으른 모습이 스스로에게 포착되면 스스로 못 견뎌하고, 자해적 사고를 하고. 혹은 끝없이 스스로를 방치하다가 무기력의 악순환에 시달리고요. 저만 이런 게 아니고, 사회적 현상이고, 우리가 이거 집단 소송해볼 수도 있는 건이죠!
제일 어이가 없는 건, 꿈을 키우라고 하면서, 왜 가로막고 계십니까? 좀 비진학자들을 위한 길을 앞장서서 터보세요. 예를 들면 저는 수어통역사가 되고 싶은데,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으면 유리하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따려면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고, 대학 졸업장을 따려고 한다면 초중고등학교 내내 입시준비를 했어야 하는 거에요. 근데 결국 이 루트가 말 잘 듣는 사람 길러내는 루트잖아요. 아무 쓸모도 필요도 못 느끼는 입시 경쟁에서 이겨야 사회복지 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거에요. 입시 경쟁에 몸 담지 않은 사람에게는 징벌처럼 아무런 전문 교육이 주어지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루트가 극히 드물어요. 세상이 아주 괘씸하죠.
여러분들 정말 수고하셨다고 말하고 싶어요. 수능 끝나고가 아니라, 16일 밤과 17일 새벽을 건너는 여러분들, 무수한 밤을 건넜을 살아남은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전합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우리가 멈춰서서 자기비하 하고 채찍질하는 법밖에 못 배웠지만요, 늦게라도 멈춰서보고, 심호흡해보고, 좀 쉬어봅시다. 언제라도 쉴 수 있는 거라고 우리가 주장하면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오겠지요.
그런 세상에서 저는 그래도 잘 먹고 잘 살아보려고 합니다. 특히 저는 요즘 세오를 먹여살리려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세오는 올해 5월 11일부터 저와 함께하게 된 고양이에요. 세오와 저의 삶은 이제 시작인 것 같거든요? 세오랑 함께 있으면 세오가 너무 게으르고 팔자 좋아보여서 막 질투가 나요. 세오는 카페라떼 거품같은 얼굴을 하고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기를 항상 제게 요청하는데요. 제가 세오랑 좀 더 놀 수 있으면 좋겠고. 제가 일강박을 좀 내려놓고 싶어요. 항상 쫒기듯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비진학자인 댓가로 항상 더 많은 노력에 대한 강박에 시달려서 어떤 쪽으로든 일을 많이 가져가고 싶어하는데, 안 좋은 습관은 이제 버리고 싶어요.
좀 느리고 여유 있게 살면 안됩니까!! 놀 거리 없는 거 아니잖아요. 언제까지고 인간이 죽어라 일해야 하는 시대도 아니잖아요. 사회적 안정망을 위한 재원 충분히 확보 가능하잖아요. 사회가 사람들을 위해서 책임을 다 했으면 좋겠어요. 빨리 수능이 절대평가화되고, 대학이 무상화평준화되고, 기타등등 입시경쟁교육 폐지를 위해 이것저것 보장되면 좋겠네요. 공부가 짜증나서 울어도 인생이 힘들어서 울어도, 시험이 두려워서, 입시경쟁이 조여와서 울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 같이 우리의 안식과 입시 경쟁 폐지를 위한 구호를 한 번씩 외쳐주시면 좋겠습니다. 뒷 구호 삼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양이랑 놀시간을 보장하라! 입시경쟁 폐지하라!
<피아 발언문>
하고싶은 말을 다 적었다. 말이 좀 많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7년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한 피아입니다.
대학거부선언 이후 5년. 그 시간동안 겪은 변화.
일단 대표적으로 저는 mbti 에서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무려 제일 앞 글자가 바뀌는. 해가 지날수록 점점 퍼센테이지가 E에서 I로 향하더라고요. 저는 청소년 때부터 늘 압도적인 E를 차지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반반에 가깝습니다. 조금 더 풀어 설명하자면 타인에 의한 경계심과 피로가 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관계에서의 신중함이 커졌다고 볼 수 있고, 다르게 말하면 피해의식과 긴장이 늘었다는 뜻이겠다 싶어요. 활동보다는 집에 박혀 휴대폰과 함께 잔잔하게 우울을 씹는 시간이 더 편해졌습니다. 내가 아는 범위의 사람들을 넘어선 새로운 이들을 반기지 않게 되기도 했고요.
그리고, 불안력이 대폭 증가했습니다. 대충 이런거에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앞선 걱정들이 무한대로 늘어났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구인구직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원하는 직종을 검색해요. 그리고 대부분의 곳에서 특정 자격증이나 대학 학위를 필수 학력으로 요구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자격증이나 학점은행제를 따는 루트를 상상하기기 시작합니다. 그 루트의 기간은 머릿속에서 1,2년이 우습게 건너뛰어집니다. 자격증을 따려면 먼저 대학 학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학점은행제를 먼저 따고... 그 다음에 자격증을 따고.. 그러다 이제 4년에 가까운 빡센 일정을 계획하는 순간 저는 좌절하기 시작합니다. 그 시간동안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며, 그렇게까지 돈과 시간과 힘을 들이는게 나에게 가능한 일이긴 할까 하는 생각에 시달리면서요. 그렇게 상상에 빠진지 30분 만에 결국은 절망하고 그냥 굶어죽는게 제일 낫겠군 하는 땅굴로 달려갑니다. 사실 요 근 1년간 거의 그런 식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해마다 더 강렬해지는 안정적임에 대한 갈망입니다. 원래부터 그런 기질이 있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비청소년이 된 이후 여러 알바자리에서 탈락되는 경험을 하면서 더 공고해진 것 같아요. 저는 음식점, 카페, 편의점, 술집, 빵집 등 다양한 알바를 전전했는데, 대부분 길어도 6개월을 채 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 무리와 문화적 차이로 어울리기가 어렵거나, 낮은 임금에 비해 고강도로 주어지는 노동을 견딜 수 없거나, 상사의 갈굼에 못이기거나, 임금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거나, 앉을 자리를 감히 찾을 수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 못이기거나,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알바몬은 들여다보기도 싫은 지경이 되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일터에서 탈락되는 경험을 겪을 때마다 스스로가 이 사회와 너무 안맞는, 불화하고 나약한 사람이라는 자괴감과 열등감이 매순간 업그레이드 되어 저를 괴롭힙니다.
사실 앞서 말씀드린 이 변화들은 투명가방끈에서 활동할 때보다 올해 가졌던 안식년이 좀 더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소속을 잃고 집에 혼자가 되니까 많은 것을 안게 되더라고요. 하튼 이 변화들은, 어쩐지 증상이라고 불러야할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망가져가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 중에서 제 대학입시거부선언문을 보신 분이 계신가요? 저는 당시에 소설을 적었었는데. 그 소설은 제가 학교에 생활하면서 어떤 장면들을 접했고, 그 장면들이 어떻게 나를 위협해왔는지를 묘사한 내용이었는데요. 소설 속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학교를 뛰쳐나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소설을 마무리내면서, 저는 제 인생에서 더 이상 이런 고통의 고리를 끊어버리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을 돌아보니, 떠오르는 몇몇 장면들에서 저는 비슷한 채찍을 받으면서 고통받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교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저는 거대한 학교같은 공간에서 고통받는 학생이 아닐까 싶은 거예요. 나와 맞지 않는 규칙들 속에서 허우적대고, 불화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요.
그래서 저는 이어지는 맥락으로, 수능철이 되면 sns에 접속하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쏟아지는 수능 대박, 힘내세요 같은 말들이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말들을, 심지어 정치인들까지도 덕담처럼 보내는 현실에 분노가 솟기도 한데, 요새는 더 힘들게 느껴지는 말이,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라거나, ‘나와봤지만 정말 의미 없다’ 같은 말이에요. 혹은 ‘전 대학을 안갔지만 잘 살고 있어요.’ 같은 말들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접할 때, 어쩐지 마음이 비뚤어집니다. 정말?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mbti가 E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튼튼하지 않은 사람에게, 지지해주는 부모가 없는 사람에게도 대학 안나와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어?
얼마 전에 제가 아는 장애 쪽에서 활동하시는 활동가 분께 일자리를 제안받은 적이 있어요. 활동지원사와 장애당사자를 연결하는 상담 직원 같은 거더라고요. 제가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제안해주셨는데, 그 조건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더라고요. 어 저는 자격증이 없는데요. 하니까 죄송하다고 그럼 어렵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그 날 저녁에 또 알바몬을 켰어요.
알바 자리만 전전하고, 그마저도 노동조건이 사장바이사장으로 뽑기하듯이 다르고, 고졸 내지 그 이하의 학력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일터를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현실에, 운 좋게 국가의 지원으로 일자리를 구해도 1년 계약직이 전부인 세상에, 심지어는 뉴스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을 보면서, 정말 대학이 별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선택할 수 있는 일터의 급이 아예 달라지는 이런 현실이요. 그리고, 대학이 그 사람의 능력을 증명하는 지표로 작동하기도 하지만, 또 대학이 단순히 그런 곳이기만 한가요? 대학은 비슷한 환경의,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의 장이고 많은 기회가 오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것은 또래의 문화를 접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소한 예시로, 사람들과 모이는 자리에서 술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고, 적은 인스타 좋아요나, 더 적은 친구들과 같은 것이겠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치졸하고 옹졸한 마음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제가, 우리가 겪는 불행과 불안은 대학 비진학이라는 결정과 관련이 없을 수 없는데, 왜 사람들은 이 사회가 갖는 대학의 위치라는 문제에 대해 더 중요하게 목소리 내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수능철만 되면 응원과 격려가 쏟아지고, 등급에 따라 줄 세워지는 학생들과, 그 이후의 인생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대학은 선택이라느니 등급은 당신을 증명하는 모든 것이 아닙니다 같은 허울 좋은 소리나 하고, 왜 사람들은 대학 비진학과 연결된 많은 노동, 생계, 교육의 문제에 더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목소리를 내지는 않을까. 대학과 연결된 학생들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지않을까. 투명가방끈이 하는 대학거부선언과 그 운동은 왜 낙오자들의 답 없는 투쟁으로 여겨지기만 할까.
