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친밀한 관계, 사회적 가족, 관계망의 정책> '청소년 가족구성권 ' 발제글

2019-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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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가족구성권

피아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그렇게 니 마음대로 살고 싶으면 내 집에서 나가.” 17살, 첫 탈가정을 시도했을 때 친권자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나는 청소년이었을 동안 총 세 번의 탈가정을 감행했다. 그 중 두 번은 실패로 돌아갔고, 마지막의 탈가정으로부터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에까지 왔으니, 세 번째 탈가정은 성공했다고 이야기한다. 두 번의 탈가정이 실패로 돌아간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탈가정은 친권자에게서 신나게 두들겨 맞은 날이었다. 내 머리통을 사정없이 주먹으로 내려치고 발로 걷어차다 분에 못 이겨 회초리를 찾으러 안방으로 들어가는 친권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현관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을 내달리며 도망친 친구 집에서 지내기를 이틀, 나는 친구네 친권자의 고발로 반항도 제대로 못해본 채 곧바로 원가정으로 끌려갔다. 두 번째 탈가정은 그로부터 2년 후, 첫 번째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폭력적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다 주변의 비청소년들의 고발과 협박으로 다시 끌려갔다. 내 경험상, 주변 비청소년들은 내가 가정 안에서 겪은 폭력과 나의 처지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하려 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내가 한 선택-집을 나온 것-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했고, 집이 아닌 곳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만 떠들었다. 그리고 내가 꼭 집으로 돌아가기를 요구했다. 집이 나에게 있어 훨씬 더 위험한 곳임을 아무리 토로해도 늘 “그래도 가족인데..” 같은 말로 묵살되곤 했다. 두 번째 탈가정이 실패로 돌아갔을 무렵부터 ‘가족’은 나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이름이 아닐까? 같은 생각을 했다.

 

입양이라는 기회

 

세 번째 탈가정을 막 시도했을 무렵이었다. 가출신고와 실종신고 때문에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 정말 길거리에 나앉아야했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어 무려 10년 넘게 의지하고 지낸 외국인 교사 부부에게서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이 왔다. 그이들은 내가 친권자로부터 종종 폭력을 겪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늘 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주변 비청소년들 중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상황 설명을 전부 들은 그 부부는 내가 자신들의 집에서 지내는 것은 어떤지 물었다. 그리고 내가 괜찮다면 나를 입양할 수 있는 절차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 말은 나를 모든 폭력으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그동안 나를 돕겠다던 수많은 비청소년들 중에는 한 번도 내게 직접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말한 이는 아무도 없었기에, 입양이라는 제안은 너무나 신선하고 행복한 해방구처럼 들렸다. 하지만 희망 섞인 기대도 잠시, 외국인 체류자가 원가정이 있는 국내 청소년의 입양 절차를 밟는 과정은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애초에 친권 박탈을 위한 조건들을 채우기가 너무 어려웠다. 뚜렷한 폭력의 증거를 모으는 일은 경찰이나, 나를 주변에서 봐온 교사같은 비청소년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세 번이나 탈가정을 감행할 정도로 나름 긴 시간 안에서 아무도 나의 상황을 심각히 여긴 비청소년은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겪어온 폭력을 증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는 그이들과 함께 친권 박탈이나 혹은 관련 정보를 알아볼 동안이라도 그 집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랐지만, 청소년이라는 나의 신분은 나와 함께 있는 비청소년들에게 납치, 유괴 혐의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수년 동안 정신적 학대와 폭력을 겸해온 원 가정은 사회에서 ‘안전한 보호의 울타리’로 불렸지만 나를 돕기 위해 공간을 마련해주려는 이들은 ‘납치범’이나 ‘유괴범’으로 불렸다. 결국 입양은 친권 박탈이라는 첫걸음도 떼지 못한 채 포기해야했다. 그리고 그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포기해야했다. 그 외국인 부부는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자신들이 받을지도 모르는 혐의에 대해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나를 지켜줄 수 있을거라 얘기한 이들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시설은 집이 아니다

 

