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교를 갈수록 교육권을 침해당할까?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모임
공현
교육권 ≠ 학교 갈 권리
“글을 배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우간다 소년의 이야기. 삼촌 집에서 염소를 돌보며 살아가는 고아 소년은 짬만 나면 근처 학교에 들러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이들의 수업을 엿듣는다. 펜은 저주를 부른다는 부족 어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소년은 급기야 학교 선생에게 찾아가 글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업료는 물론이고 연필 하나 살 수 없는 소년에게 입학 허가가 내려질 리 없다. 글이야말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소년의 꿈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양치기로만 살아야 하는 운명을 알아차린 소년의 체념한 얼굴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이영진, 2010.05.26. 씨네21.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인권을 생각한다」)
『펜을 찾아서』라는 인권영화를 소개한 글이다. ‘교육권’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개 이런 경우들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갈 수 없다. 일을 해야 하거나, 돈이 없기 때문이다. 또는 아예 그 나라에 학교가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다. 그도 아니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서 학교에 갈 수가 없다. 여하간, 학교를 갈 수가 없다. 배우고 싶은데, 배울 수가 없다. 그것이 교육권 침해다.
이런 그림에서 교육권의 보장을 대표하는 것은 ‘학교 교육’이다. 학교가 없는 곳에는 학교를 세워주고, 사람들이 학교를 가게 해주는 것이 교육권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이 곧 교육이며, 공부할 수 있는 권리가 곧 교육권이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교육권은 아주 잘 보장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초등교육은 거의 100%에 가까운 취학률을 보이고 있고, 심지어 고등교육 ― 대학까지도 70%대의 진학률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교육권은 학교만 보내면 해결이 되는, 그런 간단한 권리가 아니다. 실제로 각종 국제인권조약들을 살펴보면 교육권의 요건을 교육의 목적과 방향, 방식과 내용 등에 있어서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는 뒤집어서 말하면, 이러한 요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교육은 인권으로서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하고 실현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제13조
1.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이 교육에 대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당사국은 교육이 인격과 인격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이 완전히 발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교육이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더욱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당사국은 나아가서 교육에 의하여 모든 사람이 자유 사회에 효율적으로 참여하며, 민족간에 있어서나 모든 인종적, 종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간에 있어서 이해, 관용 및 친선을 증진시키고, 평화유지를 위한 국제연합의 활동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동의한다.
2. 이 규약의 당사국은 동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 사항을 인정한다.
(a) 초등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무상 의무교육으로 실시된다.
(b) 기술 및 직업 중등교육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중등교육은, 모든 적당한 수단에 의하여, 특히 무상교육의 점진적 도입에 의하여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다.
(c) 고등교육은, 모든 적당한 수단에 의하여, 특히 무상교육의 점진적 도입에 의하여, 능력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개방된다.
(d) 기본교육은 초등교육을 받지 못하였거나 또는 초등교육의 전기간을 이수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가능한 한 장려되고 강화된다.
(e) 모든 단계에 있어서 학교제도의 발전이 적극적으로 추구되고, 적당한 연구·장학제도가 수립되며, 교직원의 물질적 처우는 계속적으로 개선된다.
3. 이 규약의 당사국은 부모 또는 경우에 따라서 법정후견인이 그들 자녀를 위하여 공공기관에 의하여 설립된 학교 이외의 학교로서 국가가 정하거나 승인하는 최소한도의 교육수준에 부합하는 학교를 선택하는 자유 및 그들의 신념에 따라 자녀의 종교적, 도덕적 교육을 확보할 수 있는 자유를 존중할 것을 약속한다.