저는 기본적으로 슬픔보다는 분노를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거부선언 이후 마주한 제 변화를 적어내면서, 앞으로 내 인생 어떻게 될지 슬픔에 잠기기보다 화를 내기로 했습니다. 저를 나약하고 옹졸한 패배자로 낙인찍기보다 이따위 세상이 문제라고 더 얘기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대학을 안가도 괜찮은 사회가 아니고, 그것이 곧 문제라는 것을요. 그리고 저는 이러한 문제제기가 더 많은 이들의 절망을 덜어내는 일이라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투명가방끈이, 그리고 여기에 모인 여러분이 계속해서 함께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사실 투명가방끈이 없었다면 감히 이 세상에 분노할 생각조차 못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함께 목소리 내는 이들이 있고, 이에 분노하는 서로가 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 것 같습니다.. 저는 답 없는 투쟁이 아니라 투쟁이 답을 여는 세상을 만들고 싶고, 그런 세상을 믿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름 발언문>
안녕하세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여름입니다.
차차는 성노동자 당사자 중심 단체로, 주홍글씨로 낙인찍힌 모든 성노동자를 위해 '차'별과 낙인을 '차'근 차근 없애 나가기 위한 활동을 합니다. "대학 밖에서 손을 잡자!" 오픈마이크 데이에 모인 여러분들, 평등과 연대의 이름으로 인사 드립니다.
저는 ‘수능’이란 단어를 들으면 원한이 차오르곤 하는데요. 대학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는 시기에 ‘제대로 된’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사람은 정상사회로부터 미끄러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먼저 정규직 노동시장에서 탈락하게 되는데요, 노동시장 탈락은 열악한 주거환경, 빈곤과 친해지는 일이기도 하지요. 저는 광기의 K-입시생활을 거치며 정신병을 얻어 대학을 안 가겠다고 다짐했는데요, 단지 대학 비진학만 결심했을 뿐이었는데 사회는 저에게 집다운 집에서 사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고, 여가생활 없는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되는 삶을 강요하더라구요. 대학 비진학자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더울때 덥고, 추울때 추운 1.5평짜리 고시원에서 몸을 구겨서 잤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비정규직 노동으로 먹고 살며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하며 살았던 기억도 납니다.
대학 비진학자들은 ‘정상적인’ 학력이나 학벌이 없다는 이유로 차별의 대상이 됩니다.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신화는 계급, 성별, 장애, 인종, 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불평등하게 설정된 출발선을 은폐합니다. 학력이나 학벌은 개인의 노력보다도, 애초에 내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판가름 납니다. 입시생활을 해낼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은 공평하지 않거든요. 사람들은 이런 말을 싫어합니다. 경쟁에서 뒤처진 패배자의 변명으로 치부합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학에 가고 안 가고, 누가 차별받고 누가 특혜를 받는지 여부가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우연에 가까운 결과라고 생각하면 두렵잖아요.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그 모든 대학 입시 과정이 공정하다고 믿어야 마음이 편하니까요.
모든 사람이 노력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생각, 대학에 가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노동할 기회, 좋은 삶을 살 기회를 박탈하는 차별에 동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차는 그런 차별에 반대합니다. 대학입시거부 운동은 성노동자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은, 대학에 가지 못한, 대학에 끝까지 머무를 수 없었던, 대학 때문에 많은 빚을 져야만 했던 수많은 성노동자들이 대학 울타리 바깥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싸우는 일이 대학입시거부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정상성에 속하지 않거나 속하지 못한 몸으로서, 정상성의 기준에서 실패하고 낙오한 사람들이란 낙인을 정상성에 저항하는 우리의 자긍심으로 바꿉시다. 성노동자들도 대학입시거부 운동에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한진희 발언문>
아시다시피 인권 투쟁의 역사는 비가시화 된 존재들을 드러내고, 그 존재들이 비가시화 될 수 밖에 없었던 맥락을 밝혀내고 정치화 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자리가 작지만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10대들은 우리 사회에서 언제나 정치적 주체였습니다. 각 시대마다 저항하는 10대들이 역사를 만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80,90년대 입시 중심의 교육제도나 학생들과 합의를 거치지 않은 교복문화 등이 집중되면서, 정치적 주체로서의 학생들을 부단히 지우며, 학교 통제 아래 놓이는 수동적 존재로 만들어왔습니다.
혹시 고등학생운동이라고 들어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시대 말로 가장 비슷하게 번역하면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요즘 80,90년대 고등학생운동에 관한 기록를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8090년대 고등학생운동은 다양한 사회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거리에서 노태우 퇴진이나, 민주주의를 외치고, 학교 비리 투쟁, 직선제 학생회 쟁취, 전교조 교사지키기 운동, 학내 자치권 보장, 입시제도 비판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운동을 마친 활동가들은 이후 공장에 들어가서 노동운동을 하거나 대학을 가거나 남아서 고운을 지원하는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90년대 초반에 고등학생운동을 했는데. 그런데 이제와서 돌아보면. 이 운동 또한 인문계 고등학교 중심인 경향이 있었고. 활동가로서 졸업후 공장을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학 비진학이나 탈학교를 하나의 실천으로 만들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입시 중심의 교육제도는 비판했지만, 그 피해자인 학생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대학 비진학자인 다양한 시민들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 흐름을 만들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 인권 운동은 고등학생운동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개인의 삶에 주목한다는 것이 차이 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마무리 이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국은 상당수의 10대들이 대학입시에 목숨을 걸고, 실제 성적을 비관해서 목숨을 끊는 일이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는 사회입니다. 90년대에도 학교 성적을 비관한 자살들이 있었지만, 동시에 학내 민주화나 정치적 주제를 걸고 저항으로서의 죽음을 선택하거나 시도하는 10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10대들의 자살 성향은 달라진 것 같습니다. 대입 실패나 학업 성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혹은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비율이 예전보다 압도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연령층도 더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대학이 아닌 진로를 선택하거나, 대학에 갈 수 없는 시민들에 대해 사회는 매우 무관심 합니다. 그들이 입시와 학벌 중심 사회에서 어떤 창조적 삶을 사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차별과 배제를 겪는지 사회는 관심두지 않습니다. 그런만큼 이렇게 대학비진학자 가시화 주간을 선포하고 활동하는 투명가방끈 활동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은 혹은 못한 동료시민들에게 지금 이 활동이 전달 되고, 오늘 하루 연대의 온기도 전달 되길 바랍니다. 대학 비진학자 시민들에게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공현 발언>
수능 시험을 앞두고 여기저기에서 수험생을 응원한다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바로 이 앞에도 무슨 정치인이 “수험생 파이팅! 사랑한다, 응원한다” 뭐 이런 현수막을 걸어놨더라고요. 이런 말들도 자주 듣게 되죠. “고생했다, 수고 많았다.” 그러다가 이렇게 수능날이 되면, 아니면 수능이 끝나고 나면 또 이래요. “수능이,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너의 삶은 어쩌구...” 이런 말을 들으면 저는 코웃음이 나요. 고생을 안 하게 만들면 되는데. 대학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사회로 만들면 되는데. 학생이니까 열심히 수험 공부하라고 내몰 때는 언제고, 다 끝나고 나서야 저런 소리를 하는 게 진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자주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계속 수능 문제를 풀게 시키고, 밤 10시, 11시까지 강제 자습을 시키고, 성적이 떨어지면 불러서 좀 더 노력하라고 압박을 가하죠. 자주 보는 모의고사 성적, 중간기말고사, 각종 수행평가 내신 성적을 끊임없이 신경쓰게 만들고요. 교사들이나 인강 강사들은 한 번씩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사회적 대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이야기하며 공부하라고 합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학력 차별 발언하는 거 다 성차별 발언 같은 것처럼 금지시키고 처벌해야 합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나면 많은 사람이 어떻게 되냐면,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잘못됐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고생을 했으니까 이 고생엔 의미가 있어야 해, 이 고생의 결과는 대단한 거여야 해’라는 식으로 비틀어서 생각하게 돼요. 소위 인지부조화라고 부르는 현상이죠. 사람들이 20대가 능력주의적이다, 학벌주의 옹호한다, 비정규직 차별한다 이런 말을 하면서 놀라워하는 게 오히려 더 놀라워요. 중고등학교에서, 입시 과정에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공부해서 대학 가는 게 중요하다고 채찍질해놓고서 안 그러기를 바란다는 게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이 대학서열-학력학벌차별-능력주의 교육을 극복하고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인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했던 시험공부, 수능 점수 몇 점 더 올리려고 들인 수십 시간이 별 의미 없는 일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남을 돕기 위해 한 것도 아니었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었죠. 그저 이 제도가, 체제가 잘못되어 있어서 무의미한 고생을 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학입시가, 끊임없이 경쟁하고 차별하는 교육이 사람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망치는 것 같아요. 하나는 방금 말한 것처럼, 자기가 겪은 폭력, 차별, 고통을 정당화하고 차별을 옹호하게 되는 거예요. 그 근거는 무슨 다른 게 아니에요. ‘내가 이렇게 노력, 고생했으니까.’ 이렇게 노력하고 고생했는데 보상받아야 하는 거 아니냔 거죠. 또 다른 하나는 아프게 만드는 거예요. 무리해가며 긴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서 공부를 해야 하니까 몸이 아플 수밖에 없죠. 또, 계속 평가받고, 시험 결과와 숫자로 차별을 당하고, 불안한 상황에 있다 보니 자존감도 깎이고 마음이 아파지게 됩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과 고통이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이제 수능 시험과 입시철을 앞두고 “고생했다”, “대학이 전부가 아니다” 같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입에 발린 말만 하면서 다른 이유, 뭐 국가경쟁력이니 산업을 위한 인재니 하는 이유로 학생들을 고생시키는 거예요. 아니, 특정 연령대의 70~80%가 모두 짧으면 1년, 길면 10여 년을 힘들게 고생해야만 하고, 주변에서 안타까워해야 하는 체제는 뭔가 이상하단 생각 안 드시나요? 변화는 정책을 어떻게 하자는 정부나 연구자들의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이 체제를 바꿔야 한다,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체제로 만들자는 우리의 뜻이 모여서 시작됩니다.
