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명여고 부정행위 사건에 대한 투명가방끈의 논평]
경쟁과 서열화는 이제 교육에서 사라져야 한다
▲ 부정행위 사건은 경쟁 속에서 교육과 평가가 본래 의미를 잃어버린 문제를 드러낸 사건
▲ 일각에서 제기하는 ‘수능·정시 확대’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닌 후퇴와 방치일 뿐
▲ 입시경쟁을 폐지하고 교육을 교육답게 만들기 위한 변화를 논의해야
서울 숙명여자고등학교에서, 재학생과 그 부모인 교사가 연루되어 학교 내 시험 관련 부정행위가 반복적으로 있었다는 의혹에 대한 조치가 진행 중이다. 11월 12일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5차례 중간·기말고사에서 문제 유출 등 부정행위가 있었고 이를 입증할 증거들도 나왔다고 한다. 이러한 부정행위가 사실이라면 한국 교육 제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면 이에 대한 처벌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분노가 이상하리만큼 높았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결국 이 사건의 피의자들은, 단지 한 고등학교의 교육 활동을 방해하고 성적을 조작한 혐의가 아닌, 신성하고 공정해야 할 입시경쟁을 감히 어지럽힌 혐의로 비난받았던 것은 아닌가? 또한 이 사건은 학교별 평가의 신뢰도를 의심하고 대입에서 수능 시험 비중을 키우자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과 시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
우리 사회와 교육계가 이 사건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고작 ‘대입에서 수능 시험 비중 확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본래 교육에서 시험 등의 평가는 학생이 얼마나 교육에 잘 참여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더 잘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정이다. 만일 우리 교육에서 평가가 이러한 원래의 뜻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굳이 부정행위로 속이려 할 이유도 없다. 시험 문제와 정답을 미리 알고 점수만 높이는 행위는 학생 자신의 교육적 상황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학생에게 손해가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현실의 교육 제도와 학교 현장에서 시험 등의 평가는 결과에 따른 서열화와 차별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며, 대학입시경쟁과 선발 과정의 핵심이 되는 절차이다. 교사들도 이미 교육보다는 시험 성적과 경쟁을 말해온 지 오래다. 그 결과 평가의 교육적 의미는 사라지고, 시험 결과를 좋게 만들어서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시험 문제를 미리 빼내 정답을 달달 외워 점수·등수만 높게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바로 이러한 교육 구조 위에서 자라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지점조차 교육의 과정과 의미를 훼손했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지위를 이용해 공정한 경쟁의 과정을 속이고 부당한 혜택을 받으려 했다는 데 더 집중되어 있다. 숙명여고 부정행위 사건은 경쟁과 서열화의 도구로 전락한 우리 교육과 시험의 현주소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대한민국 사회는 이 사건 앞에서, 망가진 교육 현실에 대해 함께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깊은 반성부터 해야 마땅하며, 수십 년간 이어져 오고 있는 입시경쟁교육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공정한 입시경쟁은 환상이다
이제 2019학년도 수능 시험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한날 한시에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이 같이 시험을 치르는 수능 시험은, 공정하고도 공평하게 개인의 능력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고 선발과 차별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의식이다. 그러나 수험생이 시험장에 들어가기까지 그 이전의 삶과 그 배경에는 이미 얼마나 많은 불평등과 불공정, 우연과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고 있던가? ‘온전히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의한 공정한 시험과 경쟁’이란 존재할 수 없는 환상이다. 더구나 이러한 능력주의와 경쟁의 논리가 강조될수록 교육은 황폐해지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교육이 그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리고, 시험과 서열화를 위한 과정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우리 투명가방끈은 대학입시거부선언자들과 함께 이러한 교육 현실에 대해 저항하고 문제제기하는 목소리를 낼 예정이기도 하다.
이번 숙명여고 부정행위 사건을 앞에 두고 ‘대학입시에서 정시 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짚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입시가 목표가 되어버린 교육, 성적으로 줄 세우고 차별하기 위한 절차가 되어버린 시험의 문제부터 논의되어야 한다. 교육이 전혀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 앞에서도, 더 이상 ‘교육’을 걱정하지 않고 ‘공정한 경쟁’을 걱정하는 모습은 경쟁에 중독된 우리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이다. 수능 시험은 비록 공식적인 ‘반칙’의 여지는 적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정하다’고 할 수 없으며 교육적이라고는 더더욱 할 수 없다. 대입 제도를 수능 시험과 정시 확대로 후퇴시키는 것은 전혀 교육 개혁이 아니다. ‘공정한 척’하는 경쟁의 현실과 파괴된 교육의 가치를 방치하는 일일 뿐이다.
대학입시의 방식을 바꾸고 말 것이 아니라, 입시경쟁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경쟁과 서열화와 차별의 원리로 이루어진 입시를 없애야 교육이 변화할 수 있다. 대학평준화와 차별금지 등의 정책으로 교육권과 생존권 등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경쟁시킬 것인가’ 하는 논의가 아닌, 경쟁과 서열화로부터 벗어난, 제대로 된 교육을 만들기 위한 고민과 변화이다.
