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가족, 결혼을 넘다>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 투명가방끈 토론문 및 자료집

2021-08-23
조회수 332

정상적 생애주기를 넘어 다양한 삶을 여는 생활동반자법

- 청소년/대학비진학자의 가족구성권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청소년의 가족구성권과 생활동반자법이라는 주제를 보고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독립’에 관한 것이었다. 생활동반자법은 함께 거주하고 있음에도 상대방이 법적인 동반자로 인정받지 못할 때 가족구성권과 함께 중요하게 얘기되는 법안이다. 하지만 가족구성권을 얘기하기도 전에, 원가정에서의 독립부터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나는 청소년 때 탈가정을 하고 서울로 이주해왔다. 집에서 폭군 노릇하던 부친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나온 것이었는데, 하루아침에 길바닥이 살아갈 곳이 되어버린 청소년에게는 새로운 가족을 찾고 구성할 권리는커녕, 하루하루 살아나갈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찾기 힘들었다. 몇 개월을 친구 집과 단체 사무실, 이런저런 쉼터를 전전하며 지낸 경험을 통해 느낀 바라면, 집과 학교가 아닌, 정상적 생애주기에서 벗어난 청소년에게 있어 생존과 굴욕은 동의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경찰이나 교사는 내 얘기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상황의 책임을 나에게 물으며 원가정으로의 복귀를 강제해서 가까이 할 수 없었고, 청소년 쉼터에서는 내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나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규율을 강제하거나, “검정고시를 보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라”고 압박하며 나의 ‘비정상적인’ 삶을 탓하는 바람에 견딜 수가 없었다. 사회가 탈가정한 청소년에게 제공한다고 하는 보호의 조치들은 나의 삶을 더욱 더 굴욕적으로만 만들 뿐, 내가 집에서 겪은 상처를 딛고, 원가정을 벗어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실질적인 디딤돌이 전혀 되지 못했다.

가정/부모에게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미성년의 어린이·청소년은 가족 안에서, 친권자의 보호와 감독 하에 있어야 한다는 규범이 존재하고 이러한 틀을 벗어나는 것은 그 자체가 일탈이나 범죄에 준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청소년의 독립은 독립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대안으로 여겨지는 보호조치들의 목적은 가정복귀가 된다. 결국 나는 국가의 보호에서도 ‘탈출’해야 했고, 주변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회복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새로운 삶의 터를 꾸린지 이제 햇수로 5년, 만으로 4년이 조금 넘은 지금, 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차별과 폭력이 아닌 새로운 돌봄 공동체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주변인들에게서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나는 종종 생각한다. ‘만약 그 때 나에게 가족에서 마음대로 나오고, 다시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청소년의 생활동반자법

 

집을 나와 독립을 한다는 것은 꼭 혼자서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와 삶을 같이 꾸리는 것도 해당된다. 그건 청소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청소년에게 가족은 혈연 가족, 부모, 친권자만 인정되는 현실이다. 어렵게 집에서 탈출한 청소년이 다른 사람과 같이 가족을 꾸리더라도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지 않는다. 주거 계약 등의 이유로 다른 비청소년과 같이 살게 된다면 가족은커녕 납치범으로 오해받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나는 이런 면에서 생활동반자법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선미 의원이 발의하려 했던 생활동반자법에는 성인에게만 적용 가능하게 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내가 함께 살고 싶은 사람과 평등하게 안전한 공동체를 꾸릴 수 있는 권리는 성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청소년도 혈연 가족 외의 사람과도 같이 살 수 있게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독립을 하려할 때 가능한 선택지나 대안도 더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청소년의 경우에도 생활동반자법이 적용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혼인을 하면 성년의제가 적용될 수 있는데 생활동반자법을 통해서도 이에 준하는 제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협소한 ‘정상적 삶’을 넘어서

 

생활동반자법은 청소년 말고도 기존 사회에서 ‘정상적 삶’이라고 여겨지던 길을 벗어난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학비진학자/비대졸자라는 이유로 특별히 가족구성권 측면에서 차별받는다거나,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특별히 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요소가 뚜렷하게 존재하지는 않는다. 넓게 보면 학력으로 인한 사회적 차별, 경제적 불이익 등이 대학비진학자/비대졸자의 주거나 사회적 관계 등을 열악하게 만들기에 사회권적 의미에서 가족구성권이 온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생활동반자법이 다루는 문제라기보다는 차라리 차별금지법이나 복지제도가 연관된 영역일 것이다.

다만 생활동반자법이 만들어지고 기존의 결혼 중심의 가족을 벗어나 다양한 가족구성이 인정되는 것은 대학비진학자/비대졸자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 예상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 진학, 취업, 결혼 등 생애주기에 따른 과업이 명확하게 주어지고 이를 벗어나는 것을 백안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대학의 문제 역시 단지 대학만이 아니라 대학 전후의 가족 안에서의 입시 압박, 졸업 후의 취업과 결혼 등에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생애주기에 따른 코스가 명확히 정해져 있는 사회에서는 결국 청소년에게도, 대학 비진학자에게도 정해진 삶의 모습과 관계만을 강요하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된다. 생활동반자법 등의 제도 개선을 통해 이러한 압력이 약화되고 다양한 가족,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중되는 사회가 된다면 청소년과 대학비진학자/비대졸자들이 느끼는 소외감이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우호적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또한 기존의 정상적 삶, 정상적 가족을 중심으로 한 복지체계의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새롭게 고려될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은 단순히 동거인에게도 법적지위를 인정하자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삶의 형태나 관계의 형태를 지지하는 정책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