UN아동권리협약
제28조
1. 당사국은 교육에 대한 아동의 권리를 인정하며, 균등한 기회 제공을 기반으로 이 권리를 점진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특별히 다음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 초등교육은 의무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나. 일반 및 직업교육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중등교육 발전을 장려하고, 모든 아동이 중등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무상교육을 도입하거나 및 필요한 경우 재정적 지원을 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다. 모든 사람에게 능력에 따라 고등교육 기회가 개방되도록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라. 모든 아동이 교육 및 직업관련 정보와 지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마. 학교 출석률과 중퇴율 감소를 촉진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2. 당사국은 학교 규율이 아동의 인격을 존중하고 이 협약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3. 당사국은 특히 전세계의 무지와 문맹 퇴치에 이바지하고, 과학기술지식 및 현대적인 교육체계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부문의 국제협력을 증진하고 장려해야 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특별히 개발도상국의 필요를 고려해야 한다.
제29조
1. 당사국은 아동교육이 다음의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가. 아동의 인격, 재능 및 정신적∙신체적 잠재력의 최대 계발
나. 인권과 기본적 자유, 유엔헌장에 규정된 원칙 존중
다. 자신의 부모와 문화적 주체성, 언어 및 가치, 현거주국과 출신국의 국가적 가치 및 이질적인 문명에 대한 존중
라. 아동이 인종적∙민족적∙종교적 집단 및 원주민 등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해, 평화, 관용, 성(性) 평등 및 우정의 정신에 입각해 자유사회에서 책임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준비 마. 자연환경에 대한 존중
과연 한국의 교육, 한국의 학교가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더욱 존중”하는지, “인권과 기본적 자유, 유엔헌장에 규정된 원칙 존중”, “아동의 인격, 재능 및 정신적․신체적 잠재력의 최대 계발”을 목표로 지향하고 있는지 따져볼 만하다. 과연 학생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중 얼마만큼이 이 기준에 맞는다고 할 수 있을까?
더불어서, UN사회권위원회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이 선언한 ‘교육권’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해석하고 설명하는 일반논평을 내놓은 바 있다. 이 일반논평에서는 교육권의 필수 요소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유엔사회권위원회 일반논평 13: 교육에 대한 권리 (1999)
6. 교육은 그 모든 형태 및 모든 단계에 있어 다음과 같은 상호연관된 필수 요소를 가져야 한다.
(a) 가용성 : 당사국의 관할권 내에 교육기관 및 프로그램이 충분한 양으로 이용 가능해야 하며 제대로 기능하고 있어야 한다. 이들이 기능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이들이 운영되는 개발상의 배경 등 다양한 요소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모든 기관과 프로그램은 건물 또는 자연력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기타 형태의 시설, 남녀 모두를 위한 위생시설, 안전한 식수, 국내에서 경쟁력 있는 보수를 받는 훈련된 교사, 교육자료 등을 필요로 한다. 어떤 기관과 프로그램은 도서관, 컴퓨터 시설 및 정보기술 같은 설비도 필요로 할 수 있다.
(b) 접근성 : 교육 기관 및 프로그램은 당사국 관할권 내의 모든 이에게 차별 없이 접근 가능해야 한다. 접근성에는 세 가지 차원에서 겹친다.
○비차별 - 교육은 모든 이에게, 특히 가장 취약한 집단에게 어떠한 금지된 근거에 의한 차별 없이 법적으로나 사실상 접근 가능해야 한다.
○물리적 접근성- 교육은 어떤 합리적으로 편리한 지리적 장소로의 등교(예: 동네학교)에 의해, 혹은 현대적 기술(예: ‘원격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을 통하여 안전한 물리적 거리 내에 있어야 한다.
○경제적 접근성- 교육은 누구에게나 감당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접근성이란 측면에 대해서 제13조 2항은 초등, 중등 및 고등 교육에 대해 서로 다른 표현으로 규정하고 있다. 초등 교육은 “모든 이에게 무상으로” 이용 가능해야 한다고 한 반면 중등 및 고등 교육에 대해서는 당사국이 무상의 교육을 점진적으로 도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c) 수용성 : 교과 과정 및 교수법 등 교육의 형태와 내용은 학생이, 그리고 적절한 경우 학부모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예: 당면한 사회문제에 관련되고, 문화적으로 적절하며 양질의). 이는 제13조 1항에 의해 요구되는 교육의 목적과 당사국이 승인하는 최소한의 교육기준에 부합하여야 한다.
