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고용 영역에서의 학력 차별,
출신학교차별금지법으로 멈춰세우기
피아, 공현
고3 수능 날, 나의 삶을 유예시키고, 주변인들과 끊임없이 경쟁할 것을 요구하며, 입시의 결과를 이유로 등급을 매기는 교육과 사회에 불복종을 선언하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했다. 학생들의 교육권과, 청소년이 사람답게 살 권리와, 사회에 존재하는 대학비진학자들을 차별하지 말라는 11명의 거부선언자들의 외침에도 뭐 하나 제대로 바뀐 것 없이 벌써 4년이 지나갔다. 여전히 수능철만 다가오면 잠깐씩 거부선언자들을 찾는 몇몇 인터뷰들은 선언 이후의 삶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후회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궁금해한다. 그럴 때 나는 “뭐 그리 다르게 살고 있겠냐, 힘들 때도 있고 좋기도 하고 그렇다.” 하고 넘기곤 했다. 그런 질문에는 내가 조금은 후회하고 불행하기를 바라거나, 좀 더 특별한-열정적인-무언가를 바라는 은근한 속내가 느껴질 때도 있어서 더 열심히 무심하게 넘겨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알고 있다. 그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나의 삶이 마냥 기대만큼 순탄하지만은 못하다는 것을. 이 사회에서 비진학자로 살아가는 것은 나를 불행하고 불안하게 하는 상황들로 자꾸만 향하게 된다는 것을.
선언 이후 나는 바로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나의 삶의 주 관심사이자 동기는 사회운동이었다. 활동을 하며 생계를 함께 유지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임금 노동을 해야 했다. 활동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는 노동보다는 단순한 업무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하지만 막상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보니, 장시간 서있는 업무임에도 의자 하나 없고, 밥 먹을 공간도 시간도 없어 밖에 나가 서서 급하게 먹어야 하는 일터의 환경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매주 바뀌는 일정과 같은 상황들이 자꾸만 닥쳐왔다. 알바 노동자를 존엄한 노동자로 제대로 취급하지 않는 환경들과 나를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대체품 정도로 취급하며 함부로 대하는 사업주나, 정규직 매니저들의 노골적인 하대를 맞닥뜨려야했다.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선택했던 알바 노동이 오히려 나의 건강과 존엄을 소모시켜 활동을 더 하기 어렵게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나는 여기저기 알바를 전전하는 일을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체력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K.O.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활동이나 생계를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좀 더 내가 존중받고 인정받을 수 있으며 너무 혹사당하지 않는, 무엇보다 일정이 너무 들쭉날쭉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일터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비교적 안정적인 일터들 중에 중졸에 어떤 자격증조차 없는 여성인 나를 채용하겠다고 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 직장에서 구인하는 업무가 ‘대학 졸업’이라는 학력을 필수로 필요로 하는 업무인지와는 관계없이, 구인 공고에는 대부분이 “대졸”이 기본 자격으로 기재되어 있었고, “학력 무관”이라고 기재해놓은 곳조차 면접에 가서는 “당연히 대졸을 고려하고 있었다.”라고 얘기하며 거절했다. 어느 정도 여유가 보장된다고 하는 규모가 있는 회사는 말할 필요도 없이 원서도 작성할 수 없었다. 애초에 나에게는 서비스직이나 단순 노동과 같은 일자리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의 종류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나마 안정적이고 노동권 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일터에는 들어갈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계층화된 일자리
내가 경험한 고용/노동 영역에서의 현실은 각종 통계 자료에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 고졸 학력의 청년들은 경제적으로 명백하게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취업률 자체로만 보면 고졸, 전문대졸, (4년제) 대학졸업 사이에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자리의 질이나 소득, 노동 조건을 보면 차이가 매우 크다. (2019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분석)
우선, 첫 일자리 취업 당시 고용 형태는, 고졸 청년은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으나 일시적인 일자리’가 17.6%로 대졸 청년에 비해서 이러한 이러한 고용 형태가 11%p 더 높은 등 단기/일시적 일자리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나아가 현재 일자리에서의 지위를 보면, 전문대학 졸업자 중 74.1%, 대학 졸업자 중 77.6%는 ‘상용 근로자’인 반면 고등학교 졸업자는 45.3%만이 상용 근로자로 일하고 있으며, ‘임시 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고졸 청년 비율은 36.0%로 전문대졸 및 대졸보다 2배 이상 높다. 고졸 청년 중 ‘일용 근로자’ 역시 전문대학 졸업자보다 약 4배, 대학 졸업자보다 약 8배 많은 비율을 보이며, ‘무급 가족 종사자’ 비율 역시 고등학교 졸업자에게서 높은 분포를 보인다.
