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14.05.27. 삐삐롱수다킹 대학 때문에... "투명가방끈이 된 나에게 ‘대학’이란?" 난다 글

201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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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가방끈이 된 나에게 ‘대학’이란?

난다

똘끼가 좋다. 나에게도 나만의 똘끼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마음껏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이 세상은 똘끼의 매력보다는 모든 일에서 충분히 ‘눈치 보며 살아남는 법’을 알려줬다. 싫은 소리를 못한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면 불편하다. 그런 점에서 ‘대학입시거부’라는 선택은 고등학교 자퇴까지 포함해서 아마 내 인생 최초의 일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대학을 가지 않음으로써 나는 해방되었고, 자유로워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까칠해지기도 했다. 내 마음이 그랬고, 날 보는 시선도 그랬다.

종종 꿈을 꾼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는 놀라며 깨어나는 일이 있었다. 그 꿈에서 나는 대부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영어단어를 외우거나 쉽지 않은 수학문제를 풀기 위해 골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렬로 죽 늘어선 교실에 앉은 똑같은 모습을 한 나와 같은 학생들은 똑같은 내용의 교과서를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꿈속에서 생각한다. “아, 어째서 다시 이 학교로 돌아왔을까?”

나는 평범한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다. 입학식 첫 날부터 야자를 ‘시켰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언제나 빠짐없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 있어야 했고, 뭘 하고 싶은지 결정도 제대로 못했지만 일단 대학은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도 하고 문제도 풀고 시험도 봤다. 만날 공부만 시키고, 정답만 요구하는 학교에 불만은 많았지만 많은 친구들이 비슷한 생각과 불만을 갖고 있어서 종종 뒷담화를 까면서 그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 보충과 야자를 강제로 시켜도, 학생들의 아무런 동의 없이 시험성적이 떡하니 공개되어도, 기분 나쁘게 머리를 쥐어박아도, 어쩔 수 없으니까, 하고 참고 넘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청소년운동을 시작하고, 어쩌다보니 수능도 안 보고 대학교를 안 가게 되었다. 나름 치열한 고민을 했었는데, 지금은 뭔가 정확히 잘 기억이 안 난다. 정답만 강요하는 학교에서, 너무 기분 나쁘고 불편하고 아프고 내 마음이 무너지는 일을 겪어도, 어쩔 수 없으니까 하고 넘어갔던 시간 속에서, “내가 왜 이곳에 있나?” 하는 되풀이되는 꿈은 더 꾸지 말자,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정해진 길 위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래서 나에게 대학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대학에 대해서 할 말이 많기도 하고 할 말이 없기도 하다. 아주 많은 고민과 생각들이 내 삶의 부분이 되어서, 다양한 갈래의 질문들이 여러 시간을 거쳐서 지금의 나를 이루어온 일. 그 모든 것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한동안 친척들에겐 다 비밀이었다.(아 지금도 정확한 사실을 모르는 친척들도 많다;) 고등학교 안 다니는 것도 비밀이었고, 그래서 고3이 아니라 그냥 ‘열아홉살’일 때에도 수능 준비하느라 못 가요. 바빠요. 이렇게 뻥을 쳤다. 이제는 빼박캔트 20대 중반이라 그냥 직장 다니고 있어요~ 하니까 아 그냥 대충 잘 살고 있구나, 졸업했다는 소식이 없었던 걸 보니 학교 다니다 그만뒀나? 그러고 보니 어디 학교 다닌다 했었지? 서로의 구체적 안부를 물을 일이 없다보니 궁금한 건 많지만, 친척 어른들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모양이다.

청소년활동가들 사이에서 나이를 잘 묻지 않거나, 서로의 나이를 잊고 사는 것처럼, 내가 대학생이 아니라는 것도 굳이 생각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내가 ‘대학생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지, 얼마나 튀는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돌아올 때가 있다. 어느 누구도 뭐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다. 내가 괜히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 괜히 피해의식에 갇혀서 자꾸 안 좋게 받아들이는 걸까? 그런 요상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뭐라 설명하긴 애매애매. 찜찜.

가끔씩, 왠지 모를 ‘박탈감’이 들었다. 나는 분명 나의 선택으로, 내 의지로 대학을 가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대학생인 친구들을 만나거나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나, 학생운동 출신들의 자기 경험담을 들을 때나, 거리감이 들면서 멀어지는 동시에, 나의 위치가 훅 다가온다. 아, 나의 선택이지만 동시에 나의 선택이 아니기도 했구나. 내 마음대로 설정이지만, '청춘 모드'를 제대로 만들고 있는 비슷한 나이대의 또래들을 보면서, ‘보편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왠지 모를 이상한 감정이 드는 것이다. 정리되지 않은 외로움, 부지런하지 못한 부러움, 같은 그렇고 그런 마음들이, 드는 것이다.

아마도 이 미묘한 느낌은 거리를 좁혔다 넓혔다 할 것이고, 자꾸자꾸 부딪힐 것이다.

청소년운동은 운동을 함께하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떠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20대의 청소년운동, 대학생의 청소년운동,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운동을 말할 수 있을 때, 청소년활동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더 나눌 수 있을 때, 우리의 경계가 넓어지고 허물어지고, 새로운 틀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