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논평] 채용 비리 봐주려고 학력 차별하는 재판부를 규탄한다 신한은행의 채용 청탁 및 비리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하여
[논평] 채용 비리 봐주려고 학력 차별하는 재판부를 규탄한다
신한은행의 채용 청탁 및 비리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하여
법원이 채용 청탁 비리에 무죄 판결을 내리며 학력 차별 논리를 들고 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11월 21일, 서울고등법원 제6-3형사부(조은래, 김용하, 정총령)가 채용 비리 사건으로 업무방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용병 신한은행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청탁에 의해 채용된 지원자들이 대체로 상위권 대학 출신에 일정 수준의 스펙을 갖추고 있으므로’ 부정 채용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번 무죄 판결은 채용 청탁 및 비리를 눈감아주는 것이란 점에서도 문제이지만, 그 과정에서 학력 차별적 인식을 공공연히 근거로 삼았다는 점도 충격적이다. 채용 비리 사실이 밝혀진 지원자들은 임직원의 친인척 등 연고가 있는 사람들로, 상당수는 서류/면접 심사 과정에서 불합격권에 속했으나 평가 결과를 뒤바꾸거나 재심사를 지시하는 등의 과정에 의해 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채용 과정의 평가에서 불합격 판단되었던 이들이 부정 청탁 정황 속에 채용되었는데, 이들이 ‘상위권 대학’ 출신이라는 것 등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는 출신 대학의 서열이 곧 누군가의 능력이자 등급이며 그 이유만으로 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학력 차별, 학벌주의를 고스란히 담은 말이다.
신한은행 채용 비리 사건과 서울고등법원의 이번 판결은 청탁과 비리도 눈감아주는 우리 사회 능력주의와 학력 차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11월 가정 형편이 어려울 경우 ‘최상위권 대학’에 가지 못할 확률이 70%에 이른다는 연구를 내놓는 등 가정 환경의 불평등이 곧 학력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부모도 실력”이라는 말처럼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교육이나 채용 과정에서 명백한 불평등이 있으며, 때때로 이는 부정 청탁과 비리의 형태로 나타난다. 출신 학교의 간판이 곧 능력을 입증한다는 믿음 속에 부모를 잘 만나 ‘상위권 대학’을 나온 이들이 받는 사회적 특혜와 우대는 정당화된다. 능력주의의 논리는 결코 현실에선 ‘능력’에 따른 합리적 대우로 이어질 수 없는 것이다.
덧붙여, 재판부가 들고 나온 학력 차별 논리는, 우리 사회에 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를 역으로 증명해준다. 법원조차 학력 차별을 당연시하고 비합리적으로 채용 비리를 봐주는 근거로 삼는 상황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고 뿌리 깊게 차별이 자리하고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고용 등에서 학력 차별이 금지되어야만 보다 평등하고 공정한 노동세계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대법원이 상고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의 차별적 판결을 용인하지 않을 것에 더하여, 국회가 조속히 차별금지법을 제정,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
2021년 12월 14일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