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대학이란
혜원
대학은 내게 어찌 보면 ‘생존’의 문제였다. 딱히 착한 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상한 딸은 아니었던 내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청소년 운동을 한답시고 바동거릴 때, 부모님이 내걸었던 조건은 딱 한가지였다. 대학. 대학에 가지 않으면 더 이상의 금전적인 지원도, 서울에 가족이 남을 이유도 없다는 것. 게다가 그 당시 나는 늘 집에서의 탈출을 꿈꿨고, 대학은 집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뒷탈 없는 방법이었다.
대학에서 내가 얻고 싶은 배움은 무엇인지, 어떤 배움이 가능할지와 같은 고민들을 마주할 틈도 없이 대학에 지원을 했다. 그 후 나는 두 달 내내 내가 봐도 참 괜찮은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자기소개서랍시고 써내야 했으며, 이제껏 내가 동료들과 함께 해왔던 활동과 고민들을 가장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결과로, 그러니까 대학 입시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릴 만한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뻥치고 부풀리는데 재능이 있었는지 나는 지원했던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에 합격한 이후로 주변의 많은 것들이 변했다. 부모님의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어 그냥 대학생이 아닌 ‘명문대생’이라는 타이틀을 따냈고, 그를 빌미로 학교 다니기가 힘들다는 핑계를 적절히 섞어 부모님의 금전적인 지원 아래 ‘자취’라는 달콤한 자유도 확보했다. 공부 하기 싫다고 매번 툴툴 거렸지만 나는 질 높은 교육 서비스를 아주 손쉽게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겐 (지금처럼 개판 5분전의 학교생활이 3년 내내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먹고 살 만큼은 벌 기회를 제공해줄, 그래서 부모님이 그토록 바래왔던 ‘졸업장’도 생길 것이다. 지금이야 당장 먹고 살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잠시 잊고 살 뿐이지만 그 ‘졸업장’이라는 존재는 여차하면 꺼내 써 먹을 수 있는 무기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졸업장을 확보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행복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공백으로 열심히 뼈를 깎으며 남들보다 두 세배는 더 공들여 공부해도 따라잡기 힘든 수업은 한동안 아예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바쁜 친구들도 모두 제 시간에 해내는 과제도 내가 내키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그 조차도 잘 지키지 않았다. 강의실 보다 학교 근처 술집에서 친구들과 취해있는 날이 더 많았고, 수업보다 나의 개인적인 일정과 활동들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받았다. 교수님들의 오피스에 불려가 ‘상담’이라 불리는 것들을 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내 대학생활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개판 5분전’이다.
그래서 나는 생존했을까? 그래서 나는 행복한가? 아마 대학에 입학한 이후 내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일 것이다. 사실 대학에 온 것이 생존의 이유고 결과라고 말하는 이유는 부모님이 아닌 나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내가 이 세상에 발 딛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고,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대학을 준비하고 또 곧 대학생이 될 텐데 나만 뒤쳐지는 것 같은 불안함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내 삶을 책임 질 자신이 없어 대학을 핑계로 내가 책임져야할 것들을 유예하고 싶었던 게으름도 있었다. 대학이 싫다고 매번 불평해도 나는 대학을 담보로 내가 누리는 것들을 포기할 용기가 없다. 그래서 아직까지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안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분화된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학점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화려한 스펙이 차고 넘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나는 늘 후자였다. 사실 대학 졸업장이 ‘무기’라고 말했지만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졸업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졸업장인지가 더 중요하다. 만점에 가까운 학점과 다양한 스펙들, 봉사 활동 실적, 다양한 연구 성과 등이 고스란히 담긴 졸업장과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졸업장은 다르다. 겉으로 보기엔 모두가 잘났고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이 대학 안에서도 위계는 분명 존재했다.