(d) 적응성: 교육은 변화하는 사회와 공동체의 필요에 부응하고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환경에 처해있는 학생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하여야 한다.
7. 이러한 “상호 연관된 필수적 요소”의 적절한 적용을 고려함에 있어 학생의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 고려사항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4가지 요소를 가지고 살펴보면, 한국의 교육은 현재 가용성의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양질의 교육시설과 교사 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접근성, 수용성, 적응성 등의 측면에서는 인권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접근성 면에서는 차별이 존재하며, 고등학교나 대학교로 가면 경제적 접근성도 상당히 떨어지게 된다. 적응성 면에서도 과연 학교에서 주로 교육하는 내용이 사회와 공동체의 필요에 부응하며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환경의 학생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특히 수용성은 암담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수업은 사회 문제와 동떨어져 있기 십상이고, 또한 무엇보다 학생이 수용하지 못할 분량과 방식의 교육을 강제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이 수용성 기준에 대해서 인권교육센터 들의 배경내 활동가는 “육체적․정신적․경제적․문화적으로 감당할 만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학생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이루어지며 때로는 폭력과 정신적 압박을 통해 강요되는 장시간 학습, 입시경쟁교육 등은 한국 교육이 학생이 수용할 만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교를 많이 다니고 학교에 많이 머문다고 해서 교육권이 잘 보장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교육권’이 맥락에 따라 그 구체적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8~9년 일제고사 논란이 있을 때, 장애인 단체들은 학교들이 장애 학생들 때문에 평균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며 장애 학생들을 시험에서 배제하는 행태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그런데 반대로 일제고사 대비 보충수업 등을 강요당한 비장애 학생들은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쪽은 시험에서 배제당하는 것을 비판하고 시험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하며, 다른 한쪽은 시험을 거부할 권리를 요구한다. 이는 학교 제도 자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학교에 갈 권리를 요구할 때, 또 누군가는 학교를 뛰쳐나가는 꿈을 꾸곤 한다. 얼핏 보면 마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모두가 교육권의 보장을 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권은 단지 학교에 가서 공부할 권리로 해석하지 않고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해야 한다. 때로는 학교를 안 가는 것도 교육권의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 또한 학교교육의 기회를 제공받는 것 자체뿐만 아니라, 어떤 교육 활동에 어떻게 참여하는지 역시 인권 기준에 따라 살펴봐야 한다.
교육권을 침해하는 경쟁, 폭력, 차별, 사유화
그렇다면 한국의 교육이 접근성, 수용성, 적응성 등의 기준에 어긋나게 되는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거시적인 정책이나 정부 예산 등의 문제에서부터, 미시적인 문화나 교과 내용까지 살펴봐야 되겠지만, 일단 크게 나누어보면 경쟁, 폭력, 차별, 사유화의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경쟁은 현재 교육의 목표이자 중심이자 내용이 되면서 교육권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입시나 취업 등으로 종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성적 경쟁이 교육의 본질처럼 되면서, 다양한 교육 경험과 진로를 추구하기보다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교육, 정답만을 외우는 교육이 되어 버렸다. 또한 경쟁 압박은 학생들에게 무리하고 과도한 교육 활동을 강요하기 때문에 한국 교육의 수용성을 떨어뜨리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대학 교육도 상대평가 등이 도입되고 취업 불안이 커지면서 경쟁 원리에 지배당하고 있다. UN아동권리위원회와 UN사회권위원회 역시, 한국 정부에 대한 심의 때, 심각하게 경쟁적인 교육환경이 발달권, 여가권, 건강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했던 적이 있다.