2018년 11월 13일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숙명여고 부정행위 사건에 대한 투명가방끈의 논평]
경쟁과 서열화는 이제 교육에서 사라져야 한다
▲ 부정행위 사건은 경쟁 속에서 교육과 평가가 본래 의미를 잃어버린 문제를 드러낸 사건
▲ 일각에서 제기하는 ‘수능·정시 확대’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닌 후퇴와 방치일 뿐
▲ 입시경쟁을 폐지하고 교육을 교육답게 만들기 위한 변화를 논의해야
서울 숙명여자고등학교에서, 재학생과 그 부모인 교사가 연루되어 학교 내 시험 관련 부정행위가 반복적으로 있었다는 의혹에 대한 조치가 진행 중이다. 11월 12일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5차례 중간·기말고사에서 문제 유출 등 부정행위가 있었고 이를 입증할 증거들도 나왔다고 한다. 이러한 부정행위가 사실이라면 한국 교육 제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면 이에 대한 처벌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분노가 이상하리만큼 높았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결국 이 사건의 피의자들은, 단지 한 고등학교의 교육 활동을 방해하고 성적을 조작한 혐의가 아닌, 신성하고 공정해야 할 입시경쟁을 감히 어지럽힌 혐의로 비난받았던 것은 아닌가? 또한 이 사건은 학교별 평가의 신뢰도를 의심하고 대입에서 수능 시험 비중을 키우자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과 시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
우리 사회와 교육계가 이 사건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고작 ‘대입에서 수능 시험 비중 확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본래 교육에서 시험 등의 평가는 학생이 얼마나 교육에 잘 참여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더 잘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정이다. 만일 우리 교육에서 평가가 이러한 원래의 뜻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굳이 부정행위로 속이려 할 이유도 없다. 시험 문제와 정답을 미리 알고 점수만 높이는 행위는 학생 자신의 교육적 상황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학생에게 손해가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현실의 교육 제도와 학교 현장에서 시험 등의 평가는 결과에 따른 서열화와 차별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며, 대학입시경쟁과 선발 과정의 핵심이 되는 절차이다. 교사들도 이미 교육보다는 시험 성적과 경쟁을 말해온 지 오래다. 그 결과 평가의 교육적 의미는 사라지고, 시험 결과를 좋게 만들어서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시험 문제를 미리 빼내 정답을 달달 외워 점수·등수만 높게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바로 이러한 교육 구조 위에서 자라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지점조차 교육의 과정과 의미를 훼손했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지위를 이용해 공정한 경쟁의 과정을 속이고 부당한 혜택을 받으려 했다는 데 더 집중되어 있다. 숙명여고 부정행위 사건은 경쟁과 서열화의 도구로 전락한 우리 교육과 시험의 현주소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대한민국 사회는 이 사건 앞에서, 망가진 교육 현실에 대해 함께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깊은 반성부터 해야 마땅하며, 수십 년간 이어져 오고 있는 입시경쟁교육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공정한 입시경쟁은 환상이다
이제 2019학년도 수능 시험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한날 한시에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이 같이 시험을 치르는 수능 시험은, 공정하고도 공평하게 개인의 능력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고 선발과 차별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의식이다. 그러나 수험생이 시험장에 들어가기까지 그 이전의 삶과 그 배경에는 이미 얼마나 많은 불평등과 불공정, 우연과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고 있던가? ‘온전히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의한 공정한 시험과 경쟁’이란 존재할 수 없는 환상이다. 더구나 이러한 능력주의와 경쟁의 논리가 강조될수록 교육은 황폐해지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교육이 그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리고, 시험과 서열화를 위한 과정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우리 투명가방끈은 대학입시거부선언자들과 함께 이러한 교육 현실에 대해 저항하고 문제제기하는 목소리를 낼 예정이기도 하다.
이번 숙명여고 부정행위 사건을 앞에 두고 ‘대학입시에서 정시 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짚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입시가 목표가 되어버린 교육, 성적으로 줄 세우고 차별하기 위한 절차가 되어버린 시험의 문제부터 논의되어야 한다. 교육이 전혀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 앞에서도, 더 이상 ‘교육’을 걱정하지 않고 ‘공정한 경쟁’을 걱정하는 모습은 경쟁에 중독된 우리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이다. 수능 시험은 비록 공식적인 ‘반칙’의 여지는 적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정하다’고 할 수 없으며 교육적이라고는 더더욱 할 수 없다. 대입 제도를 수능 시험과 정시 확대로 후퇴시키는 것은 전혀 교육 개혁이 아니다. ‘공정한 척’하는 경쟁의 현실과 파괴된 교육의 가치를 방치하는 일일 뿐이다.
대학입시의 방식을 바꾸고 말 것이 아니라, 입시경쟁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경쟁과 서열화와 차별의 원리로 이루어진 입시를 없애야 교육이 변화할 수 있다. 대학평준화와 차별금지 등의 정책으로 교육권과 생존권 등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경쟁시킬 것인가’ 하는 논의가 아닌, 경쟁과 서열화로부터 벗어난, 제대로 된 교육을 만들기 위한 고민과 변화이다.
2018년 11월 13일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