현재 일자리에서 하는 일의 형태는, 4년제 대졸 청년은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가 41.0%로 가장 높았고, ‘사무 종사자’(35.0%)가 그 다음을 차지한다. 전문대졸 청년은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30.3%), ‘사무 종사자’(21.0%), ‘서비스 종사자’(13.5%) 순이었다. 끝으로 고졸 청년은 ‘서비스 종사자’(23.3%), ‘판매 종사자’(16.7%), ‘단순 노무 종사자’(14.3%) 순이다. 사실상 학력에 따라서 전문직과 사무 종사자는 대체로 전문대졸 이상 학력이 차지하고, 서비스, 판매, 단순 노무 등의 일자리는 고졸 학력이 차지하는 식으로 뚜렷이 계층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당연히 소득에도 반영된다. 첫 일자리에서의 월급 분포 조사 결과, 고등학교 졸업자의 경우 ‘100만 원 이상-150만 원 미만’(35.5%), ‘150만 원 이상-200만 원 미만’(26.8%), ‘100만 원 미만’(26.0%) 순이었고, 전문대학 졸업자는 ‘150만 원 이상-200만 원 미만’(41.2%), ‘100만 원 이상-150만 원 미만’(29.0%), ‘200만 원 이상-300만 원 미만’(17.4%) 순이다. 반면 대학 졸업자는 ‘150만 원 이상-200만 원 미만’ 소득자가 38.0%로 가장 많고 그 다음 ‘200만 원 이상-300만 원 미만’이 28.2%로 나타났다. 첫 일자리에서 월급 200만 원 이상을 받는 비율은 고졸 청년은 11.8%뿐인데, 대졸 청년은 32.6%에 이른다.
통계로는 학력에 따른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편이지만, 의외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학력 차별을 잘 체감하지 못한다. 투명가방끈에서 가졌던 대학거부자/대학비진학자 수다회에서도 노동에서의 차별, 특히 일터에서의 명백한 차별 사례가 없는지 물었을 때, 그런 게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그 이유는 바로 양극화, 이중화된 고용 구조 속에서 애초에 취업 단계에서부터 학력에 따라 입직할 수 있는 일자리가 달라지는 형태로 차별이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보통 같은 조건, 같은 상황에 있는데 달리 대하는 것을 차별로 체감하고, 법적 의미에 차별도 그런 식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고졸과 대졸은 애초에 같은 조건이나 상황에 놓이는 일이 별로 없고, 처음부터 기회가 달리 주어지는 것이다.
구인/구직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일자리를 찾을 때, 조건을 고졸로 놓고 검색하면 대부분이 월급 100만 원대의 일자리가 나오고, 대체로 단순 노동이나 사무 보조나 서비스직이다. 반면 조건을 대졸로 놓고 하면 월급 200만 원, 250만 원 이상 일자리도 많고 훨씬 더 좋은 일자리들이 많이 나온다. 그중 상당수는 사무 업무나 관리 업무 등 대학에서 무언가를 배웠는지 여부는 별 상관도 없는 종류의 일들이고, 또 대다수는 학력에 상관없이 일터에서 훈련받으며 배워야 할 수 있는 종류의 일들이다. 그럼에도 대졸 학력은 정규직 또는 일정 소득 이상의 직업을 가지기 위한 통과 자격증처럼 쓰인다. 즉, 대졸 학력이 합리적 이유 없이도 인성이나 사회성, 인간의 가치 등에서 일종의 ‘기본’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출신학교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학력에 대한 차별은 채용과정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올해 초,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학력에 따라 최소승진연한을 다르게 두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감사원이 28일 발표한 한국콘텐츠진흥원 기관정기감사 결과에 따르면 진흥원은 인사규정에 주임급(G4b)이 대리급(G4a)로 승진할 경우, 최소승진연한을 대졸자는 5년 고졸자는 9년으로 정하고 있었다. 고졸자가 대리로 승진하려면 대졸자와 달리 4년 이상을 더 주임직을 맡아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블라인드 채용의 형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사규정이 개정되지 않았다. 감시원은 이를 차별이라며 시정을 요구했다. 필수적, 합리적 이유가 없다면 승진 시 고졸자와 대졸자의 조건을 달리하는 것은 당연히 차별이다. 동일한 업무와 역할을 한다면 학력과 무관하게 동일하게 승진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같은 사례는 채용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고용 이후, 승진에 있어서도 학력 차별 금지가 필요한 이유다.