차별은 경쟁과 필연적으로 같이 움직이는 요소이다. 경쟁에서 밀려나고 패배한 사람들은 차별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교육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과정이 되고, 개개인의 계발을 가로막게 되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는 교육이 성적, 경제력 등에 의한 차별을 만들어내고 이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한국의 교육은 빈민,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접근에 차별을 두고 있다. 학교 안에서도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소수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차별하고 배제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이는 교육활동에 차별 없는 참여를 가로막는 실질적인 장벽이 되고 있다.
차별만큼이나 폭력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은 비록 법적으로는 일부 체벌금지가 이루어졌지만, 정부에서는 이를 알리고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체벌에 의해 잇따라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고, 알려지지 않은 체벌은 훨씬 많다. 이에 따라 UN사회권위원회는 체벌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며, 폭력이 아니더라도 공개적으로 창피나 모욕을 주는 벌 역시 인간의 존엄성에 위배된다고 지적, 교육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체벌뿐만 아니라 학교가 가해자가 되어 인권을 침해하는 각종 규율과 관행들은 교육의 수용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학생들 간의 폭력이나 괴롭힘, 대학교에도 존재하는 선후배간의 위계와 그에 따른 폭력 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폭력은 많은 경우 차별과도 연관을 갖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나 약자들이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 쉬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의 사유화가 있다. 현재 한국의 교육은 학교 소유 구조, 교육비 부담, 교육기관의 운영 등 여러 방면에서 사유화가 이루어져 있거나, 진행되고 있다. 인권 기준은 고등교육까지도 점진적으로 무상교육화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치솟은 등록금은 잘 떨어지지 않고 있으며 사립대학들 등은 정부가 통제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초중등교육의 경우에도, 학교들은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일부 관료나 사학재단 등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교육비 부담 면에서도 공적 부담보다는 사적 부담이 훨씬 큰 형편이다. 학교만이 아니라 각종 사교육기관 역시 교육권 기준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각종 사설학원 등은 법제상으로나 운영상으로나 인권 보장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대학의 시장화, 교육의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기업이 학교를 소유하고 학과를 통폐합하고 교육과정과 학교운영을 기업의 입맛에 맞게 하는 것 역시 대두되고 있는 문제다.
교육권은 대단히 중요한 인권이다. 교육은 인격을 발전시키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잘 관계 맺기 위해 필요하다. 교육권을 박탈당한다면, 개인이 다른 개인이나 사회와 관계를 맺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될 것이다. 교육권의 특별한 지위는 교육권이 다른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필요한 권리라는 데서도 유래한다. 그래서 교육권을 ‘인권을 알 권리’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자신의 인권을 잘 행사하고 요구할 능력을 길러주는 권리로서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교육에 대한 각종 담론이나 교육기관들은 넘쳐나지만, 정작 ‘교육권’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는 듯하다. 과거 ‘반값등록금’ 운동 때조차도, 등록금이 이정도는 너무 비싸다는 사회적 공감과 요구는 있었어도, 대학교육까지도 무상화해야 한다는 인권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는 힘을 얻지 못했다. 교육은 마치 의무이고, 경쟁이고, 신분상승의 통로인 것처럼 생각되고 있지, 권리로 생각되지 않고 있다. 결국 교육에 대한 권리가 언급될 때는 공부할 권리라는 좁은 차원에서 ‘학습권’ 등을 내세울 때뿐이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서 정숙하십시오.’, ‘교사들의 단체행동은 학습권 침해다.’, ‘학교가 학생을 퇴학시킨 것은 학생의 학습권을 짓밟은 것이다.’… 하지만 교육권은 단지 공부할 권리 ― 학습권만으로 대변되지 않는다. 관점을 바꿔서 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지금 교육현장의 온갖 일상 자체가 교육권 침해일 수도 있다. 인권으로서 교육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교육을 바꾸는 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왜 학교를 갈수록 교육권을 침해당할까?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모임
