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2023 대학비진학자 가시화 주간] 후원 회원 남선미 님의 연대글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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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투명가방끈 후원회원 남선미입니다. 작년 수능날, 친구인 미챠님과 함께 슬금슬금이란 공간에서 함께 연대 발언을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작년엔 앉아서 열심히 발언을 듣다가, 올해는 이렇게 용기를 내어 발언할 수 있어 무척 기쁩니다. 


오늘 발언에 앞서 한 가지 고백할게 있습니다. 무척 부끄러운 고백인데요. 사실 저는 오랫동안 능력 만능주의자였습니다. 이번 투명가방끈 행사의 제목이 <우리들의 실패, 실패자들의 연대>인데요. 전 누구보다 실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애써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아주 질기고 긴 “가방끈”을 가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을 네 번 쳤고,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간 대학은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없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학교였어요. 전 그곳에서 누구보다 재밌게 수업을 듣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길게 연을 이어온 소중한 친구를 만났지만, 동시에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선 제 가방끈은 다른 무엇으로 “세탁”해야 될 무엇이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제 가방끈은 끊임없이 제가 가는 길마다 ‘나는 무명의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깐’, 이름을 얻기 위해 더 노력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번은 언젠가 한 동료가 “있잖아, 옛날에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던 애들 어떻게 사나 한번 만나보고 싶어. 사실 4,5,6등급이 대다수잖아. 걔네들은 잘 살고 있을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랐던 기억이 나요. 왜냐면, 제가 그 친구가 말한 학생이었고, 바로 옆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전 “그러게요.”라며 남의 사정인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더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난 실력을 키워서 떳떳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러려면 더 노력해야 돼, 난 10대 때 그 친구만큼 열심히 안 했던 거니깐, 라고요. 그 친구가 단순히 궁금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일 수도 있으니 괜히 찔려서 부끄러워한 것은 나의 업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슬림 없이 말할 수 있는 학교가 왜 나에게는 부끄러운, 지우고 싶은 학교가 되었는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사실 이름을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이름은 길게 따라다녔습니다. 어떤 이는 전공으로 학교를 유추하려고 했고, 어떤 이는 어느 지역인지 헤아려가며 학교 이름을 알고자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능력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살다가, 어느 날 한 친구를 만나고 알았습니다. 첫 만남에 가볍게 ‘어떤 공부 하셨어요?’라고 물은 질문에 ‘저 대학 안 나왔는데요.’라고 말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너무나 모두가 ‘대학 진학’을 했다는 전제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음을요. 내가 차별받는다는 생각에, 오래 놓치고 있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제가 모두가 대학에 진학한 상황을 가정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차별받는 존재이자, 나 역시 누군가를 차별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어요. 어쩌면 저에게 ‘수능 4, 5, 6등급 친구들은 뭐 하고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제가 한 반응처럼 그저 웃어넘겼을 수도 있었을 텐데, 콕 집어서 말해준 그 친구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사실 여전히 일을 할 때, 제가 다닌 학교 이름을 밝혀야 할 때, 아직도 옅은 부끄러움이 따라다닙니다. 그럼에도, 제가 오히려 의도적으로 학교 이름을 말할 때, 걸리적거리던 제 가방끈이 조금이나마 투명해지는 걸 느낍니다. 모두가 인서울 대학에 가는 게 당연하지 않듯이, 모두가 대학에 진학하는 게 당연하게 아님을 이렇게 자꾸자꾸 말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대학 진학자이지만, 끊임없이 어떤 이름은 기억하고, 어떤 이름은 세탁해 버리려는 사회에 함께 저항하고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분들, 그리고 대학 비진학자, 실패자, 이름 없는 자, 가방끈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 모두에게 응원의 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