여기서는 주로 대졸자와 비대졸자를 차별하는 고용 영역에서의 문제들을 이야기해보았지만, 대졸자들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출신 학교에 따른 차별 또한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은행이나 대기업에서 출신 대학에 따라 편파·차별 채용을 하다가 논란이 된 사건도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학력,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가 그 사람의 전반적 능력과 사회적 ‘등급’을 결정한다고 여기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도 학력에 따라 고용과 노동에서 차별을 정당화하면서, 그렇게 학력으로 사람들을 줄 세운 결과 가장 뒷자리에 자리하게 되는 것이 고졸 이하, 비대졸자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영역에서 합리적·필수적 이유 없이도 출신 학교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믿고 차별이 이어지는 이상,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적 지위와 소득을 얻기 위해 더 이름값이 높은 대학에 입학하는 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은, 노동 영역 안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비대기업을 나누고 불평등이 점점 커지는 것을 정당화하고 이중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학력 차별의 굴레에 제도적인 선이 필요하다.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등 학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법은 출신에 따른, 학력에 따른 차별의 굴레를 바꾸는 법이 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고용 영역에서의 학력 차별,
출신학교차별금지법으로 멈춰세우기
피아, 공현
고3 수능 날, 나의 삶을 유예시키고, 주변인들과 끊임없이 경쟁할 것을 요구하며, 입시의 결과를 이유로 등급을 매기는 교육과 사회에 불복종을 선언하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했다. 학생들의 교육권과, 청소년이 사람답게 살 권리와, 사회에 존재하는 대학비진학자들을 차별하지 말라는 11명의 거부선언자들의 외침에도 뭐 하나 제대로 바뀐 것 없이 벌써 4년이 지나갔다. 여전히 수능철만 다가오면 잠깐씩 거부선언자들을 찾는 몇몇 인터뷰들은 선언 이후의 삶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후회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궁금해한다. 그럴 때 나는 “뭐 그리 다르게 살고 있겠냐, 힘들 때도 있고 좋기도 하고 그렇다.” 하고 넘기곤 했다. 그런 질문에는 내가 조금은 후회하고 불행하기를 바라거나, 좀 더 특별한-열정적인-무언가를 바라는 은근한 속내가 느껴질 때도 있어서 더 열심히 무심하게 넘겨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알고 있다. 그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나의 삶이 마냥 기대만큼 순탄하지만은 못하다는 것을. 이 사회에서 비진학자로 살아가는 것은 나를 불행하고 불안하게 하는 상황들로 자꾸만 향하게 된다는 것을.