<민서연 발언문>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이것저것 하는 민서연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딱 1년에 하루, 비행기도 안뜨고 출근 시간도 미뤄지는 날입니다.
길거리에서는 정치인들이 수능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사람들은 수험생에게 응원하기 위한 선물들을 줍니다.
저는 매년 오늘이 오면 1년에 딱 한 번, 어쩌면 인생에 딱 한 번 있을 오늘을 위해 그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하고 모두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라며 응원한다는 게 조금 무섭습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 얘기를 조금 길게 해보자면 저는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비평준화 제도를 조금 설명을 해보자면 중학교에서의 성적에 따라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제도 입니다.
문제는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다보니 고등학교 간 서열화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중학교를 다니며 고등학교 입시경쟁을 대입 전에 한 번 더 겪어야 한다는 겁니다.
교사들은 더 좋은, 더 높은 고등학교를 보내기 위해서 말합니다.
공부를 해서 소위 말하는 명문 고등학교를 가서 수능을 잘보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여 좋은 직장을 얻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이렇게 입시경쟁에서 승리한다면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입시를 위해 3개이상의 학원을 다녔고 고입을 위한 학원도 다녔습니다. 서울까지 가서 유명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학원을 다니면서도 과목별로 과외도 들었습니다.
저는 한 달 학원비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내가 학원비값을 다하지 못하면 안될 것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잠을 줄이며 억지로 쓸데없는 공부를 하는 건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유명 학원을 여러 곳 다니고, 어떤 사람은 학원을 다니지 못하고.
학교 수업은 노력한다고 모두 다 이뤄지는 건 아니였습니다. 입시경쟁에서 학원의 역할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보니 저희 학교에서 유행처럼 돌았던 말이 있었습니다. ’학원 성적표가 내 성적표가 된다.‘ 였습니다.
비싸고 명문 학교를 많이 진학 시킨 학원을 다녀야 내 성적표가 좋아진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말이 학교에서 공감되고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 입시체제가, 이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느 날, 담임교사가 어느날 이런 말을 합니다.
‘얘들아, 고입, 별 거 아니였지?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저는 이미 중학교를 다니며 쓸데없는 도움안되는 공부를 참아가며 해왔는데, 3년동안 또다시 반복해야한다는 현실에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노력해서 학교에 진학했는데, 그게 별거 아닌 것 마냥 여겨진다는 게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은 노력을 덜해서, 간절함의 정도가 낮아서 떨어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충격적이였습니다.
학교는 학교가 바라는 상의 학생을 원하고 학생은 학교를 진학하기 위해서 그 학교에 끼워맞쳐지려 노력해야합니다.
이런 것까지 왜 확인하는 거지? 싶고 복잡하고 원하는 게 많은 지원자격 맞춰야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현실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싫었습니다.
등급에 따라 대우가 바뀌고 학부모가 학교에 얼마나 신경쓸 수 있는 가에 따른 챙김의 정도가 다른 현실도 저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학생들은 성적을 비교하며 더 높은 등급을 받은 학생에게 찾아가 ’내가 네 방석이 될게!‘라고 외치며 엎드리는 시늉을 합니다. 본인을 ’방석‘이라고 말하며 ’깔리는’ 시늉을 한다는 게 다시 생각을 해보면 충격적인 모습입니다.
’누군가를 짓밟고, 행복을 찾는다‘는 게 정말 참된 행복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입시 이후에 행복이 보장되어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입시경쟁에서 승리해 명문학교를 가고, 명문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직장을 얻어 행복한 삶을 산다는 공식이 있는 건 불평등 세상에서 기득권층에서 만들어낸 대중들에게 조금의 희망을 주기 위한 허상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잡아먹고 경쟁하는 학교와 사회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입시경쟁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 했던 건 학원비 뿐만이 아니였습니다.
제가 성격이 좋고, 나설 줄 알아서 좋다는 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교사는 학년부장이었고 사회가 평등하길 바란다는 말에 서로 공감하며 자주 대화를 나눴던 교사였습니다. 그 교사는 어느날 방과후에 저를 불러서 생기부를 잘 적어주겠다. 명문대학을 보내주겠다고 말하며 대학을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너와 친하니까. 이정도는 해줄 수 있지 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교사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이렇게 공정하지 않은 무언가가 생기는구나. 우리나라 입시가 이래서 더 공정하지 않구나. 인맥으로 남들이 받지 못하는 혜택을 받게 해주겠다는 얘기를 들으며 그 동안 이 교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던 평등은 그저 허상이었나? 싶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점점 실망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시험 성적으로 나뉘는 인생의 망함 정도, 등급에 따라 바뀌는 대우 등. 사람을 나누어 분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존엄을 해치는 일인 지 인지하여야합니다.
제가 오픈 마이크 발언자 자기소개에 제가 연대의 힘을 많이 믿고 연대의 힘은 강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자기소개에서 말했다시피 우리도 함께 연대하여 입시경쟁을 끊어내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위해서 함께 연대합시다! 연대해서 입시경쟁에 저항합시다. 지금까지 민서연이었습니다.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래 발언문>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김정래입니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오늘 괜히 양복을 입고 왔습니다. 제가 위아래로 갖고 있는 딱 한 벌 있는 양복입니다. 양복을 입을 때마다 저는 제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그러니 양복을 입고 온 김에 저희 할아버지 얘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대학 비진학자입니다. 할아버지는 초등학교만 나오셨습니다. 본인이 원치 않았지만 사정이 생겨 비교적 이른 나이에 퇴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긴 노년기 동안 이렇다 할 직업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제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자주 양복 차림이었습니다. 가다마이를 입고, 넥타이도 즐겨 맸습니다. 그렇게 차려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셨어요. 뭘 사지도 않는데 미장원, 꽃집, 과일가게를 들락날락하며 이웃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셨습니다. 심지어 직업이 따로 없으신데 혼자 명함을 파서 사람들을 만나면 건네주었습니다. 명함에는 역시 양복 차림인 할아버지의 사진이 박혀있었고, 동네 노인회 회장, 아마추어 서예대회 우수상 같은,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이력이 적혀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직업은 없고 나이는 많은 자신을 남에게 그대로 드러내기 싫어서 양복으로, 또 명함으로 자신을 감싸고 싶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양복이나 명함 같은 생활의 요소 하나하나가 할아버지에겐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려웠을지도 모르죠. 사회가 인정하는 직업도, 능력도, 학력도 없는 자신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여겨질까 봐서 말입니다. 자신을 설명할 좋은 이름이 없으니 할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명함을 나눠주고 다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즘에 저도 양복까진 아니어도 가다마이를 입고 출근할 때가 많습니다. 직장에서 정갈한 차림새를 요구해서가 아닙니다. 직장에서 복장은 자유롭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는 반팔 티셔츠 하나 입고 출근합니다. 그래도 저는 가다마이를 걸치고, 넥타이를 매고, 구두까지 신고는 합니다. 그 뒤에 숨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봅니다. 옷차림새라는 어설픈 허울. 그 안온함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봅니다. 또 저는 명함도 있습니다. 대부분 업무로 만난 사람에게 명함을 주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쓸데없이 명함을 건네주기도 합니다. 명함이라는 그 작은 종이로 제 보잘것없는 존재를 가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봅니다.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지 2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저 자신이 능력이 없는, 무능한 사람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듯한 학력이나 뛰어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제 모습을 의식해서일 겁니다.