공현
교육권 ≠ 학교 갈 권리
“글을 배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우간다 소년의 이야기. 삼촌 집에서 염소를 돌보며 살아가는 고아 소년은 짬만 나면 근처 학교에 들러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이들의 수업을 엿듣는다. 펜은 저주를 부른다는 부족 어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소년은 급기야 학교 선생에게 찾아가 글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업료는 물론이고 연필 하나 살 수 없는 소년에게 입학 허가가 내려질 리 없다. 글이야말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소년의 꿈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양치기로만 살아야 하는 운명을 알아차린 소년의 체념한 얼굴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이영진, 2010.05.26. 씨네21.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인권을 생각한다」)
『펜을 찾아서』라는 인권영화를 소개한 글이다. ‘교육권’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개 이런 경우들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갈 수 없다. 일을 해야 하거나, 돈이 없기 때문이다. 또는 아예 그 나라에 학교가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다. 그도 아니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서 학교에 갈 수가 없다. 여하간, 학교를 갈 수가 없다. 배우고 싶은데, 배울 수가 없다. 그것이 교육권 침해다.
이런 그림에서 교육권의 보장을 대표하는 것은 ‘학교 교육’이다. 학교가 없는 곳에는 학교를 세워주고, 사람들이 학교를 가게 해주는 것이 교육권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이 곧 교육이며, 공부할 수 있는 권리가 곧 교육권이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교육권은 아주 잘 보장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초등교육은 거의 100%에 가까운 취학률을 보이고 있고, 심지어 고등교육 ― 대학까지도 70%대의 진학률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교육권은 학교만 보내면 해결이 되는, 그런 간단한 권리가 아니다. 실제로 각종 국제인권조약들을 살펴보면 교육권의 요건을 교육의 목적과 방향, 방식과 내용 등에 있어서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는 뒤집어서 말하면, 이러한 요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교육은 인권으로서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하고 실현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제13조
1.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이 교육에 대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당사국은 교육이 인격과 인격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이 완전히 발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교육이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더욱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당사국은 나아가서 교육에 의하여 모든 사람이 자유 사회에 효율적으로 참여하며, 민족간에 있어서나 모든 인종적, 종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간에 있어서 이해, 관용 및 친선을 증진시키고, 평화유지를 위한 국제연합의 활동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동의한다.
2. 이 규약의 당사국은 동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 사항을 인정한다.
(a) 초등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무상 의무교육으로 실시된다.
(b) 기술 및 직업 중등교육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중등교육은, 모든 적당한 수단에 의하여, 특히 무상교육의 점진적 도입에 의하여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다.
(c) 고등교육은, 모든 적당한 수단에 의하여, 특히 무상교육의 점진적 도입에 의하여, 능력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개방된다.
(d) 기본교육은 초등교육을 받지 못하였거나 또는 초등교육의 전기간을 이수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가능한 한 장려되고 강화된다.
(e) 모든 단계에 있어서 학교제도의 발전이 적극적으로 추구되고, 적당한 연구·장학제도가 수립되며, 교직원의 물질적 처우는 계속적으로 개선된다.
3. 이 규약의 당사국은 부모 또는 경우에 따라서 법정후견인이 그들 자녀를 위하여 공공기관에 의하여 설립된 학교 이외의 학교로서 국가가 정하거나 승인하는 최소한도의 교육수준에 부합하는 학교를 선택하는 자유 및 그들의 신념에 따라 자녀의 종교적, 도덕적 교육을 확보할 수 있는 자유를 존중할 것을 약속한다.
