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성명] 형사 미성년 연령 축소? 유엔아동권리위 권고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 교육부의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 내용을 우려하며

20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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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형사 미성년 연령 축소?

유엔아동권리위 권고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 교육부의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 내용을 우려하며


  교육부가 지난 1월 15일, 형법상의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현행 만14세 미만에서 만13세 미만으로 축소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제4차 (2020∼2024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에 담긴 내용이다. 해당 기본계획 안에는 “우범소년 송치제도를 적극 활용”하겠단 내용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도저히 ‘학교폭력’ 문제나 청소년 범죄에 대한 합리적인 대책이라고는 볼 수 없다. 우리는 교육부의 계획에 깊은 우려를 전한다.

  우선, 형법상 형사 미성년 연령 기준을 만14세에서 만13세로 낮추는 것이 ‘학교폭력’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형법상 미성년 연령 기준은 만14세이나, 이미 소년법에 의하여 만10세 이상이면 보호처분이란 이름으로 강제성 있는 처벌을 받고 있으며, 소년원 구금 처분까지도 가능하다. 만13세 청소년 가해자라고 해서 처벌을 못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교육부가 내놓은 계획은, 별다른 실효성은 없이 사회에 만연한 ‘청소년 혐오’에 편승하여 오로지 더 강하게 처벌하겠다는 메시지만을 담고 있는 셈이다.

  “우범소년 송치제도를 적극 활용”한다는 내용에도 우려되는 점이 다분하다. 현행 ‘우범소년’ 제도는,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성벽” 등 애매모호한 행실과 환경에 대한 판단만으로 범죄의 우려가 있다며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보호처분이 가능하게 하는 악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통해 우범소년 송치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교육부의 계획은 사건 처리를 경찰에 떠넘기며 교육당국의 역할은 도외시하는 것이다.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청소년들이 억울하게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도 커지고, 경찰의 성급한 개입과 과잉 처벌을 부추길 위험성도 있다.

  2019년 9월 27일,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심의에서 “형사 책임 최저연령을 만 14세로 유지하고, 만 14세 미만 아동을 범죄자로 취급하거나 구금하지 않을 것”, “소년법 제4조 제1항 제3호(우범소년 조항)를 폐지할 것” 등을 권고했다. 이러한 권고에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시점에 교육부는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는 한국 정부가 유엔아동권리위원회를 비롯하여 국제인권기구의 요청을 얼마나 경시하는지 드러내는 부끄러운 행보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18년 12월 형사 미성년 연령 기준 하향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교육부는 왜 국내외의 인권기구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지 해명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형사 미성년자 연령 기준을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다. 인권친화적 학교를 만들고, 학교 안에서의 차별, 괴롭힘, 폭력 현상에 대해 책임감 있는 개입과 신뢰받을 수 있는 처리 절차를 확립하는 것이다. 가해자가 다시 괴롭힘·폭력 등을 행하지 않게 하기 위한 효과적인 절차를 마련하고,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번 기본계획에서도 피해 학생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지원 기관의 수 등은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는 교육부가 이번 발표에서 형사 미성년자 연령 축소 등을 포함시킨 것이 정부 대책의 불충분한 점을 가리고자 하는 연막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학생 간의 폭력 문제에 대한 신중하지 못한 엄벌주의는 결국은 청소년들 중 일부를 교육 제도 밖으로 내몰고, 폭력과 범죄에 더 가까운 환경에 있는 청소년들을 늘릴 뿐이다. 교육부의 이번 계획 역시 현실화된다면 학생들을 울타리 밖으로 쫓아내고 낙인 찍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차별과 폭력을 용인하고 조장하는 학교 구조와 문화, 문제가 은폐되는 비민주적 학교 현장, 커져가는 사회 불평등과 격차 등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개인을 추방하고 처벌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교육부의 형사 미성년 연령 축소 추진 등을 규탄하며, 기본계획의 철회 및 수정을 요구한다.


2020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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