선언 이후 나는 바로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나의 삶의 주 관심사이자 동기는 사회운동이었다. 활동을 하며 생계를 함께 유지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임금 노동을 해야 했다. 활동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는 노동보다는 단순한 업무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하지만 막상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보니, 장시간 서있는 업무임에도 의자 하나 없고, 밥 먹을 공간도 시간도 없어 밖에 나가 서서 급하게 먹어야 하는 일터의 환경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매주 바뀌는 일정과 같은 상황들이 자꾸만 닥쳐왔다. 알바 노동자를 존엄한 노동자로 제대로 취급하지 않는 환경들과 나를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대체품 정도로 취급하며 함부로 대하는 사업주나, 정규직 매니저들의 노골적인 하대를 맞닥뜨려야했다.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선택했던 알바 노동이 오히려 나의 건강과 존엄을 소모시켜 활동을 더 하기 어렵게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나는 여기저기 알바를 전전하는 일을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체력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K.O.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활동이나 생계를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좀 더 내가 존중받고 인정받을 수 있으며 너무 혹사당하지 않는, 무엇보다 일정이 너무 들쭉날쭉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일터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비교적 안정적인 일터들 중에 중졸에 어떤 자격증조차 없는 여성인 나를 채용하겠다고 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 직장에서 구인하는 업무가 ‘대학 졸업’이라는 학력을 필수로 필요로 하는 업무인지와는 관계없이, 구인 공고에는 대부분이 “대졸”이 기본 자격으로 기재되어 있었고, “학력 무관”이라고 기재해놓은 곳조차 면접에 가서는 “당연히 대졸을 고려하고 있었다.”라고 얘기하며 거절했다. 어느 정도 여유가 보장된다고 하는 규모가 있는 회사는 말할 필요도 없이 원서도 작성할 수 없었다. 애초에 나에게는 서비스직이나 단순 노동과 같은 일자리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의 종류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나마 안정적이고 노동권 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일터에는 들어갈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계층화된 일자리
내가 경험한 고용/노동 영역에서의 현실은 각종 통계 자료에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 고졸 학력의 청년들은 경제적으로 명백하게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취업률 자체로만 보면 고졸, 전문대졸, (4년제) 대학졸업 사이에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자리의 질이나 소득, 노동 조건을 보면 차이가 매우 크다. (2019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분석)
우선, 첫 일자리 취업 당시 고용 형태는, 고졸 청년은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으나 일시적인 일자리’가 17.6%로 대졸 청년에 비해서 이러한 이러한 고용 형태가 11%p 더 높은 등 단기/일시적 일자리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나아가 현재 일자리에서의 지위를 보면, 전문대학 졸업자 중 74.1%, 대학 졸업자 중 77.6%는 ‘상용 근로자’인 반면 고등학교 졸업자는 45.3%만이 상용 근로자로 일하고 있으며, ‘임시 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고졸 청년 비율은 36.0%로 전문대졸 및 대졸보다 2배 이상 높다. 고졸 청년 중 ‘일용 근로자’ 역시 전문대학 졸업자보다 약 4배, 대학 졸업자보다 약 8배 많은 비율을 보이며, ‘무급 가족 종사자’ 비율 역시 고등학교 졸업자에게서 높은 분포를 보인다.
현재 일자리에서 하는 일의 형태는, 4년제 대졸 청년은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가 41.0%로 가장 높았고, ‘사무 종사자’(35.0%)가 그 다음을 차지한다. 전문대졸 청년은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30.3%), ‘사무 종사자’(21.0%), ‘서비스 종사자’(13.5%) 순이었다. 끝으로 고졸 청년은 ‘서비스 종사자’(23.3%), ‘판매 종사자’(16.7%), ‘단순 노무 종사자’(14.3%) 순이다. 사실상 학력에 따라서 전문직과 사무 종사자는 대체로 전문대졸 이상 학력이 차지하고, 서비스, 판매, 단순 노무 등의 일자리는 고졸 학력이 차지하는 식으로 뚜렷이 계층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당연히 소득에도 반영된다. 첫 일자리에서의 월급 분포 조사 결과, 고등학교 졸업자의 경우 ‘100만 원 이상-150만 원 미만’(35.5%), ‘150만 원 이상-200만 원 미만’(26.8%), ‘100만 원 미만’(26.0%) 순이었고, 전문대학 졸업자는 ‘150만 원 이상-200만 원 미만’(41.2%), ‘100만 원 이상-150만 원 미만’(29.0%), ‘200만 원 이상-300만 원 미만’(17.4%) 순이다. 반면 대학 졸업자는 ‘150만 원 이상-200만 원 미만’ 소득자가 38.0%로 가장 많고 그 다음 ‘200만 원 이상-300만 원 미만’이 28.2%로 나타났다. 첫 일자리에서 월급 200만 원 이상을 받는 비율은 고졸 청년은 11.8%뿐인데, 대졸 청년은 32.6%에 이른다.