이후 나는 내가 살던 지역에서 벗어나와 서울로 도망쳐왔다. 그리고 청소년인권단체 사무실이나 활동가네 집, 캠프 등 끊임없이 거처를 이동하며 불안정한 삶을 이어갔다. 무려 5개월 동안이나 말 그대로 ‘길거리’에서 지낸 것이다. 나를 또다시 찾아내서 원 가정으로 끌고 갈까봐 경찰은 물론이고 쉼터 같은 보호거처에는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 나를 돕겠다고 말하는 비청소년들 또한 계속해서 경계하고 피해 다녔는데, 나는 더 이상 내 운명을 비청소년들의 호의에 맡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생활비를 빌리고 다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빚덩이가 눈 앞에 떨어졌을 때, 그리고 더 이상 갈 곳이 정말 아무데도 없어졌을 때, 나는 결국 청소년 단기 쉼터에 들어갔다. 함부로 친권자를 소환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하고, 내 인생 첫 청소년 단기 쉼터 입소였다. 잠시 숨을 돌릴 목적으로 들린 곳이었지만, 입소 첫 날부터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청소년 쉼터는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더욱 끔찍했다. 입소하자마자 나는 나의 기본권을 포기한다는 각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소지품 검사를 통해 위험 물품으로 간주되는 소지품은 모조리 빼앗겼으며, 정해진 방이 아닌 다른 방에 가는 것도 함부로 허락되지 않았다. 정말 최악이었던 점은 입소하고 삼일 동안에는 방을 지정하지 않고 ‘태도를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공간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거실에서 지내야했다는 것이고, 밤이 되면 전자기기를 모두 압수하고 강제 소등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매일 보호 교사들과 마찰을 빚었다. 내 것을 자신들의 것인 것 마냥 당연하게 뺏어가려는 교사들로부터 내 것을 조금이라도 지켜내야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매순간마다 싸움이 일어났다. 내 담배를 가져간 것도 억울하고 화나는데 달라고 할 때 꼭 한 개비씩만 줘야겠다는 교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외박 전에는 꼬박꼬박 허락을 받아야하는 것도, 외출 시 돌아올 시간을 말하지 않으면 잠긴 문 앞에서 교사들을 기다려야 했던 것도, 생활 지킴이라며 청소년입소자 한 명을 임의로 선정해 청소년들을 감시시키는 짓거리도 참을 수 없었다. 분명 쉼터에 입소한 나를 포함한 모든 청소년들은 폭력의 피해를 받아 들어왔지만, ‘정상 가족’안에 속해있지 않다는 이유로, 또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시설 안에서는 줄곧 죄인인 것처럼 지내야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공동주거의 경험

 

매일매일이 치열한 싸움과 언성의 연속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은 도저히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원 가정을 생각하면 그렇게 집 같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설에서 두 달을 지냈다. 나가고 싶어도 청소년을 받아주는 일터가 거의 없어 돈을 모으기가 힘들었다. 삶이 너무 피폐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즈음, 예전에 지냈던 사무실에서 알게 된 청소년 인권 활동가 한 분이 ‘거부하우스’를 소개해주었다. 거부하우스는, 대학입시를 거부한 청소년인권활동가들끼리 모여 사는 공동체 하우스라고 했다. 어디든 쉼터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으로 큰 고민 없이 바로 이동했다. 구성원이 활동가들이라서 그랬던 걸까, 처음으로 경험한 공동체 주거는 내가 어떤 공간에서 동등한 구성원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함으로서 느끼게 해 주었다. 집안일은 집안 어른의 몫이라는 통념을 가지고 살던 나에게 집안일은 모두가 분담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나이와 수입이 달라도 모두가 존중받는 구성원이라는 전제가 있으면 폭력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탈학교, 탈가정 청소년으로서 겪는 폭력의 경험에는 모두가 공감하며 심각하게 들어주었다. 원래는 3개월 정도만 머물고 돈을 모아 떠나려던 공간이었지만, 나는 이후 4개월을 더, 총 반년을 넘게 살았다. 그렇게 ‘거부하우스’는 나에게 집을 나온 후로 처음으로 제일 오래 머물었던 공간이 되었다. 그 사람들이 특별히 나에게 그렇게 따뜻했던 것도, 나를 함부로 보호하려고 한 적도 없었지만 처음으로 생판 남인 사람들과 내가 가족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혈연으로서 이뤄진 가족이 아닌, 그리고 입양같이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의 ‘자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나의 돌봄을 맡길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청소년의 가족을 해소/구성할 권리

 