대학 안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 어디에서든 사람들은 끊임없이 분화되고 구분된다. 대학에 합격 하던 당시 동료 활동가들은 학벌사회에 반대하며 대학을 거부하는 투명가방끈 운동을 한창 준비 중이었다. 나는 대학에 왔고, 그들은 대학을 거부했다. 대학이 생존의 문제였다고 말하기가 내 스스로도 고민스러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학을 가지 않는 선택 역시 생존의 문제였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대학에 온 나나, 대학을 거부한 너나 우린 모두 불행하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우리의 불행을 함께 묶기엔 내가 누리는 것이 너무 많다. 나와 친구들이 그토록 비판하고 거부했던 '학벌사회'를 유지하는 정점에 내가 서 있었다. 대학 생활이 행복하던 불행하던, 내 선택이었던 아니던 '명문대'를 욕망하고, 또 소비하면서 나는 이 학벌사회의 구조를 견고히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걸 인정하는데 꽤 오래 걸렸다. 내 존재 자체가 유감스러워 질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때로는 우리가 함께 해온 운동을 부정하고, 또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삶과 사유가 일치하지 않는 삶의 순간들이 사실은 더 많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벌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학벌 사회를 유지하는 위치에 끼인 존재 같다고 생각했다. 갖가지 욕망과 안일함과 불안함이 마구 뒤엉켜 나와 내 삶에 대한 사유가 너무나도 어려운 곳, 그곳이 지금 내가 겪어 내고 있는 대학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나는 정말 어디로 가야하나.
“나에게 대학이란” 이라는 질문
부제 : 쿨못미...
중휘
대학과 청소년운동, 이라는 주제 앞에서 나는 조금은 특수한 위치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청소년운동을 만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상적으로 꼰대들을 싫어하고 중고등학교때는 교사들과 매일같이 싸웠으며 한번은 학교를 비판하는 (사실상 괴벽서에 가까운) 대자보도 붙여보았던 경험도 있으니 청소년운동과는 약간이나마 닿아있기야 했겠다. 그래도 어쨌거나 운동을 시작했다, 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23살 때였다. 교육학을 전공하다보니 학교에 관심이 많았고, 이전의 관심사들 때문에 나는 학과 안에서는 소소하게나마 학생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하는 캐릭터였다. 그러다가 나보다 앞서 비슷한 루트로 청소년운동을 했던 선배를 만날 수 있었고, 그 선배에게 한 활동가를 소개받고, 그렇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운동을 ‘만날’ 수 있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소용없는 가정이지만, 아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결국은 활동을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는 훨씬 ‘모범적인’ 학생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사람은 합리적으로 설득해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차근차근 선동해야하는 존재다’라는 구절을 봤다. 저 말이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다면 나는 대학에 와서야 선동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대학에 와서 학생운동 비슷한 것을 하고, 집회에도 곧잘 나가게 되고, ‘이제는 조금 더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청소년운동에 진입할 수 있었다.
별로 재미도 없는 나의 개인사를 늘어놓는 이유는, 나에게도 여전히 (청소년운동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대학이라는 공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리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왕 “‘나에게’ 대학이란”이라는 질문을 받은 김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보았다. 물론 ‘대학’이라는 주제가 결코 개인적인 것으로만 이야기될 수는 없다는 것은 잘 안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특히 청소년운동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고 있다.
한동안 내가 다니는 대학과 아주 가까이에 있는 나의 동네를 언급하는 것도 꺼려했다(하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활동가들이 있어서 실패했다). 이렇게나 과장된 ‘떳떳하지 못함’은 꽤 우스울 뿐만 아니라 운동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여전히, ‘완전히’ 떳떳해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가끔 대학생인 청소년 활동가들에 대한 농반 진반의 비아냥이 오갈 때가 있다. 나는 나의 '특수함'때문에 그런 비아냥에 약간 빗겨 서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 대학에 와서 청소년 운동을 접했기에, 적어도 나는 대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 '공격'받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이때의 나는 '진정' 쿨하지는 못하다. 대학에 대한 반감은 (활동가가 아닌)여러 친구들에게도 있지만, 그 반감이 대학을 거부한 청소년활동가의 것일 때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때의 '반감'은 개인적인 감정이면서도 개인적인 것을 넘어선다는 느낌이 있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그래도 나에게 대학은 소중한 공간이다. 나는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역설적으로 청소년운동과도 만났다. 적어도 나만큼은 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학이 부정당한다고 해서 내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끼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학생 활동가에 대한 반감에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낄수밖에 없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그러면 나는 청소년운동을 왜하지?'라는 의문까지 들기도 한다. 물론 대학에 대한 이다지도 개인적인 감정을 굳이 활동 안에서 승인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 당혹감은 내가 청소년활동을 하면서는 안고 가는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당혹감'이 대학생인 청소년활동가들 사이에서 종종 공유되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이 역시 함께 이야기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 자리가 그런 자리일 것이라고 믿는다.