통계로는 학력에 따른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편이지만, 의외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학력 차별을 잘 체감하지 못한다. 투명가방끈에서 가졌던 대학거부자/대학비진학자 수다회에서도 노동에서의 차별, 특히 일터에서의 명백한 차별 사례가 없는지 물었을 때, 그런 게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그 이유는 바로 양극화, 이중화된 고용 구조 속에서 애초에 취업 단계에서부터 학력에 따라 입직할 수 있는 일자리가 달라지는 형태로 차별이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보통 같은 조건, 같은 상황에 있는데 달리 대하는 것을 차별로 체감하고, 법적 의미에 차별도 그런 식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고졸과 대졸은 애초에 같은 조건이나 상황에 놓이는 일이 별로 없고, 처음부터 기회가 달리 주어지는 것이다.
구인/구직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일자리를 찾을 때, 조건을 고졸로 놓고 검색하면 대부분이 월급 100만 원대의 일자리가 나오고, 대체로 단순 노동이나 사무 보조나 서비스직이다. 반면 조건을 대졸로 놓고 하면 월급 200만 원, 250만 원 이상 일자리도 많고 훨씬 더 좋은 일자리들이 많이 나온다. 그중 상당수는 사무 업무나 관리 업무 등 대학에서 무언가를 배웠는지 여부는 별 상관도 없는 종류의 일들이고, 또 대다수는 학력에 상관없이 일터에서 훈련받으며 배워야 할 수 있는 종류의 일들이다. 그럼에도 대졸 학력은 정규직 또는 일정 소득 이상의 직업을 가지기 위한 통과 자격증처럼 쓰인다. 즉, 대졸 학력이 합리적 이유 없이도 인성이나 사회성, 인간의 가치 등에서 일종의 ‘기본’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출신학교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학력에 대한 차별은 채용과정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올해 초,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학력에 따라 최소승진연한을 다르게 두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감사원이 28일 발표한 한국콘텐츠진흥원 기관정기감사 결과에 따르면 진흥원은 인사규정에 주임급(G4b)이 대리급(G4a)로 승진할 경우, 최소승진연한을 대졸자는 5년 고졸자는 9년으로 정하고 있었다. 고졸자가 대리로 승진하려면 대졸자와 달리 4년 이상을 더 주임직을 맡아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블라인드 채용의 형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사규정이 개정되지 않았다. 감시원은 이를 차별이라며 시정을 요구했다. 필수적, 합리적 이유가 없다면 승진 시 고졸자와 대졸자의 조건을 달리하는 것은 당연히 차별이다. 동일한 업무와 역할을 한다면 학력과 무관하게 동일하게 승진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같은 사례는 채용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고용 이후, 승진에 있어서도 학력 차별 금지가 필요한 이유다.
여기서는 주로 대졸자와 비대졸자를 차별하는 고용 영역에서의 문제들을 이야기해보았지만, 대졸자들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출신 학교에 따른 차별 또한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은행이나 대기업에서 출신 대학에 따라 편파·차별 채용을 하다가 논란이 된 사건도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학력,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가 그 사람의 전반적 능력과 사회적 ‘등급’을 결정한다고 여기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도 학력에 따라 고용과 노동에서 차별을 정당화하면서, 그렇게 학력으로 사람들을 줄 세운 결과 가장 뒷자리에 자리하게 되는 것이 고졸 이하, 비대졸자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영역에서 합리적·필수적 이유 없이도 출신 학교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믿고 차별이 이어지는 이상,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적 지위와 소득을 얻기 위해 더 이름값이 높은 대학에 입학하는 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은, 노동 영역 안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비대기업을 나누고 불평등이 점점 커지는 것을 정당화하고 이중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학력 차별의 굴레에 제도적인 선이 필요하다.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등 학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법은 출신에 따른, 학력에 따른 차별의 굴레를 바꾸는 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