세 번의 탈가정 이후, 어떤 공동체에 소속될지를, 혹은 기존에 속한 관계를 해소시키는 것을 청소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를 체감했다. 가족은 누군가에겐 돌봄의 공동체나 기댈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나처럼 차별과 폭력의 공간, 헤어나올 수 없는 굴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소하기 어렵고 떠나기 어려운 가족의 문제는 특히 소수자이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문제다. 가족 안에서도 차별받고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 가족을 떠나면 사회에서 있을 자리가 없어지는 사람들, 사회적 소수자이고 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가족은 안락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는 굴레가 되곤 한다. 그렇기에 가족을 해소할 권리는 폭력적이거나 차별적인 관계를 해소하고 싶어하는 소수자에게 더 절실한 권리이다.” _차별금지법 평등정책 가족 토론회, ‘해소의 권리’ 발제 중

 

특히 가정/부모에게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미성년의 어린이·청소년은 가족 안에서, 친권자의 보호와 감독 하에 있어야 한다는 규범이 존재하고 이러한 틀을 벗어나는 것은 그 자체가 일탈이나 범죄에 준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정 안의 체벌이나 가정폭력, 자식에 대한 감시 등의 폭력이 벌어지는 사안에 대해서는 ‘가족 안의 일’이라는 이유로 쉽게 눈감아지고, 또 허용되기도 한다. 2015년 이후 아동학대 관련 법 개정에 따라 자식 본인도 친권의 제한이나 상실을 청구할 수 있게 제도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법원 등의 아동학대 인정 기준은 믿을 만하지 않고, 대안 양육 가정이 부족하여 시설에 입소해야만 한다는 현실은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친권 상실 청구 등을 한층 더 망설이게 만든다. 결국 가족은 지켜져야 한다는 당위와 생존을 위해서 가족에 기대야 한다는 절박함이, 가족 내부의 문제를 감내하게 만든다.

 

가족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평등과 존중이 자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가족은 상황과 선택에 따라 해소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또한, 폭력이 존재하지 않아도, 그러니까 굳이 특별한 사유가 없더라도 원가정과의 거리를 두고 독립하여 새로운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어야한다. 누구나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살고 싶은 집에서, 함께 살고 싶은 이와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인권의 원칙을 기억한다. 사회에서 그것이 누구에게만 허락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할 것이다.

 

청소년 가족구성권 실현을 위해 내가 제안하고 싶은 정책

 

사실 어디서부터 건드려야할지 너무 막막한 심정이다. 내가 실패했던 두 번의 탈가정의 이유와 지금까지도 나를 위태롭게 만드는 많은 차별들은 정말 많고 복잡한 제도 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법, 행정 시스템, 그리고 제도의 공통점으로는 아동·청소년이 가정 혹은 부모에게 종속되어있는 존재로 상정한다는 것이다.(청소년의 위치를 정해버리는 지금의 법은 나를 포함한 얼마나 많은 탈가정 청소년들을 위기 속에 빠뜨리고 있는지!)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기존의 법들을 청소년의 시선으로 개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한창 논의되고 있는 민법상 친권 내 징계권 폐지같은 청소년에 대한 기본적인 존엄부터 자립에 필수적인 임금노동에서 요구하는 법정대리인 동의서 폐지까지. 아동·청소년을 정의하는 모든 관련 법률들을 청소년의 시선에서 다시 써내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법제도를 변화시키는 것과 또 별개로 같이 나아가야하는 것이 있다. 법적 제약 외에도 주거급여 제공 등에서도 30세 이하 독립세대를 배제하는 등의 행정 절차에서의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청소년의 가족구성권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법률개정 및 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깨는 활동이 함께 이뤄져야하는 것이다. 넘어가야할 산이 참 많은 느낌이다. 결론은, 청소년 관련 정책, 혹은 제도가 만들어질 때 청소년의 요구가 반영되어야하며, 또 다양한 서비스들을 청소년이 직접,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한 과정에서는 이런 포럼같은 청소년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또 요구하는 자리가 계속해서 마련되어야할 것이며, 이제껏 청소년을 철저히 배제시켜온 정치에서 벗어나 청소년들이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가정과 학교가 아닌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고 공존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어야할 것이다.

 

 



참고자료 :

1) 차별금지법 평등정책 가족 토론회, ‘자유로운 해소의 권리’_공현(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2) ‘그런 자립은 없다’ 리뷰_피아(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3) [비마이너 기획연재] 탈가정 청소년에게 ‘보호’가 아닌 ‘권리’를_변미혜(함께걷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