UN아동권리협약
제28조
1. 당사국은 교육에 대한 아동의 권리를 인정하며, 균등한 기회 제공을 기반으로 이 권리를 점진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특별히 다음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 초등교육은 의무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나. 일반 및 직업교육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중등교육 발전을 장려하고, 모든 아동이 중등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무상교육을 도입하거나 및 필요한 경우 재정적 지원을 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다. 모든 사람에게 능력에 따라 고등교육 기회가 개방되도록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라. 모든 아동이 교육 및 직업관련 정보와 지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마. 학교 출석률과 중퇴율 감소를 촉진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2. 당사국은 학교 규율이 아동의 인격을 존중하고 이 협약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3. 당사국은 특히 전세계의 무지와 문맹 퇴치에 이바지하고, 과학기술지식 및 현대적인 교육체계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부문의 국제협력을 증진하고 장려해야 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특별히 개발도상국의 필요를 고려해야 한다.
제29조
1. 당사국은 아동교육이 다음의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가. 아동의 인격, 재능 및 정신적∙신체적 잠재력의 최대 계발
나. 인권과 기본적 자유, 유엔헌장에 규정된 원칙 존중
다. 자신의 부모와 문화적 주체성, 언어 및 가치, 현거주국과 출신국의 국가적 가치 및 이질적인 문명에 대한 존중
라. 아동이 인종적∙민족적∙종교적 집단 및 원주민 등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해, 평화, 관용, 성(性) 평등 및 우정의 정신에 입각해 자유사회에서 책임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준비 마. 자연환경에 대한 존중
과연 한국의 교육, 한국의 학교가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더욱 존중”하는지, “인권과 기본적 자유, 유엔헌장에 규정된 원칙 존중”, “아동의 인격, 재능 및 정신적․신체적 잠재력의 최대 계발”을 목표로 지향하고 있는지 따져볼 만하다. 과연 학생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중 얼마만큼이 이 기준에 맞는다고 할 수 있을까?
더불어서, UN사회권위원회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이 선언한 ‘교육권’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해석하고 설명하는 일반논평을 내놓은 바 있다. 이 일반논평에서는 교육권의 필수 요소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유엔사회권위원회 일반논평 13: 교육에 대한 권리 (1999)
6. 교육은 그 모든 형태 및 모든 단계에 있어 다음과 같은 상호연관된 필수 요소를 가져야 한다.
(a) 가용성 : 당사국의 관할권 내에 교육기관 및 프로그램이 충분한 양으로 이용 가능해야 하며 제대로 기능하고 있어야 한다. 이들이 기능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이들이 운영되는 개발상의 배경 등 다양한 요소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모든 기관과 프로그램은 건물 또는 자연력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기타 형태의 시설, 남녀 모두를 위한 위생시설, 안전한 식수, 국내에서 경쟁력 있는 보수를 받는 훈련된 교사, 교육자료 등을 필요로 한다. 어떤 기관과 프로그램은 도서관, 컴퓨터 시설 및 정보기술 같은 설비도 필요로 할 수 있다.
(b) 접근성 : 교육 기관 및 프로그램은 당사국 관할권 내의 모든 이에게 차별 없이 접근 가능해야 한다. 접근성에는 세 가지 차원에서 겹친다.
○비차별 - 교육은 모든 이에게, 특히 가장 취약한 집단에게 어떠한 금지된 근거에 의한 차별 없이 법적으로나 사실상 접근 가능해야 한다.
○물리적 접근성- 교육은 어떤 합리적으로 편리한 지리적 장소로의 등교(예: 동네학교)에 의해, 혹은 현대적 기술(예: ‘원격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을 통하여 안전한 물리적 거리 내에 있어야 한다.
○경제적 접근성- 교육은 누구에게나 감당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접근성이란 측면에 대해서 제13조 2항은 초등, 중등 및 고등 교육에 대해 서로 다른 표현으로 규정하고 있다. 초등 교육은 “모든 이에게 무상으로” 이용 가능해야 한다고 한 반면 중등 및 고등 교육에 대해서는 당사국이 무상의 교육을 점진적으로 도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c) 수용성 : 교과 과정 및 교수법 등 교육의 형태와 내용은 학생이, 그리고 적절한 경우 학부모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예: 당면한 사회문제에 관련되고, 문화적으로 적절하며 양질의). 이는 제13조 1항에 의해 요구되는 교육의 목적과 당사국이 승인하는 최소한의 교육기준에 부합하여야 한다.