오늘 수능을 보는 사람들 중에서도 스스로가 무능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 친구는 수능을 보는 날 1교시 국어 시험이 마치자 그 다음 시험은 보지 않고 시험장을 나왔다고 해요. 국어 시험만 풀었는데도 이 성적이면 자기가 원하는 대학을 못 갈 것 같았다고 합니다. 대학 입시가 이 친구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기까지는 수능 국어 시험 80분이면 충분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수능이, 그리고 대학 입시가 요구하는 능력은 아주 한정돼있으니 말입니다. 수능 과목은 국어, 수학, 영어, 탐구 정도이고, 수시 원서를 넣는다고 해도 기껏해야 학교생활기록부 몇 장에 쓸 수 있는 정해진 능력만이 입시에서 쓸모 있는 능력으로 인정받습니다. 정해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철저하게 소외됩니다.
그러니 오늘 수능을 보지 않고 대학에도 가지 않는 이들 중에서는 더욱 스스로가 무능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만 같습니다. 저는 수능을 보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입시 원서도 한 장 넣지 않았습니다. 대학입시가 요구하는 정해진 능력이 제게는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제가 너무나 무능해보여서, 대학입시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대학입시가 요구하는 능력이 없을 때 입시의 문턱 앞에서, 사회의 문턱 앞에서 자신을 무능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무능한 사람일까요.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 없는 이들은 정말 무능한 사람일까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저는 저희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퇴직하시기 전 마지막 직업은 필경사였습니다. 손으로 서류에 글씨를 써 넣는 직업입니다. 인쇄기술이 널리 퍼지지 않았던 시기에, 표창장이나 상장 같은 각종 서류를 손 글씨로 쓰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필경사가 거의 필요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손 글씨만 적당히 잘 써서는 밥벌이가 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할아버지의 손 글씨나 붓글씨는 늘 멋이 있었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이미 필경사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드문 시대였습니다.
언뜻 보면 저희 할아버지는 무능한 사람 같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유일한 학력이었고. 글씨는 잘 썼지만 사무실마다 대형 프린터기 쓰는 시대에 손 글씨는 돈이 안 되는 능력이었고. 말년에는 일정한 소득과 이렇다 할 직업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억하는 저희 할아버지는 절대 무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들기름을 넣어 말아주신 간장비빔국수는 늘 맛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꾼 텃밭에서 딴 고추나 고구마도 늘 맛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띄엄띄엄 가르쳐주신 붓글씨의 미학은 아직도 제가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잣대입니다. 이따금 할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타고 동네를 누빈 덕에 저는 동네 지리를 익히고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제가 배울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대학을 가라고 눈치를 주고 공부를 하라고 호통을 치던 학교에서보다, 초등학교만 나온 우리 할아버지에게 저는 훨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할아버지는 사 년 전에 영원한 안식에 드셨습니다. 장례를 마친 이후 저는 할아버지 댁 곳곳에 남은 물건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할아버지 댁 작은 방에 온갖 책이 빼곡하게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책은 다양했습니다. 동양 고전을 비롯한 한문 고서나 주역, 사주명리학, 이름 짓는 법 같은 책도 있었고, 붓글씨 쓰는 교본, 회화 작품을 모아놓은 화집도 있었습니다. 한데, 살펴보니 모든 책에 라벨지로 출력한 글씨로 "이 책은 정래에게"라고 붙어있었습니다. 한 권 한 권 모든 책에요. 누군가는 그걸 보고 할아버지가 못 배운 한을 제게 풀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 책은 정래에게”라고 붙은 그 책들을 저는 대학 비진학자가 대학 비진학자에게 건네는 연대의 손짓으로 이해합니다. 사회가 무능하다고 낙인 찍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우리는 결코 그들의 말처럼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고 되뇌는 연대의 언어로 이해합니다.
저는 그런 저희 할아버지를 무능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세상에 분노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할아버지처럼 사회의 틀로 담을 수 없는 재주와 가치를 지닌 모든 대학 비진학자를 기껏해야 무능한 사람으로 여기는 현실에 분노합니다. 대학입시를 비롯해 계량가능하고 협소한 척도로 사람을 재고 따지는 모든 제도와 체제에 분노합니다. 이 분노는 제가 저희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방식이고, 제가 저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이며, 모든 이가 자신을 자신의 척도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염원입니다. 더는 양복과 명함의 뒤에 숨어야 하지 않는. 양복과 명함의 권위를 빌려야 하지 않는. 존재들이 단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대학 비진학자 가시화 주간을 맞아, 소외된 비진학자들에게 존경과 연대의 말을 건넵니다. 감사합니다.
<새미래 발언문>
저는 대구에서 올라온 활동명 새미래입니다. 하도 주변에서 ‘미래인 청소년’ 하는게 지겨워서 걍 절 새로운 미래로 만들어버렸어요. 호두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니던 내내 주변의 입시 압박과 은근한 기대감으로 인해 저에게 주어지는 부담 때문에 우울과 불안에 둘러싸여 힘든 생활을 해와야 했습니다. 그 사이 저는 피폐해져갔고, 학교를 벗어나면 좀 나아질까 하는 생각에 탈학교를 하였지만 여전히 주변에선 입시에 대한 압박이 주어졌습니다.
며칠 전까지,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일 지도 모를 진학과 비진학 사이의 고민에 저는 밤잠을 설치고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항상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도저히 입시가 뭐길래, 입시가 얼마나 공정하길래 저렇게 청소년들에게 입시를 강요하는 걸까. 왜 입시를 거부한 청소년들은 도태된 청소년으로 분류되는 것일까.’ 저는 아직까지도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법이 무엇일까.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니던 내내 주변의 입시 압박과 은근한 기대감으로 인해 저에게 주어지는 부담 때문에 우울과 불안에 둘러싸여 힘든 생활을 해와야 했습니다.
탈학교를 하기 전 학교에서 만났던 친구가 자신의 인스타 스토리에 한가지 말을 남겨 놓았습니다. 자신이 새벽 6시까지 학원 과제를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오후까지 깨지 못해 학원을 결석했다. 그래서 학원 강사와 친권자의 눈치가 보여 불편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도대체 입시가 뭐길래, 충분히 쉴 권리를 가질 한 존엄한 인간이 새벽까지 학원 과제를 하다가 오후가 다 돼서야 일어나야 했을까요.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부당함은 어떤 언어로 설명해야 할까요. 우리의 삶을 옥죄는 입시경쟁체제와 싸워야겠다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골똘히 생각해봅니다. 도저히 입시가 무엇이길래, 입시가 얼마나 공정하길래 강요되는 것일까. 이 입시경쟁체제는 왜 만들어진 것일까. 한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와 ‘공정’이라는 두 단어입니다. 항상 우리는 ‘기회’,‘공정’이라는 단어를 듣고 살지만 실제로 그것만큼 허상인 것도 없다 생각이 듭니다. 학교 안에서는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무엇이라도 쌓을수 있는 기회가 생기며, 입시에 부담을 느끼고 일찍이 일자리를 찾기로 한 학생들은 제대로 된 노동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 당하니 말입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한 학생들은 친권자들의 자본으로 막대한 수강료를 지불해 이른바 ‘일타 강사’의 강의를 들으러 다닙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한 학생(청소년)들은 그 ‘일타 강사의 강의’를 녹화한 인터넷 강의를 구매하는 것도 친권자들의 눈초리를 받아가며 공부합니다. 어떻나요? 이래도 정말 입시 경쟁 체제를 두고 말하는 ‘기회’니 ‘공정’이니 라는게 맞는 말인가요?
결국 입시경쟁체제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가동되며, 강요되는 시스템이라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이미 자본의 논리에 가동되는 입시경쟁 체제에는 ‘기회’,‘공정’이라는 단어는 사라져버린지 오래입니다.
저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가동되며, 강요되는 입시를 거부합니다.
입시 거부는 단지 입시가 힘들어서, 싫어서가 아닌 내 생존을 위해, 내 생존을 억압하는 자본의 논리에 대한 투쟁입니다.
더 이상 이 말도 안 되는 부당함에 움츠러 들지 맙시다. 더 이상 우리를 향한 입시 강요에 순응하지 맙시다. 자유 발언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미래였습니다.
<연혜원 발언문>
안녕하세요 투명가방끈 상임활동가 연혜원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날이 찾아왔고, 모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수능 잘보세요, 수능 화이팅입니다 인사를 건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인사가 진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 궁금합니다. 정말 그 끔찍한 시간들을 잊어서 그런 인사를 건네는 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제는 남일이라 그렇게 편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지요.
우리가 처음 경쟁을 배우는 곳이 학교라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닌가요? 수능이란, 학교교육이 곧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과정이며, 그러므로 학교는 우리를 줄을 세워도 괜찮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국가적인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얘기가 저한테는 정말 반사회적으로 느껴집니다. 사회는 같이 살아야 하는 곳인데, 그럼 학교가 가르쳐줘야 하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함께 사는 법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수능이 계속 존재하는 이상, 학교는 영원히 경쟁을 가르치는 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능이 사라져야 경쟁이 아닌 교육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수능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시험 따위 때문에 고통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모두 시험 그 이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감히 수능으로 사람을 줄 세우고, 사람을 평가하지 마십시오. 교육의 역할을 그런 식으로 축소하지도 마십시오. 저는 수능이 얼마나 폭력적인 제도인지 영원히 기억하고, 매년 이야기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일움 발언문>
영원히 불안할 우리의 밤을 위하여
안녕하세요. 2020년, 제작년 수능날에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한 일움입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현실에 오픈마이크 데이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대구지역에서 청소년 인권 운동을 이어오고 있고요. 현재 고3이라 수능 원서 사진은 졸업 앨범을 찍다 같이 찍었는데, 원서 접수는 하지 않았어요. 교사도 이제 절 포기하고, 학교도 저를 포기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해방이 되었을까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계속 계속 울고 싶어요!
