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 추방하는 학교구성원조례
- 모두를 위한 조례라는 말은 기만이다
지난 4월 26일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대신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아래 ‘학교구성원조례’)를 통과시킨 데 이어, 오늘(5월 3일) 경기도교육청도 같은 이름의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부칙에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명시됐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과 경기도교육감 모두 학교구성원조례로 학생인권의 폐지를 정당화하고 있다. 모두의 권리와 책임을 균형 있게 다룬다는 착시 효과를 노린 이 조례가 가진 핵심 문제를 따져본다.
학교구성원조례는 학생인권의 구체적 기준과 인권기구(학생인권옹호관과 학생인권센터)를 없애는 대신에 갈등조정기구를 두자고 한다. 이는 근로기준법과 근로감독관 제도를 없애고 사내 갈등조정기구를 만들자는 억지나 다름없다. 인권 침해를 ‘갈등’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도도 문제다. 가정폭력을 ‘부부싸움’으로, 직장내괴롭힘을 ‘사내 갈등’으로 부르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등한 힘을 가진 쌍방의 다툼과 인권 침해의 차이조차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인권이라는 말을 학교 사회에서 추방하고 싶은 것인가.
있으나 마나 한 입법 효과도 문제다. 일찌감치 학생인권조례가 아닌 학교구성원조례를 제정한 인천의 사례가 실재하는 증거다. 2023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학생인권 보장 위한 학교규칙 실태조사〉 결과 자료집에 따르면, 인천 지역 학칙에는 학생인권 보장이나 차별 금지, 학칙 제·개정 과정에 학생 참여 보장과 같은 내용은 찾아보기 힘든 반면, 두발·복장 단속, 학생 동의 없는 소지품 검사, 교내외 활동 제한과 같은 조항이 학생인권조례 제정 지역에 비해 현저하게 많이 발견되었다.
더욱이 서울 학교구성원조례는 갈등조정기구조차 ‘둘 수 있다’고 규정해 교육감의 개인적 의지에 위임하고 있다. 경기도 학교구성원조례안은 학생생활인성담당관을 두겠다고는 하지만, 업무를 뒷받침할 센터의 설치 없이 담당관 혼자서 경기도 전 지역을 포괄하며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건인가. 이 담당관은 학생과 교직원의 권리 침해를 모두 다룰 예정인데, 과연 학생인권을 동등한 비중으로 다룰 수 있을지, 학생인권 침해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교직원의 경우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라는 상위법이 존재하는 반면, 학생의 경우엔 학생인권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상위법이 없는 상태다. 경기도 조례안이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제18조)와 교권보호지원센터의 설치 및 운영(제19조)만 포함하고 있을 뿐, 학생인권을 위한 제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조례의 미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성평등은 성별에 따른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언어지만, 여성이 겪는 차별을 말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모두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말로 흑인의 생명이 증오범죄에 위협받는 현실을 가려서는 안 된다. 모든 학교 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러하기에 더더욱 학생인권을 두텁게 보장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구성원조례나 정당 일각에서 거론하는 학교인권법으로는 학교 사회에서 상대적 약자인 학생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할 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학생인권은 교사의 인권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교육당국의 인권 보장 책임을 촉구하는 언어다. 지금 시급히 필요한 것은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이다.
2024년 5월 3일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 전국행동
학생인권 추방하는 학교구성원조례
- 모두를 위한 조례라는 말은 기만이다
지난 4월 26일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대신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아래 ‘학교구성원조례’)를 통과시킨 데 이어, 오늘(5월 3일) 경기도교육청도 같은 이름의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부칙에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명시됐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과 경기도교육감 모두 학교구성원조례로 학생인권의 폐지를 정당화하고 있다. 모두의 권리와 책임을 균형 있게 다룬다는 착시 효과를 노린 이 조례가 가진 핵심 문제를 따져본다.
학교구성원조례는 학생인권의 구체적 기준과 인권기구(학생인권옹호관과 학생인권센터)를 없애는 대신에 갈등조정기구를 두자고 한다. 이는 근로기준법과 근로감독관 제도를 없애고 사내 갈등조정기구를 만들자는 억지나 다름없다. 인권 침해를 ‘갈등’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도도 문제다. 가정폭력을 ‘부부싸움’으로, 직장내괴롭힘을 ‘사내 갈등’으로 부르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등한 힘을 가진 쌍방의 다툼과 인권 침해의 차이조차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인권이라는 말을 학교 사회에서 추방하고 싶은 것인가.
있으나 마나 한 입법 효과도 문제다. 일찌감치 학생인권조례가 아닌 학교구성원조례를 제정한 인천의 사례가 실재하는 증거다. 2023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학생인권 보장 위한 학교규칙 실태조사〉 결과 자료집에 따르면, 인천 지역 학칙에는 학생인권 보장이나 차별 금지, 학칙 제·개정 과정에 학생 참여 보장과 같은 내용은 찾아보기 힘든 반면, 두발·복장 단속, 학생 동의 없는 소지품 검사, 교내외 활동 제한과 같은 조항이 학생인권조례 제정 지역에 비해 현저하게 많이 발견되었다.
더욱이 서울 학교구성원조례는 갈등조정기구조차 ‘둘 수 있다’고 규정해 교육감의 개인적 의지에 위임하고 있다. 경기도 학교구성원조례안은 학생생활인성담당관을 두겠다고는 하지만, 업무를 뒷받침할 센터의 설치 없이 담당관 혼자서 경기도 전 지역을 포괄하며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건인가. 이 담당관은 학생과 교직원의 권리 침해를 모두 다룰 예정인데, 과연 학생인권을 동등한 비중으로 다룰 수 있을지, 학생인권 침해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교직원의 경우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라는 상위법이 존재하는 반면, 학생의 경우엔 학생인권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상위법이 없는 상태다. 경기도 조례안이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제18조)와 교권보호지원센터의 설치 및 운영(제19조)만 포함하고 있을 뿐, 학생인권을 위한 제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조례의 미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성평등은 성별에 따른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언어지만, 여성이 겪는 차별을 말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모두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말로 흑인의 생명이 증오범죄에 위협받는 현실을 가려서는 안 된다. 모든 학교 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러하기에 더더욱 학생인권을 두텁게 보장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구성원조례나 정당 일각에서 거론하는 학교인권법으로는 학교 사회에서 상대적 약자인 학생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할 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학생인권은 교사의 인권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교육당국의 인권 보장 책임을 촉구하는 언어다. 지금 시급히 필요한 것은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이다.
2024년 5월 3일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 전국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