(d) 적응성: 교육은 변화하는 사회와 공동체의 필요에 부응하고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환경에 처해있는 학생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하여야 한다.
7. 이러한 “상호 연관된 필수적 요소”의 적절한 적용을 고려함에 있어 학생의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 고려사항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4가지 요소를 가지고 살펴보면, 한국의 교육은 현재 가용성의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양질의 교육시설과 교사 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접근성, 수용성, 적응성 등의 측면에서는 인권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접근성 면에서는 차별이 존재하며, 고등학교나 대학교로 가면 경제적 접근성도 상당히 떨어지게 된다. 적응성 면에서도 과연 학교에서 주로 교육하는 내용이 사회와 공동체의 필요에 부응하며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환경의 학생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특히 수용성은 암담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수업은 사회 문제와 동떨어져 있기 십상이고, 또한 무엇보다 학생이 수용하지 못할 분량과 방식의 교육을 강제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이 수용성 기준에 대해서 인권교육센터 들의 배경내 활동가는 “육체적․정신적․경제적․문화적으로 감당할 만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학생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이루어지며 때로는 폭력과 정신적 압박을 통해 강요되는 장시간 학습, 입시경쟁교육 등은 한국 교육이 학생이 수용할 만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교를 많이 다니고 학교에 많이 머문다고 해서 교육권이 잘 보장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교육권’이 맥락에 따라 그 구체적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8~9년 일제고사 논란이 있을 때, 장애인 단체들은 학교들이 장애 학생들 때문에 평균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며 장애 학생들을 시험에서 배제하는 행태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그런데 반대로 일제고사 대비 보충수업 등을 강요당한 비장애 학생들은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쪽은 시험에서 배제당하는 것을 비판하고 시험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하며, 다른 한쪽은 시험을 거부할 권리를 요구한다. 이는 학교 제도 자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학교에 갈 권리를 요구할 때, 또 누군가는 학교를 뛰쳐나가는 꿈을 꾸곤 한다. 얼핏 보면 마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모두가 교육권의 보장을 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권은 단지 학교에 가서 공부할 권리로 해석하지 않고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해야 한다. 때로는 학교를 안 가는 것도 교육권의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 또한 학교교육의 기회를 제공받는 것 자체뿐만 아니라, 어떤 교육 활동에 어떻게 참여하는지 역시 인권 기준에 따라 살펴봐야 한다.
교육권을 침해하는 경쟁, 폭력, 차별, 사유화
그렇다면 한국의 교육이 접근성, 수용성, 적응성 등의 기준에 어긋나게 되는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거시적인 정책이나 정부 예산 등의 문제에서부터, 미시적인 문화나 교과 내용까지 살펴봐야 되겠지만, 일단 크게 나누어보면 경쟁, 폭력, 차별, 사유화의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경쟁은 현재 교육의 목표이자 중심이자 내용이 되면서 교육권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입시나 취업 등으로 종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성적 경쟁이 교육의 본질처럼 되면서, 다양한 교육 경험과 진로를 추구하기보다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교육, 정답만을 외우는 교육이 되어 버렸다. 또한 경쟁 압박은 학생들에게 무리하고 과도한 교육 활동을 강요하기 때문에 한국 교육의 수용성을 떨어뜨리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대학 교육도 상대평가 등이 도입되고 취업 불안이 커지면서 경쟁 원리에 지배당하고 있다. UN아동권리위원회와 UN사회권위원회 역시, 한국 정부에 대한 심의 때, 심각하게 경쟁적인 교육환경이 발달권, 여가권, 건강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했던 적이 있다.