우선 수능을 저는 안 치는데도 제 학교에 들어찰 수험생 분들을 생각하니까 저는 제 심장이 다 떨리는 것 같아요. 다들 저처럼 떨려서 습관적으로 괜찮아. 수능 대박 날거야. 파이팅. 이런 말들을 내뱉는데요. 우리들의 불안한 밤을 간편하게 위로하기에는 성공 기원이 딱이니까 다들 그러시는 거 같아요. 근데 그런다고 수능이 다 대박나나요? 앞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학에 가서 원하는 교육을 받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나요? 그게 아닌데, 말이 좋다고 뱉어놓으면 그게 얼마나 가닿을 수 있을까요? 수능? 할 수 있어. 하면 어 그래. 네 감사합니다. 하고 개개인의 친절한 사람들의 선의는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든 잠은 혼자 드는 거잖아요. 그 불안 어떡할 거에요. 자다가 과호흡오고, 수능장 가서 공항 올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또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발생할거고 발생하고 있을텐데. 이거 어떡할 건데요. 저는 우리가 이런 집단적 정신재난 상태인 것에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한가지 웃긴 것은 수능이 끝나고 난 후인데요. 자기학대, 자기착취를 12년 내내 학습시켜놓고 해방이라고 떡 내놓으면 누가 편히 쉴 수 있나요? 저는 아직도 자기학대에 중독되어있어요. 조금이라도 쉬거나 게으른 모습이 스스로에게 포착되면 스스로 못 견뎌하고, 자해적 사고를 하고. 혹은 끝없이 스스로를 방치하다가 무기력의 악순환에 시달리고요. 저만 이런 게 아니고, 사회적 현상이고, 우리가 이거 집단 소송해볼 수도 있는 건이죠!
제일 어이가 없는 건, 꿈을 키우라고 하면서, 왜 가로막고 계십니까? 좀 비진학자들을 위한 길을 앞장서서 터보세요. 예를 들면 저는 수어통역사가 되고 싶은데,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으면 유리하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따려면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고, 대학 졸업장을 따려고 한다면 초중고등학교 내내 입시준비를 했어야 하는 거에요. 근데 결국 이 루트가 말 잘 듣는 사람 길러내는 루트잖아요. 아무 쓸모도 필요도 못 느끼는 입시 경쟁에서 이겨야 사회복지 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거에요. 입시 경쟁에 몸 담지 않은 사람에게는 징벌처럼 아무런 전문 교육이 주어지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루트가 극히 드물어요. 세상이 아주 괘씸하죠.
여러분들 정말 수고하셨다고 말하고 싶어요. 수능 끝나고가 아니라, 16일 밤과 17일 새벽을 건너는 여러분들, 무수한 밤을 건넜을 살아남은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전합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우리가 멈춰서서 자기비하 하고 채찍질하는 법밖에 못 배웠지만요, 늦게라도 멈춰서보고, 심호흡해보고, 좀 쉬어봅시다. 언제라도 쉴 수 있는 거라고 우리가 주장하면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오겠지요.
그런 세상에서 저는 그래도 잘 먹고 잘 살아보려고 합니다. 특히 저는 요즘 세오를 먹여살리려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세오는 올해 5월 11일부터 저와 함께하게 된 고양이에요. 세오와 저의 삶은 이제 시작인 것 같거든요? 세오랑 함께 있으면 세오가 너무 게으르고 팔자 좋아보여서 막 질투가 나요. 세오는 카페라떼 거품같은 얼굴을 하고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기를 항상 제게 요청하는데요. 제가 세오랑 좀 더 놀 수 있으면 좋겠고. 제가 일강박을 좀 내려놓고 싶어요. 항상 쫒기듯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비진학자인 댓가로 항상 더 많은 노력에 대한 강박에 시달려서 어떤 쪽으로든 일을 많이 가져가고 싶어하는데, 안 좋은 습관은 이제 버리고 싶어요.
좀 느리고 여유 있게 살면 안됩니까!! 놀 거리 없는 거 아니잖아요. 언제까지고 인간이 죽어라 일해야 하는 시대도 아니잖아요. 사회적 안정망을 위한 재원 충분히 확보 가능하잖아요. 사회가 사람들을 위해서 책임을 다 했으면 좋겠어요. 빨리 수능이 절대평가화되고, 대학이 무상화평준화되고, 기타등등 입시경쟁교육 폐지를 위해 이것저것 보장되면 좋겠네요. 공부가 짜증나서 울어도 인생이 힘들어서 울어도, 시험이 두려워서, 입시경쟁이 조여와서 울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 같이 우리의 안식과 입시 경쟁 폐지를 위한 구호를 한 번씩 외쳐주시면 좋겠습니다. 뒷 구호 삼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양이랑 놀시간을 보장하라! 입시경쟁 폐지하라!
<피아 발언문>
하고싶은 말을 다 적었다. 말이 좀 많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7년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한 피아입니다.
대학거부선언 이후 5년. 그 시간동안 겪은 변화.
일단 대표적으로 저는 mbti 에서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무려 제일 앞 글자가 바뀌는. 해가 지날수록 점점 퍼센테이지가 E에서 I로 향하더라고요. 저는 청소년 때부터 늘 압도적인 E를 차지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반반에 가깝습니다. 조금 더 풀어 설명하자면 타인에 의한 경계심과 피로가 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관계에서의 신중함이 커졌다고 볼 수 있고, 다르게 말하면 피해의식과 긴장이 늘었다는 뜻이겠다 싶어요. 활동보다는 집에 박혀 휴대폰과 함께 잔잔하게 우울을 씹는 시간이 더 편해졌습니다. 내가 아는 범위의 사람들을 넘어선 새로운 이들을 반기지 않게 되기도 했고요.
그리고, 불안력이 대폭 증가했습니다. 대충 이런거에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앞선 걱정들이 무한대로 늘어났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구인구직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원하는 직종을 검색해요. 그리고 대부분의 곳에서 특정 자격증이나 대학 학위를 필수 학력으로 요구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자격증이나 학점은행제를 따는 루트를 상상하기기 시작합니다. 그 루트의 기간은 머릿속에서 1,2년이 우습게 건너뛰어집니다. 자격증을 따려면 먼저 대학 학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학점은행제를 먼저 따고... 그 다음에 자격증을 따고.. 그러다 이제 4년에 가까운 빡센 일정을 계획하는 순간 저는 좌절하기 시작합니다. 그 시간동안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며, 그렇게까지 돈과 시간과 힘을 들이는게 나에게 가능한 일이긴 할까 하는 생각에 시달리면서요. 그렇게 상상에 빠진지 30분 만에 결국은 절망하고 그냥 굶어죽는게 제일 낫겠군 하는 땅굴로 달려갑니다. 사실 요 근 1년간 거의 그런 식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해마다 더 강렬해지는 안정적임에 대한 갈망입니다. 원래부터 그런 기질이 있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비청소년이 된 이후 여러 알바자리에서 탈락되는 경험을 하면서 더 공고해진 것 같아요. 저는 음식점, 카페, 편의점, 술집, 빵집 등 다양한 알바를 전전했는데, 대부분 길어도 6개월을 채 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 무리와 문화적 차이로 어울리기가 어렵거나, 낮은 임금에 비해 고강도로 주어지는 노동을 견딜 수 없거나, 상사의 갈굼에 못이기거나, 임금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거나, 앉을 자리를 감히 찾을 수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 못이기거나,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알바몬은 들여다보기도 싫은 지경이 되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일터에서 탈락되는 경험을 겪을 때마다 스스로가 이 사회와 너무 안맞는, 불화하고 나약한 사람이라는 자괴감과 열등감이 매순간 업그레이드 되어 저를 괴롭힙니다.
사실 앞서 말씀드린 이 변화들은 투명가방끈에서 활동할 때보다 올해 가졌던 안식년이 좀 더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소속을 잃고 집에 혼자가 되니까 많은 것을 안게 되더라고요. 하튼 이 변화들은, 어쩐지 증상이라고 불러야할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망가져가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 중에서 제 대학입시거부선언문을 보신 분이 계신가요? 저는 당시에 소설을 적었었는데. 그 소설은 제가 학교에 생활하면서 어떤 장면들을 접했고, 그 장면들이 어떻게 나를 위협해왔는지를 묘사한 내용이었는데요. 소설 속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학교를 뛰쳐나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소설을 마무리내면서, 저는 제 인생에서 더 이상 이런 고통의 고리를 끊어버리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을 돌아보니, 떠오르는 몇몇 장면들에서 저는 비슷한 채찍을 받으면서 고통받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교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저는 거대한 학교같은 공간에서 고통받는 학생이 아닐까 싶은 거예요. 나와 맞지 않는 규칙들 속에서 허우적대고, 불화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요.
그래서 저는 이어지는 맥락으로, 수능철이 되면 sns에 접속하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쏟아지는 수능 대박, 힘내세요 같은 말들이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말들을, 심지어 정치인들까지도 덕담처럼 보내는 현실에 분노가 솟기도 한데, 요새는 더 힘들게 느껴지는 말이,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라거나, ‘나와봤지만 정말 의미 없다’ 같은 말이에요. 혹은 ‘전 대학을 안갔지만 잘 살고 있어요.’ 같은 말들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접할 때, 어쩐지 마음이 비뚤어집니다. 정말?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mbti가 E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튼튼하지 않은 사람에게, 지지해주는 부모가 없는 사람에게도 대학 안나와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어?