싫건 좋건 나는 대학에서 조직 당했다. 청소년활동이 이에 힘써야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누군가 또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에게 대학이란
혜원
대학은 내게 어찌 보면 ‘생존’의 문제였다. 딱히 착한 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상한 딸은 아니었던 내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청소년 운동을 한답시고 바동거릴 때, 부모님이 내걸었던 조건은 딱 한가지였다. 대학. 대학에 가지 않으면 더 이상의 금전적인 지원도, 서울에 가족이 남을 이유도 없다는 것. 게다가 그 당시 나는 늘 집에서의 탈출을 꿈꿨고, 대학은 집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뒷탈 없는 방법이었다.
대학에서 내가 얻고 싶은 배움은 무엇인지, 어떤 배움이 가능할지와 같은 고민들을 마주할 틈도 없이 대학에 지원을 했다. 그 후 나는 두 달 내내 내가 봐도 참 괜찮은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자기소개서랍시고 써내야 했으며, 이제껏 내가 동료들과 함께 해왔던 활동과 고민들을 가장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결과로, 그러니까 대학 입시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릴 만한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뻥치고 부풀리는데 재능이 있었는지 나는 지원했던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에 합격한 이후로 주변의 많은 것들이 변했다. 부모님의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어 그냥 대학생이 아닌 ‘명문대생’이라는 타이틀을 따냈고, 그를 빌미로 학교 다니기가 힘들다는 핑계를 적절히 섞어 부모님의 금전적인 지원 아래 ‘자취’라는 달콤한 자유도 확보했다. 공부 하기 싫다고 매번 툴툴 거렸지만 나는 질 높은 교육 서비스를 아주 손쉽게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겐 (지금처럼 개판 5분전의 학교생활이 3년 내내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먹고 살 만큼은 벌 기회를 제공해줄, 그래서 부모님이 그토록 바래왔던 ‘졸업장’도 생길 것이다. 지금이야 당장 먹고 살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잠시 잊고 살 뿐이지만 그 ‘졸업장’이라는 존재는 여차하면 꺼내 써 먹을 수 있는 무기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졸업장을 확보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행복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공백으로 열심히 뼈를 깎으며 남들보다 두 세배는 더 공들여 공부해도 따라잡기 힘든 수업은 한동안 아예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바쁜 친구들도 모두 제 시간에 해내는 과제도 내가 내키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그 조차도 잘 지키지 않았다. 강의실 보다 학교 근처 술집에서 친구들과 취해있는 날이 더 많았고, 수업보다 나의 개인적인 일정과 활동들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받았다. 교수님들의 오피스에 불려가 ‘상담’이라 불리는 것들을 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내 대학생활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개판 5분전’이다.
그래서 나는 생존했을까? 그래서 나는 행복한가? 아마 대학에 입학한 이후 내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일 것이다. 사실 대학에 온 것이 생존의 이유고 결과라고 말하는 이유는 부모님이 아닌 나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내가 이 세상에 발 딛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고,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대학을 준비하고 또 곧 대학생이 될 텐데 나만 뒤쳐지는 것 같은 불안함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내 삶을 책임 질 자신이 없어 대학을 핑계로 내가 책임져야할 것들을 유예하고 싶었던 게으름도 있었다. 대학이 싫다고 매번 불평해도 나는 대학을 담보로 내가 누리는 것들을 포기할 용기가 없다. 그래서 아직까지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안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분화된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학점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화려한 스펙이 차고 넘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나는 늘 후자였다. 사실 대학 졸업장이 ‘무기’라고 말했지만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졸업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졸업장인지가 더 중요하다. 만점에 가까운 학점과 다양한 스펙들, 봉사 활동 실적, 다양한 연구 성과 등이 고스란히 담긴 졸업장과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졸업장은 다르다. 겉으로 보기엔 모두가 잘났고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이 대학 안에서도 위계는 분명 존재했다.
