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밖 민주주의
“우리는 수능이 만든 세계를 살지 않는다”
지난 겨울 열린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했다. 더 나아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새로운 민주주의와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며, 광장부터 학교까지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외침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 우리들이 겪는 현실은 여전히 민주주의와 멀다. 지금의 입시경쟁교육은 서로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하고, 등급을 매기고, 차별한다.
입시경쟁은 단순히 교육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조직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다. 입시경쟁과 대학중심 사회에서 시험 점수는 능력이 되고, 대학은 자격이 된다. 그리고 그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발언권·결정권·참여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평등한 시민일 수 있을 때 시작되기 때문이다.
입시경쟁은 평등한 시민이 아니라 서열화된 개인을 만들어낸다. 서열은 필연적으로 배제와 차별을 낳고, 결국 모두가 서로의 경쟁자가 될 뿐이다. 지금 교육에서는 입시 준비와 성적 이외의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되며, 사람들은 불안과 자기혐오를 내면화한 채 살아가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넘어 극소수를 위한 ‘그들만의 리그’로만 존재하는 게 지금의 교육 체제다. 비교와 경쟁에 익숙해진 삶 속에서 차별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정당화되기도 한다.
입시경쟁이 당연시되는 사회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감각,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감각을 지우게 한다. 한국 사회는 과도한 경쟁교육 등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유지하고 있다. 학력학벌차별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노력했으니 그 정도 대접은 받아야지”라고도 말한다. 입시경쟁과 서열화로 이루어진 교육 체제는 결국 ‘대학’과 ‘가방끈’이 중요해지는 사회를 낳는다. 대학 진학과 졸업이 당연한 세상에서 비진학자나 저학력자의 삶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입시경쟁은 차별과 혐오를 합리화하며, ‘공정한 능력주의’라는 환상은 경쟁을 정당하게 만들고, 대학중심 사회는 다른 삶과 다양한 길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입시경쟁은 교육이 아니라 체제 유지 장치일 뿐이다.
우리는 입시가 낳은 세상이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태를 겪고 있다. “인정받으려면 능력과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믿음이 내면화된 모습은 극우화된 사회로 나타난다. 극우화되어 가는 사회의 뿌리에는 경쟁과 서열화가 있다. 소수자를 혐오하고, 고학력자, 돈 많은 자, 힘 있는 자를 숭배하는 이들은 평등한 시민들이 서로를 돌보며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평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관계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참여이다. 참여할 자격은 점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민권은 학위로 증명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시험으로 통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입시 사회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당신의 위치는 정당하다. 왜냐하면 점수로 결정됐으니까.” 그 순간 평등은 지워지고, 능력주의가 민주주의를 대체한다.
그래서 우리는 입시와 ‘대학 바깥’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입시경쟁 문제는 ‘더 나은 입시 제도’를 만드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입시 체제와 학력학벌차별이 존재하는 한, 사람의 삶과 가치는 계속해서 점수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떻게 입시를 바꿀 것인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경쟁이 전제된 세계에 살아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입시제도를 수정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경쟁과 서열이 없는 세계에서 살고 싶다. 그 세계가 바로 ‘대학 밖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 수능 점수 없이도 결정할 수 있고, 학력학벌 없이도 말할 수 있고, 경쟁 없이도 관계 맺을 수 있는 세계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우리는 수능이 만든 세계를 살지 않는다.
우리는 경쟁 밖에서 새로운 세계로 간다.
우리는 대학 바깥의 민주주의를 만든다.
2025년 11월 7일
대학 비진학자 가시화 주간을 시작하며
투명가방끈
대학 밖 민주주의
“우리는 수능이 만든 세계를 살지 않는다”
지난 겨울 열린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했다. 더 나아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새로운 민주주의와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며, 광장부터 학교까지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외침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 우리들이 겪는 현실은 여전히 민주주의와 멀다. 지금의 입시경쟁교육은 서로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하고, 등급을 매기고, 차별한다.
입시경쟁은 단순히 교육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조직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다. 입시경쟁과 대학중심 사회에서 시험 점수는 능력이 되고, 대학은 자격이 된다. 그리고 그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발언권·결정권·참여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평등한 시민일 수 있을 때 시작되기 때문이다.
입시경쟁은 평등한 시민이 아니라 서열화된 개인을 만들어낸다. 서열은 필연적으로 배제와 차별을 낳고, 결국 모두가 서로의 경쟁자가 될 뿐이다. 지금 교육에서는 입시 준비와 성적 이외의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되며, 사람들은 불안과 자기혐오를 내면화한 채 살아가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넘어 극소수를 위한 ‘그들만의 리그’로만 존재하는 게 지금의 교육 체제다. 비교와 경쟁에 익숙해진 삶 속에서 차별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정당화되기도 한다.
입시경쟁이 당연시되는 사회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감각,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감각을 지우게 한다. 한국 사회는 과도한 경쟁교육 등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유지하고 있다. 학력학벌차별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노력했으니 그 정도 대접은 받아야지”라고도 말한다. 입시경쟁과 서열화로 이루어진 교육 체제는 결국 ‘대학’과 ‘가방끈’이 중요해지는 사회를 낳는다. 대학 진학과 졸업이 당연한 세상에서 비진학자나 저학력자의 삶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입시경쟁은 차별과 혐오를 합리화하며, ‘공정한 능력주의’라는 환상은 경쟁을 정당하게 만들고, 대학중심 사회는 다른 삶과 다양한 길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입시경쟁은 교육이 아니라 체제 유지 장치일 뿐이다.
우리는 입시가 낳은 세상이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태를 겪고 있다. “인정받으려면 능력과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믿음이 내면화된 모습은 극우화된 사회로 나타난다. 극우화되어 가는 사회의 뿌리에는 경쟁과 서열화가 있다. 소수자를 혐오하고, 고학력자, 돈 많은 자, 힘 있는 자를 숭배하는 이들은 평등한 시민들이 서로를 돌보며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평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관계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참여이다. 참여할 자격은 점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민권은 학위로 증명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시험으로 통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입시 사회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당신의 위치는 정당하다. 왜냐하면 점수로 결정됐으니까.” 그 순간 평등은 지워지고, 능력주의가 민주주의를 대체한다.
그래서 우리는 입시와 ‘대학 바깥’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입시경쟁 문제는 ‘더 나은 입시 제도’를 만드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입시 체제와 학력학벌차별이 존재하는 한, 사람의 삶과 가치는 계속해서 점수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떻게 입시를 바꿀 것인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경쟁이 전제된 세계에 살아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입시제도를 수정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경쟁과 서열이 없는 세계에서 살고 싶다. 그 세계가 바로 ‘대학 밖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 수능 점수 없이도 결정할 수 있고, 학력학벌 없이도 말할 수 있고, 경쟁 없이도 관계 맺을 수 있는 세계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우리는 수능이 만든 세계를 살지 않는다.
우리는 경쟁 밖에서 새로운 세계로 간다.
우리는 대학 바깥의 민주주의를 만든다.
2025년 11월 7일
대학 비진학자 가시화 주간을 시작하며
투명가방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