얼마 전에 제가 아는 장애 쪽에서 활동하시는 활동가 분께 일자리를 제안받은 적이 있어요. 활동지원사와 장애당사자를 연결하는 상담 직원 같은 거더라고요. 제가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제안해주셨는데, 그 조건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더라고요. 어 저는 자격증이 없는데요. 하니까 죄송하다고 그럼 어렵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그 날 저녁에 또 알바몬을 켰어요.
알바 자리만 전전하고, 그마저도 노동조건이 사장바이사장으로 뽑기하듯이 다르고, 고졸 내지 그 이하의 학력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일터를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현실에, 운 좋게 국가의 지원으로 일자리를 구해도 1년 계약직이 전부인 세상에, 심지어는 뉴스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을 보면서, 정말 대학이 별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선택할 수 있는 일터의 급이 아예 달라지는 이런 현실이요. 그리고, 대학이 그 사람의 능력을 증명하는 지표로 작동하기도 하지만, 또 대학이 단순히 그런 곳이기만 한가요? 대학은 비슷한 환경의,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의 장이고 많은 기회가 오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것은 또래의 문화를 접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소한 예시로, 사람들과 모이는 자리에서 술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고, 적은 인스타 좋아요나, 더 적은 친구들과 같은 것이겠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치졸하고 옹졸한 마음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제가, 우리가 겪는 불행과 불안은 대학 비진학이라는 결정과 관련이 없을 수 없는데, 왜 사람들은 이 사회가 갖는 대학의 위치라는 문제에 대해 더 중요하게 목소리 내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수능철만 되면 응원과 격려가 쏟아지고, 등급에 따라 줄 세워지는 학생들과, 그 이후의 인생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대학은 선택이라느니 등급은 당신을 증명하는 모든 것이 아닙니다 같은 허울 좋은 소리나 하고, 왜 사람들은 대학 비진학과 연결된 많은 노동, 생계, 교육의 문제에 더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목소리를 내지는 않을까. 대학과 연결된 학생들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지않을까. 투명가방끈이 하는 대학거부선언과 그 운동은 왜 낙오자들의 답 없는 투쟁으로 여겨지기만 할까.
저는 기본적으로 슬픔보다는 분노를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거부선언 이후 마주한 제 변화를 적어내면서, 앞으로 내 인생 어떻게 될지 슬픔에 잠기기보다 화를 내기로 했습니다. 저를 나약하고 옹졸한 패배자로 낙인찍기보다 이따위 세상이 문제라고 더 얘기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대학을 안가도 괜찮은 사회가 아니고, 그것이 곧 문제라는 것을요. 그리고 저는 이러한 문제제기가 더 많은 이들의 절망을 덜어내는 일이라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투명가방끈이, 그리고 여기에 모인 여러분이 계속해서 함께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사실 투명가방끈이 없었다면 감히 이 세상에 분노할 생각조차 못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함께 목소리 내는 이들이 있고, 이에 분노하는 서로가 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 것 같습니다.. 저는 답 없는 투쟁이 아니라 투쟁이 답을 여는 세상을 만들고 싶고, 그런 세상을 믿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름 발언문>
안녕하세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여름입니다.
차차는 성노동자 당사자 중심 단체로, 주홍글씨로 낙인찍힌 모든 성노동자를 위해 '차'별과 낙인을 '차'근 차근 없애 나가기 위한 활동을 합니다. "대학 밖에서 손을 잡자!" 오픈마이크 데이에 모인 여러분들, 평등과 연대의 이름으로 인사 드립니다.
저는 ‘수능’이란 단어를 들으면 원한이 차오르곤 하는데요. 대학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는 시기에 ‘제대로 된’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사람은 정상사회로부터 미끄러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먼저 정규직 노동시장에서 탈락하게 되는데요, 노동시장 탈락은 열악한 주거환경, 빈곤과 친해지는 일이기도 하지요. 저는 광기의 K-입시생활을 거치며 정신병을 얻어 대학을 안 가겠다고 다짐했는데요, 단지 대학 비진학만 결심했을 뿐이었는데 사회는 저에게 집다운 집에서 사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고, 여가생활 없는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되는 삶을 강요하더라구요. 대학 비진학자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더울때 덥고, 추울때 추운 1.5평짜리 고시원에서 몸을 구겨서 잤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비정규직 노동으로 먹고 살며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하며 살았던 기억도 납니다.
대학 비진학자들은 ‘정상적인’ 학력이나 학벌이 없다는 이유로 차별의 대상이 됩니다.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신화는 계급, 성별, 장애, 인종, 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불평등하게 설정된 출발선을 은폐합니다. 학력이나 학벌은 개인의 노력보다도, 애초에 내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판가름 납니다. 입시생활을 해낼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은 공평하지 않거든요. 사람들은 이런 말을 싫어합니다. 경쟁에서 뒤처진 패배자의 변명으로 치부합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학에 가고 안 가고, 누가 차별받고 누가 특혜를 받는지 여부가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우연에 가까운 결과라고 생각하면 두렵잖아요.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그 모든 대학 입시 과정이 공정하다고 믿어야 마음이 편하니까요.
모든 사람이 노력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생각, 대학에 가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노동할 기회, 좋은 삶을 살 기회를 박탈하는 차별에 동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차는 그런 차별에 반대합니다. 대학입시거부 운동은 성노동자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은, 대학에 가지 못한, 대학에 끝까지 머무를 수 없었던, 대학 때문에 많은 빚을 져야만 했던 수많은 성노동자들이 대학 울타리 바깥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싸우는 일이 대학입시거부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정상성에 속하지 않거나 속하지 못한 몸으로서, 정상성의 기준에서 실패하고 낙오한 사람들이란 낙인을 정상성에 저항하는 우리의 자긍심으로 바꿉시다. 성노동자들도 대학입시거부 운동에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한진희 발언문>
아시다시피 인권 투쟁의 역사는 비가시화 된 존재들을 드러내고, 그 존재들이 비가시화 될 수 밖에 없었던 맥락을 밝혀내고 정치화 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자리가 작지만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10대들은 우리 사회에서 언제나 정치적 주체였습니다. 각 시대마다 저항하는 10대들이 역사를 만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80,90년대 입시 중심의 교육제도나 학생들과 합의를 거치지 않은 교복문화 등이 집중되면서, 정치적 주체로서의 학생들을 부단히 지우며, 학교 통제 아래 놓이는 수동적 존재로 만들어왔습니다.