차별은 경쟁과 필연적으로 같이 움직이는 요소이다. 경쟁에서 밀려나고 패배한 사람들은 차별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교육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과정이 되고, 개개인의 계발을 가로막게 되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는 교육이 성적, 경제력 등에 의한 차별을 만들어내고 이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한국의 교육은 빈민,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접근에 차별을 두고 있다. 학교 안에서도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소수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차별하고 배제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이는 교육활동에 차별 없는 참여를 가로막는 실질적인 장벽이 되고 있다.
차별만큼이나 폭력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은 비록 법적으로는 일부 체벌금지가 이루어졌지만, 정부에서는 이를 알리고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체벌에 의해 잇따라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고, 알려지지 않은 체벌은 훨씬 많다. 이에 따라 UN사회권위원회는 체벌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며, 폭력이 아니더라도 공개적으로 창피나 모욕을 주는 벌 역시 인간의 존엄성에 위배된다고 지적, 교육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체벌뿐만 아니라 학교가 가해자가 되어 인권을 침해하는 각종 규율과 관행들은 교육의 수용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학생들 간의 폭력이나 괴롭힘, 대학교에도 존재하는 선후배간의 위계와 그에 따른 폭력 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폭력은 많은 경우 차별과도 연관을 갖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나 약자들이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 쉬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의 사유화가 있다. 현재 한국의 교육은 학교 소유 구조, 교육비 부담, 교육기관의 운영 등 여러 방면에서 사유화가 이루어져 있거나, 진행되고 있다. 인권 기준은 고등교육까지도 점진적으로 무상교육화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치솟은 등록금은 잘 떨어지지 않고 있으며 사립대학들 등은 정부가 통제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초중등교육의 경우에도, 학교들은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일부 관료나 사학재단 등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교육비 부담 면에서도 공적 부담보다는 사적 부담이 훨씬 큰 형편이다. 학교만이 아니라 각종 사교육기관 역시 교육권 기준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각종 사설학원 등은 법제상으로나 운영상으로나 인권 보장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대학의 시장화, 교육의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기업이 학교를 소유하고 학과를 통폐합하고 교육과정과 학교운영을 기업의 입맛에 맞게 하는 것 역시 대두되고 있는 문제다.
교육권은 대단히 중요한 인권이다. 교육은 인격을 발전시키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잘 관계 맺기 위해 필요하다. 교육권을 박탈당한다면, 개인이 다른 개인이나 사회와 관계를 맺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될 것이다. 교육권의 특별한 지위는 교육권이 다른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필요한 권리라는 데서도 유래한다. 그래서 교육권을 ‘인권을 알 권리’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자신의 인권을 잘 행사하고 요구할 능력을 길러주는 권리로서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교육에 대한 각종 담론이나 교육기관들은 넘쳐나지만, 정작 ‘교육권’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는 듯하다. 과거 ‘반값등록금’ 운동 때조차도, 등록금이 이정도는 너무 비싸다는 사회적 공감과 요구는 있었어도, 대학교육까지도 무상화해야 한다는 인권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는 힘을 얻지 못했다. 교육은 마치 의무이고, 경쟁이고, 신분상승의 통로인 것처럼 생각되고 있지, 권리로 생각되지 않고 있다. 결국 교육에 대한 권리가 언급될 때는 공부할 권리라는 좁은 차원에서 ‘학습권’ 등을 내세울 때뿐이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서 정숙하십시오.’, ‘교사들의 단체행동은 학습권 침해다.’, ‘학교가 학생을 퇴학시킨 것은 학생의 학습권을 짓밟은 것이다.’… 하지만 교육권은 단지 공부할 권리 ― 학습권만으로 대변되지 않는다. 관점을 바꿔서 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지금 교육현장의 온갖 일상 자체가 교육권 침해일 수도 있다. 인권으로서 교육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교육을 바꾸는 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