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소식지] 진짜 민주주의의 세계

202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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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민주주의의 세계


공현
투명가방끈 활동가


선거는 민주적인가?


선거에 관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이 잘 안 됐던 적이 많다. 예를 들어, 한 활동가가 청소년 참정권 관련 강의를 하면서 “20살 넘어 첫 투표를 하러 갔다. 도장 찍고 투표함에 넣고 나오니 내가 뭔가 대단한 걸 한 것 같고,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진짜로? 나는 지금까지 10여 번쯤 선거권을 행사하면서 그런 것을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의 이런저런 정치적 의견이 득표수 +1로 요약되고 만다는 것에서 어떤 답답함이나, 좀 과장하면 모욕감 비슷한 것을 느끼곤 한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선거 관련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투표하는 것은 뿌듯함이나 효능감을 느껴서가 아니고 시민으로서의 의무감 때문도 아니다. 그저 정치적으로 내 의견을 표명하고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일단 다 하고 보는,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주체’의 습성일 뿐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언제나 ‘무당층’, ‘무관심층’으로 집계되지만….)


아무래도 선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정치적 의견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적 표현은 선거라는 틀 안에서는 아주 둔탁해지고 협소해진다. 투표용지 위의 어느 칸을 찍느냐와 표 차이로만 환원되는 시점에는 그 협소함은 극심해진다. 그래서 나는 선거가 그리 민주(民主)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루소의 ‘투표를 할 때만 주인이 되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는 말이 곧잘 인용되지만, 투표를 할 때에 우리가 과연 주인이 되는 건지, 주권을 행사하는 건지 의문스럽다.

절차적 정당성만 남아 있던 선거


나의 선거에 대한 회의감은 근본적인 구석이 있으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런 답답함을 느껴 본 사람은 많을 거라 생각한다. 1등만 당선되는 선거의 경우, 나머지 정치적 의사들은 대표/반영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맞는 걸까? 정당 체제상 겨우 2개(많아도 3~4개)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는 건 우리 사회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얼마큼 담을 수 있을까? 제도권 정치는 돈 많고 학력 좋고 힘 많은 두 그룹 중 누구를 더 좋아/싫어하는가의 문제가 되진 않았나? 선거를 통해서 정말로 우리의 삶의 문제를 정치의 장에서 다루게 하고 우리 생활을 더 낫게 만들고 있는가? 별로 그런 것 같지가 않은 역사적 경험 속에서, 선거는 점점 ‘더 나쁜(내가 나쁘다고 믿는) 쪽이 권력을 잡는 걸 막는 일’ 정도의 의미만 가지게 된 것 같다.


선거가 실질적으로 민주적으로 느껴지지 못하기에, 결국 선거에서 유일한 핵심으로 여겨지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이다. 외견상 공정한 룰에 따라서 선거가 치러지는 것이 가장 중요해지는 것이다.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어떤 답답함이나 불만을 느끼고 있더라도, 일단 ‘공정하게’ 선거가 치러지고 눈에 보이는 숫자로 결과가 나오면 ‘승복’해야만 한다. 어쨌든 선출된 자는 우리나라/지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표를 얻었으니까.


나는 2026년 지방 선거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대중적으로 공분을 산 배경에는, 이와 같은 현 민주주의-선거 체제가 놓인 처지가 있지 않을까 해석해 본다. 어차피 지금의 정치나 선거를 통해 우리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별로 없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라 할 만한 장면은 선거밖에 없고, 그 선거에 참여하고 선거 결과에 따르던 이유는 절차적 정당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투표용지가 부족해서 투표를 못 하는 투표소들이 나왔다고? 선거 제도가 세워져 있던 유일하고도 좁은 토대가 흔들린다고 느껴도 이상하지 않다. 여기에 더해 그동안 끊임없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해 온 세력들의 영향으로 불신과 균열은 더 커진다.


