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소식지] 선거에 학력은 필요없다

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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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학력은 필요없다


공현
투명가방끈 활동가


얼마 전 길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이 나눠준 명함을 받았다. 시의원 후보로 출마했다는 사람의 선거홍보용 명함에서 제일 윗줄에 적혀 있는 경력은 “●●대학교 △△학과 졸업”이었다. 흔한 예지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어느 대학교를 졸업했는지를 가장 먼저 적어 놓는 걸까? 어느 대학을 다녔는지가 정치/선거에서 과연 의미 있는 정보일까?


지난 2024년 총선 때 부산 지역구에 출마한 어느 후보가 네덜란드 무슨 음악대학교를 중퇴했다고 학력을 썼다가 그게 허위다, 아니다 논란이 많았다. 그런데 좀 더 근본적으로 따져 보면 어느 대학에서 음악을 배웠는지가 국회의원 일을 하는 것에 뭐가 중요한가? 거짓말 또는 과장은 나쁘다는 일반론이야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그 이상으로 논란이 될 일이었을지.


전공은 업무에 약간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솔직히 대의제 정치에서 의정 활동을 하거나 지자체장 역할을 하는 데 특별히 유용하거나 불리한 대학 학부 지식이 과연 있을지는 의문이다. 설마 정치학과 졸업자는 정치를 잘하고 행정학과 졸업자는 행정을 잘할 거라는 식의 미신을 믿으시진 않겠지. 그 지역에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중 어디라도 다녔다는, 지역 연고 어필이라면 이해할 법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명함에 적힌 대학명은 소위 ‘인서울’ 대학이거나 다른 지역 국립대일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후보자의 학력 정보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정식으로 신고하는 항목이니 유권자들의 알 권리 차원에서 표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선관위에 신고하는 것과 선전물(벽보, 명함, 공보 등)에 적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언제나 자리가 모자란 명함과 벽보에 핵심 공약이나 다른 경력 대신 굳이 대학/대학원 학력을 적기를 선택하는 것은, 후보자가 그것이 중요한 홍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권자 여러분께 묻고 싶다. 후보자 학력 알아서 선거 하기 좀 편해지셨습니까? 학력 정보는 그 후보자를 평가하는 데 정말 유용한가요? 나는 아무리 궁리해 봐도, 어느 대학을 졸업하거나 중퇴했는지 등은 그 사람이 의원/시장/도지사 등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지 판단하는 데 거의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추측하자면 ‘대학은 나왔으니 정상적인 생애주기를 밟은 사람이군’(1995년 전까지 대학진학률은 50%를 밑돌았으니 나이가 많다면 엘리트층에도 속하겠다) 하는 인정을 받고 싶거나, 대학서열체제에서 상위권 대학 학력을 내걸어 ‘저런 명문대에 가다니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이군’ 하는 편견의 덕을 보고 싶은 것일 터이다. 그야말로 한국 사회가 학력을 얼마나 중요시하는 차별 사회인지를 보여 주는 풍경이라고 하겠다.


학력이 선거에서 그리 의미 있는 정보가 아니라면 표시하지 않는 것이 옳다. 직무와 학력 사이에 직접적이고 합리적인 연관성이 있는지 따져 보는 자세는 무언가가 차별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정말 중요하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려하면,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해악이 학력을 표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보다 현저히 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학력 칸에는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할까? 아주 가끔씩 ‘학력 차별에 반대하여 학력을 기재하지 않는다’라고 밝히는 후보들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나마 그들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알 수 있기에 유의미한 정보라 하겠다. 그 사람이 당선되면 어떤 정책을 펼지 힌트가 되고, 적어도 인사에서 학력 차별은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볼 수 있다.


아, 또 하나 학력 표기가 유용한 경우가 떠올랐다. 이번 서울시교육감 후보들 중 ‘민주진보’를 표방한 후보 대부분이 서울대 출신이더라는 한탄을 본 적이 있다. 학력 표기가 이처럼 한국 사회의 학력·학벌주의, 특정 대학 출신으로의 권력 쏠림 현상을 드러내는 작용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한국이 특정 대학 학력 표기가 열심히 비판 대상이 되는 사회였다면, 정작 후보들은 자기 학력을 굳이 적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출신대학을 후보들이 명함에, 벽보에 열심히 적는 동안은, 한국의 학력·학벌주의는 공고하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