혹시 고등학생운동이라고 들어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시대 말로 가장 비슷하게 번역하면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요즘 80,90년대 고등학생운동에 관한 기록를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8090년대 고등학생운동은 다양한 사회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거리에서 노태우 퇴진이나, 민주주의를 외치고, 학교 비리 투쟁, 직선제 학생회 쟁취, 전교조 교사지키기 운동, 학내 자치권 보장, 입시제도 비판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운동을 마친 활동가들은 이후 공장에 들어가서 노동운동을 하거나 대학을 가거나 남아서 고운을 지원하는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90년대 초반에 고등학생운동을 했는데. 그런데 이제와서 돌아보면. 이 운동 또한 인문계 고등학교 중심인 경향이 있었고. 활동가로서 졸업후 공장을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학 비진학이나 탈학교를 하나의 실천으로 만들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입시 중심의 교육제도는 비판했지만, 그 피해자인 학생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대학 비진학자인 다양한 시민들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 흐름을 만들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 인권 운동은 고등학생운동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개인의 삶에 주목한다는 것이 차이 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마무리 이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국은 상당수의 10대들이 대학입시에 목숨을 걸고, 실제 성적을 비관해서 목숨을 끊는 일이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는 사회입니다. 90년대에도 학교 성적을 비관한 자살들이 있었지만, 동시에 학내 민주화나 정치적 주제를 걸고 저항으로서의 죽음을 선택하거나 시도하는 10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10대들의 자살 성향은 달라진 것 같습니다. 대입 실패나 학업 성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혹은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비율이 예전보다 압도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연령층도 더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대학이 아닌 진로를 선택하거나, 대학에 갈 수 없는 시민들에 대해 사회는 매우 무관심 합니다. 그들이 입시와 학벌 중심 사회에서 어떤 창조적 삶을 사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차별과 배제를 겪는지 사회는 관심두지 않습니다. 그런만큼 이렇게 대학비진학자 가시화 주간을 선포하고 활동하는 투명가방끈 활동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은 혹은 못한 동료시민들에게 지금 이 활동이 전달 되고, 오늘 하루 연대의 온기도 전달 되길 바랍니다. 대학 비진학자 시민들에게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공현 발언>
수능 시험을 앞두고 여기저기에서 수험생을 응원한다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바로 이 앞에도 무슨 정치인이 “수험생 파이팅! 사랑한다, 응원한다” 뭐 이런 현수막을 걸어놨더라고요. 이런 말들도 자주 듣게 되죠. “고생했다, 수고 많았다.” 그러다가 이렇게 수능날이 되면, 아니면 수능이 끝나고 나면 또 이래요. “수능이,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너의 삶은 어쩌구...” 이런 말을 들으면 저는 코웃음이 나요. 고생을 안 하게 만들면 되는데. 대학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사회로 만들면 되는데. 학생이니까 열심히 수험 공부하라고 내몰 때는 언제고, 다 끝나고 나서야 저런 소리를 하는 게 진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자주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계속 수능 문제를 풀게 시키고, 밤 10시, 11시까지 강제 자습을 시키고, 성적이 떨어지면 불러서 좀 더 노력하라고 압박을 가하죠. 자주 보는 모의고사 성적, 중간기말고사, 각종 수행평가 내신 성적을 끊임없이 신경쓰게 만들고요. 교사들이나 인강 강사들은 한 번씩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사회적 대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이야기하며 공부하라고 합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학력 차별 발언하는 거 다 성차별 발언 같은 것처럼 금지시키고 처벌해야 합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나면 많은 사람이 어떻게 되냐면,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잘못됐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고생을 했으니까 이 고생엔 의미가 있어야 해, 이 고생의 결과는 대단한 거여야 해’라는 식으로 비틀어서 생각하게 돼요. 소위 인지부조화라고 부르는 현상이죠. 사람들이 20대가 능력주의적이다, 학벌주의 옹호한다, 비정규직 차별한다 이런 말을 하면서 놀라워하는 게 오히려 더 놀라워요. 중고등학교에서, 입시 과정에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공부해서 대학 가는 게 중요하다고 채찍질해놓고서 안 그러기를 바란다는 게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이 대학서열-학력학벌차별-능력주의 교육을 극복하고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인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했던 시험공부, 수능 점수 몇 점 더 올리려고 들인 수십 시간이 별 의미 없는 일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남을 돕기 위해 한 것도 아니었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었죠. 그저 이 제도가, 체제가 잘못되어 있어서 무의미한 고생을 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학입시가, 끊임없이 경쟁하고 차별하는 교육이 사람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망치는 것 같아요. 하나는 방금 말한 것처럼, 자기가 겪은 폭력, 차별, 고통을 정당화하고 차별을 옹호하게 되는 거예요. 그 근거는 무슨 다른 게 아니에요. ‘내가 이렇게 노력, 고생했으니까.’ 이렇게 노력하고 고생했는데 보상받아야 하는 거 아니냔 거죠. 또 다른 하나는 아프게 만드는 거예요. 무리해가며 긴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서 공부를 해야 하니까 몸이 아플 수밖에 없죠. 또, 계속 평가받고, 시험 결과와 숫자로 차별을 당하고, 불안한 상황에 있다 보니 자존감도 깎이고 마음이 아파지게 됩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과 고통이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이제 수능 시험과 입시철을 앞두고 “고생했다”, “대학이 전부가 아니다” 같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입에 발린 말만 하면서 다른 이유, 뭐 국가경쟁력이니 산업을 위한 인재니 하는 이유로 학생들을 고생시키는 거예요. 아니, 특정 연령대의 70~80%가 모두 짧으면 1년, 길면 10여 년을 힘들게 고생해야만 하고, 주변에서 안타까워해야 하는 체제는 뭔가 이상하단 생각 안 드시나요? 변화는 정책을 어떻게 하자는 정부나 연구자들의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이 체제를 바꿔야 한다,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체제로 만들자는 우리의 뜻이 모여서 시작됩니다.
<민서연 발언문>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이것저것 하는 민서연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딱 1년에 하루, 비행기도 안뜨고 출근 시간도 미뤄지는 날입니다.
길거리에서는 정치인들이 수능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사람들은 수험생에게 응원하기 위한 선물들을 줍니다.
저는 매년 오늘이 오면 1년에 딱 한 번, 어쩌면 인생에 딱 한 번 있을 오늘을 위해 그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하고 모두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라며 응원한다는 게 조금 무섭습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 얘기를 조금 길게 해보자면 저는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비평준화 제도를 조금 설명을 해보자면 중학교에서의 성적에 따라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제도 입니다.
문제는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다보니 고등학교 간 서열화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중학교를 다니며 고등학교 입시경쟁을 대입 전에 한 번 더 겪어야 한다는 겁니다.
교사들은 더 좋은, 더 높은 고등학교를 보내기 위해서 말합니다.
공부를 해서 소위 말하는 명문 고등학교를 가서 수능을 잘보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여 좋은 직장을 얻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이렇게 입시경쟁에서 승리한다면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입시를 위해 3개이상의 학원을 다녔고 고입을 위한 학원도 다녔습니다. 서울까지 가서 유명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학원을 다니면서도 과목별로 과외도 들었습니다.
저는 한 달 학원비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내가 학원비값을 다하지 못하면 안될 것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잠을 줄이며 억지로 쓸데없는 공부를 하는 건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유명 학원을 여러 곳 다니고, 어떤 사람은 학원을 다니지 못하고.
학교 수업은 노력한다고 모두 다 이뤄지는 건 아니였습니다. 입시경쟁에서 학원의 역할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보니 저희 학교에서 유행처럼 돌았던 말이 있었습니다. ’학원 성적표가 내 성적표가 된다.‘ 였습니다.
비싸고 명문 학교를 많이 진학 시킨 학원을 다녀야 내 성적표가 좋아진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말이 학교에서 공감되고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 입시체제가, 이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느 날, 담임교사가 어느날 이런 말을 합니다.
‘얘들아, 고입, 별 거 아니였지?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저는 이미 중학교를 다니며 쓸데없는 도움안되는 공부를 참아가며 해왔는데, 3년동안 또다시 반복해야한다는 현실에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노력해서 학교에 진학했는데, 그게 별거 아닌 것 마냥 여겨진다는 게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은 노력을 덜해서, 간절함의 정도가 낮아서 떨어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충격적이였습니다.
학교는 학교가 바라는 상의 학생을 원하고 학생은 학교를 진학하기 위해서 그 학교에 끼워맞쳐지려 노력해야합니다.
이런 것까지 왜 확인하는 거지? 싶고 복잡하고 원하는 게 많은 지원자격 맞춰야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현실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싫었습니다.
등급에 따라 대우가 바뀌고 학부모가 학교에 얼마나 신경쓸 수 있는 가에 따른 챙김의 정도가 다른 현실도 저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학생들은 성적을 비교하며 더 높은 등급을 받은 학생에게 찾아가 ’내가 네 방석이 될게!‘라고 외치며 엎드리는 시늉을 합니다. 본인을 ’방석‘이라고 말하며 ’깔리는’ 시늉을 한다는 게 다시 생각을 해보면 충격적인 모습입니다.
’누군가를 짓밟고, 행복을 찾는다‘는 게 정말 참된 행복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입시 이후에 행복이 보장되어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입시경쟁에서 승리해 명문학교를 가고, 명문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직장을 얻어 행복한 삶을 산다는 공식이 있는 건 불평등 세상에서 기득권층에서 만들어낸 대중들에게 조금의 희망을 주기 위한 허상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잡아먹고 경쟁하는 학교와 사회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입시경쟁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 했던 건 학원비 뿐만이 아니였습니다.
제가 성격이 좋고, 나설 줄 알아서 좋다는 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교사는 학년부장이었고 사회가 평등하길 바란다는 말에 서로 공감하며 자주 대화를 나눴던 교사였습니다. 그 교사는 어느날 방과후에 저를 불러서 생기부를 잘 적어주겠다. 명문대학을 보내주겠다고 말하며 대학을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너와 친하니까. 이정도는 해줄 수 있지 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교사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이렇게 공정하지 않은 무언가가 생기는구나. 우리나라 입시가 이래서 더 공정하지 않구나. 인맥으로 남들이 받지 못하는 혜택을 받게 해주겠다는 얘기를 들으며 그 동안 이 교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던 평등은 그저 허상이었나? 싶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점점 실망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시험 성적으로 나뉘는 인생의 망함 정도, 등급에 따라 바뀌는 대우 등. 사람을 나누어 분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존엄을 해치는 일인 지 인지하여야합니다.
제가 오픈 마이크 발언자 자기소개에 제가 연대의 힘을 많이 믿고 연대의 힘은 강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자기소개에서 말했다시피 우리도 함께 연대하여 입시경쟁을 끊어내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위해서 함께 연대합시다! 연대해서 입시경쟁에 저항합시다. 지금까지 민서연이었습니다.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래 발언문>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김정래입니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오늘 괜히 양복을 입고 왔습니다. 제가 위아래로 갖고 있는 딱 한 벌 있는 양복입니다. 양복을 입을 때마다 저는 제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그러니 양복을 입고 온 김에 저희 할아버지 얘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대학 비진학자입니다. 할아버지는 초등학교만 나오셨습니다. 본인이 원치 않았지만 사정이 생겨 비교적 이른 나이에 퇴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긴 노년기 동안 이렇다 할 직업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제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자주 양복 차림이었습니다. 가다마이를 입고, 넥타이도 즐겨 맸습니다. 그렇게 차려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셨어요. 뭘 사지도 않는데 미장원, 꽃집, 과일가게를 들락날락하며 이웃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셨습니다. 심지어 직업이 따로 없으신데 혼자 명함을 파서 사람들을 만나면 건네주었습니다. 명함에는 역시 양복 차림인 할아버지의 사진이 박혀있었고, 동네 노인회 회장, 아마추어 서예대회 우수상 같은,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이력이 적혀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직업은 없고 나이는 많은 자신을 남에게 그대로 드러내기 싫어서 양복으로, 또 명함으로 자신을 감싸고 싶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양복이나 명함 같은 생활의 요소 하나하나가 할아버지에겐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려웠을지도 모르죠. 사회가 인정하는 직업도, 능력도, 학력도 없는 자신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여겨질까 봐서 말입니다. 자신을 설명할 좋은 이름이 없으니 할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명함을 나눠주고 다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즘에 저도 양복까진 아니어도 가다마이를 입고 출근할 때가 많습니다. 직장에서 정갈한 차림새를 요구해서가 아닙니다. 직장에서 복장은 자유롭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는 반팔 티셔츠 하나 입고 출근합니다. 그래도 저는 가다마이를 걸치고, 넥타이를 매고, 구두까지 신고는 합니다. 그 뒤에 숨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봅니다. 옷차림새라는 어설픈 허울. 그 안온함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봅니다. 또 저는 명함도 있습니다. 대부분 업무로 만난 사람에게 명함을 주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쓸데없이 명함을 건네주기도 합니다. 명함이라는 그 작은 종이로 제 보잘것없는 존재를 가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봅니다.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지 2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저 자신이 능력이 없는, 무능한 사람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듯한 학력이나 뛰어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제 모습을 의식해서일 겁니다.