여담으로, 나는 선거 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과 인식이 수능 시험에 대한 것과 닮아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아침부터 저녁까지)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큰 의례를 치르고 나면 승자와 패자가 정해진다. 홀로 들어가야 하는 기표소는 마치 혼자서 시험지를 마주해야만 하는 시험장의 풍경 같다.(장애인 참여권 등이 논란이 되는 점도 공통점이다) 절차가 공정하기만 하다면 그 이전의 교육의 문제점이나 그 이후의 결과도 모두 용인받게 된다. 수능 시험이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지, 입시교육이 우리를 더 똑똑하고 유능하게 만들어 주는지 등은 뒷전이다. 어떤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 마치 입시 비리나 잘못 관리된 수능 시험에 분노하듯이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 관리에 분노하는 것 같다. 그 분노에는 정당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입시 비리의 처단이 교육 개혁 또는 더 좋은 입시 제도 도입과 동의어가 아니며, 부실 선거에 대한 조치도 더 민주적인 선거와 동의어가 아니다. 선거와 정치를 어떻게 더 민주적이고 정말 공정하게 만들 것인가, 선거에만 한정되지 않는 진짜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논의와도 꽤나 떨어져 있다.

반복되는 대중적 행동의 분출 앞에서


나는 선거가 민주적이라고 별로 생각해 본 적 없으니, 부실 선거 사태 같은 것도 좀 어이가 없을 뿐 크게 실망스럽진 않다. 뱀발로, 규모가 커진 재선거 요구 집회에 대한 생각을 덧붙여 보자면…. 수천, 수만 명의 미조직된 사람들이 참여하는 집단행동의 성격을 섣불리 규정할 수는 없다. 언론 보도나 온라인상의 파편적 소식들을 근거 삼아서는 더더욱 그렇기에 정보가 충분치 못한 나로선 말을 아끼는 게 옳겠다. 다만 집회·시위 전반에 대한 평가 이전에 감금, 행인에 대한 검문·수색, 정당성 없는 폭력 행사 등의 행위와 장면 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좌파/소수자 집단이 대중 집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훨씬 더 크게 지탄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그런 투덜거림도 좀 있다) 자신들이 옳다는 독선 속에 어떤 일이든 해도 된다고 믿는 듯한 그런 행태는 분명 서울 서부지방법원 사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평가한다.


일반론으로 말하면, 대중적 행동의 분출은 원래 종종 예기치 않게, 비합리적으로 일어난다. 어떤 계기나 자극에 의해 미조직된 사람들이 광장/거리로 나오는 순간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고,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여러 번 있었다. 애초에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 자체가 다수 사람들이 불만감·허무감·불신 등을 느끼고 있는데 이를 설명하고 정치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경로는 막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광장에 나와서 함께 외치고 행동하면서 고양감, 해방감을 느끼고 이를 동력 삼는 것은 윤석열 퇴진 집회 참여자나 재선거 요구 집회 참여자나 그리 다르지 않다.


문제는 그것을 정치적·사회적 요구로 모아 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순간이 지난 뒤에 참여자들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다. 적어도 부정선거 음모론을 내세우는 세력이 바람직한 변화를 견인할 수 없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말 그대로 음모론으로, 실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허구의 타깃만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혹시나, 만약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이 의문을 품게 됐거나 직접 행동하고 목소리 내는 데 관심을 갖게 된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을 나와 같은 사회구성원이자 주체로 존중하기에, 건투를 빌겠다. 주어진 투표용지 안에서 표를 찍는 것만이 민주주의라는 믿음에 머물지 않고 기존 체제에 의문을 던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로 했다면 비로소 진짜 민주주의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투표용지가 부족하기 전부터도 선거는 그리 민주적이지 않았고, 우리가 이 사회의 주인이 아니었으며, 민주주의란 계속 추구하고 모색해야 하는 것임을 직시하는 세계. 거기에서 더 치열하게, 삶과 사회를 돌아보고 진짜 문제를 고민하기를 바란다. 음모론 같은 ‘편리한 정답’에 안주하지 말고 말이다. 원래 ‘주인’이 되는 것은 그리도 수고스럽고, 그래도 보람찬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