오늘 수능을 보는 사람들 중에서도 스스로가 무능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 친구는 수능을 보는 날 1교시 국어 시험이 마치자 그 다음 시험은 보지 않고 시험장을 나왔다고 해요. 국어 시험만 풀었는데도 이 성적이면 자기가 원하는 대학을 못 갈 것 같았다고 합니다. 대학 입시가 이 친구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기까지는 수능 국어 시험 80분이면 충분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수능이, 그리고 대학 입시가 요구하는 능력은 아주 한정돼있으니 말입니다. 수능 과목은 국어, 수학, 영어, 탐구 정도이고, 수시 원서를 넣는다고 해도 기껏해야 학교생활기록부 몇 장에 쓸 수 있는 정해진 능력만이 입시에서 쓸모 있는 능력으로 인정받습니다. 정해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철저하게 소외됩니다.
그러니 오늘 수능을 보지 않고 대학에도 가지 않는 이들 중에서는 더욱 스스로가 무능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만 같습니다. 저는 수능을 보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입시 원서도 한 장 넣지 않았습니다. 대학입시가 요구하는 정해진 능력이 제게는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제가 너무나 무능해보여서, 대학입시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대학입시가 요구하는 능력이 없을 때 입시의 문턱 앞에서, 사회의 문턱 앞에서 자신을 무능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무능한 사람일까요.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 없는 이들은 정말 무능한 사람일까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저는 저희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퇴직하시기 전 마지막 직업은 필경사였습니다. 손으로 서류에 글씨를 써 넣는 직업입니다. 인쇄기술이 널리 퍼지지 않았던 시기에, 표창장이나 상장 같은 각종 서류를 손 글씨로 쓰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필경사가 거의 필요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손 글씨만 적당히 잘 써서는 밥벌이가 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할아버지의 손 글씨나 붓글씨는 늘 멋이 있었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이미 필경사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드문 시대였습니다.
언뜻 보면 저희 할아버지는 무능한 사람 같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유일한 학력이었고. 글씨는 잘 썼지만 사무실마다 대형 프린터기 쓰는 시대에 손 글씨는 돈이 안 되는 능력이었고. 말년에는 일정한 소득과 이렇다 할 직업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억하는 저희 할아버지는 절대 무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들기름을 넣어 말아주신 간장비빔국수는 늘 맛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꾼 텃밭에서 딴 고추나 고구마도 늘 맛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띄엄띄엄 가르쳐주신 붓글씨의 미학은 아직도 제가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잣대입니다. 이따금 할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타고 동네를 누빈 덕에 저는 동네 지리를 익히고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제가 배울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대학을 가라고 눈치를 주고 공부를 하라고 호통을 치던 학교에서보다, 초등학교만 나온 우리 할아버지에게 저는 훨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할아버지는 사 년 전에 영원한 안식에 드셨습니다. 장례를 마친 이후 저는 할아버지 댁 곳곳에 남은 물건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할아버지 댁 작은 방에 온갖 책이 빼곡하게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책은 다양했습니다. 동양 고전을 비롯한 한문 고서나 주역, 사주명리학, 이름 짓는 법 같은 책도 있었고, 붓글씨 쓰는 교본, 회화 작품을 모아놓은 화집도 있었습니다. 한데, 살펴보니 모든 책에 라벨지로 출력한 글씨로 "이 책은 정래에게"라고 붙어있었습니다. 한 권 한 권 모든 책에요. 누군가는 그걸 보고 할아버지가 못 배운 한을 제게 풀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 책은 정래에게”라고 붙은 그 책들을 저는 대학 비진학자가 대학 비진학자에게 건네는 연대의 손짓으로 이해합니다. 사회가 무능하다고 낙인 찍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우리는 결코 그들의 말처럼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고 되뇌는 연대의 언어로 이해합니다.
저는 그런 저희 할아버지를 무능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세상에 분노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할아버지처럼 사회의 틀로 담을 수 없는 재주와 가치를 지닌 모든 대학 비진학자를 기껏해야 무능한 사람으로 여기는 현실에 분노합니다. 대학입시를 비롯해 계량가능하고 협소한 척도로 사람을 재고 따지는 모든 제도와 체제에 분노합니다. 이 분노는 제가 저희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방식이고, 제가 저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이며, 모든 이가 자신을 자신의 척도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염원입니다. 더는 양복과 명함의 뒤에 숨어야 하지 않는. 양복과 명함의 권위를 빌려야 하지 않는. 존재들이 단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대학 비진학자 가시화 주간을 맞아, 소외된 비진학자들에게 존경과 연대의 말을 건넵니다. 감사합니다.
<새미래 발언문>
저는 대구에서 올라온 활동명 새미래입니다. 하도 주변에서 ‘미래인 청소년’ 하는게 지겨워서 걍 절 새로운 미래로 만들어버렸어요. 호두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니던 내내 주변의 입시 압박과 은근한 기대감으로 인해 저에게 주어지는 부담 때문에 우울과 불안에 둘러싸여 힘든 생활을 해와야 했습니다. 그 사이 저는 피폐해져갔고, 학교를 벗어나면 좀 나아질까 하는 생각에 탈학교를 하였지만 여전히 주변에선 입시에 대한 압박이 주어졌습니다.
며칠 전까지,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일 지도 모를 진학과 비진학 사이의 고민에 저는 밤잠을 설치고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항상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도저히 입시가 뭐길래, 입시가 얼마나 공정하길래 저렇게 청소년들에게 입시를 강요하는 걸까. 왜 입시를 거부한 청소년들은 도태된 청소년으로 분류되는 것일까.’ 저는 아직까지도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법이 무엇일까.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니던 내내 주변의 입시 압박과 은근한 기대감으로 인해 저에게 주어지는 부담 때문에 우울과 불안에 둘러싸여 힘든 생활을 해와야 했습니다.
탈학교를 하기 전 학교에서 만났던 친구가 자신의 인스타 스토리에 한가지 말을 남겨 놓았습니다. 자신이 새벽 6시까지 학원 과제를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오후까지 깨지 못해 학원을 결석했다. 그래서 학원 강사와 친권자의 눈치가 보여 불편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도대체 입시가 뭐길래, 충분히 쉴 권리를 가질 한 존엄한 인간이 새벽까지 학원 과제를 하다가 오후가 다 돼서야 일어나야 했을까요.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부당함은 어떤 언어로 설명해야 할까요. 우리의 삶을 옥죄는 입시경쟁체제와 싸워야겠다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골똘히 생각해봅니다. 도저히 입시가 무엇이길래, 입시가 얼마나 공정하길래 강요되는 것일까. 이 입시경쟁체제는 왜 만들어진 것일까. 한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와 ‘공정’이라는 두 단어입니다. 항상 우리는 ‘기회’,‘공정’이라는 단어를 듣고 살지만 실제로 그것만큼 허상인 것도 없다 생각이 듭니다. 학교 안에서는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무엇이라도 쌓을수 있는 기회가 생기며, 입시에 부담을 느끼고 일찍이 일자리를 찾기로 한 학생들은 제대로 된 노동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 당하니 말입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한 학생들은 친권자들의 자본으로 막대한 수강료를 지불해 이른바 ‘일타 강사’의 강의를 들으러 다닙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한 학생(청소년)들은 그 ‘일타 강사의 강의’를 녹화한 인터넷 강의를 구매하는 것도 친권자들의 눈초리를 받아가며 공부합니다. 어떻나요? 이래도 정말 입시 경쟁 체제를 두고 말하는 ‘기회’니 ‘공정’이니 라는게 맞는 말인가요?
결국 입시경쟁체제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가동되며, 강요되는 시스템이라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이미 자본의 논리에 가동되는 입시경쟁 체제에는 ‘기회’,‘공정’이라는 단어는 사라져버린지 오래입니다.
저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가동되며, 강요되는 입시를 거부합니다.
입시 거부는 단지 입시가 힘들어서, 싫어서가 아닌 내 생존을 위해, 내 생존을 억압하는 자본의 논리에 대한 투쟁입니다.
더 이상 이 말도 안 되는 부당함에 움츠러 들지 맙시다. 더 이상 우리를 향한 입시 강요에 순응하지 맙시다. 자유 발언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미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