대학 안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 어디에서든 사람들은 끊임없이 분화되고 구분된다. 대학에 합격 하던 당시 동료 활동가들은 학벌사회에 반대하며 대학을 거부하는 투명가방끈 운동을 한창 준비 중이었다. 나는 대학에 왔고, 그들은 대학을 거부했다. 대학이 생존의 문제였다고 말하기가 내 스스로도 고민스러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학을 가지 않는 선택 역시 생존의 문제였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대학에 온 나나, 대학을 거부한 너나 우린 모두 불행하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우리의 불행을 함께 묶기엔 내가 누리는 것이 너무 많다. 나와 친구들이 그토록 비판하고 거부했던 '학벌사회'를 유지하는 정점에 내가 서 있었다. 대학 생활이 행복하던 불행하던, 내 선택이었던 아니던 '명문대'를 욕망하고, 또 소비하면서 나는 이 학벌사회의 구조를 견고히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걸 인정하는데 꽤 오래 걸렸다. 내 존재 자체가 유감스러워 질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때로는 우리가 함께 해온 운동을 부정하고, 또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삶과 사유가 일치하지 않는 삶의 순간들이 사실은 더 많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벌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학벌 사회를 유지하는 위치에 끼인 존재 같다고 생각했다. 갖가지 욕망과 안일함과 불안함이 마구 뒤엉켜 나와 내 삶에 대한 사유가 너무나도 어려운 곳, 그곳이 지금 내가 겪어 내고 있는 대학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나는 정말 어디로 가야하나.
“나에게 대학이란” 이라는 질문
부제 : 쿨못미...
중휘
대학과 청소년운동, 이라는 주제 앞에서 나는 조금은 특수한 위치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청소년운동을 만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상적으로 꼰대들을 싫어하고 중고등학교때는 교사들과 매일같이 싸웠으며 한번은 학교를 비판하는 (사실상 괴벽서에 가까운) 대자보도 붙여보았던 경험도 있으니 청소년운동과는 약간이나마 닿아있기야 했겠다. 그래도 어쨌거나 운동을 시작했다, 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23살 때였다. 교육학을 전공하다보니 학교에 관심이 많았고, 이전의 관심사들 때문에 나는 학과 안에서는 소소하게나마 학생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하는 캐릭터였다. 그러다가 나보다 앞서 비슷한 루트로 청소년운동을 했던 선배를 만날 수 있었고, 그 선배에게 한 활동가를 소개받고, 그렇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운동을 ‘만날’ 수 있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소용없는 가정이지만, 아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결국은 활동을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는 훨씬 ‘모범적인’ 학생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사람은 합리적으로 설득해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차근차근 선동해야하는 존재다’라는 구절을 봤다. 저 말이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다면 나는 대학에 와서야 선동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대학에 와서 학생운동 비슷한 것을 하고, 집회에도 곧잘 나가게 되고, ‘이제는 조금 더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청소년운동에 진입할 수 있었다.
별로 재미도 없는 나의 개인사를 늘어놓는 이유는, 나에게도 여전히 (청소년운동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대학이라는 공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리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왕 “‘나에게’ 대학이란”이라는 질문을 받은 김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보았다. 물론 ‘대학’이라는 주제가 결코 개인적인 것으로만 이야기될 수는 없다는 것은 잘 안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특히 청소년운동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고 있다.
한동안 내가 다니는 대학과 아주 가까이에 있는 나의 동네를 언급하는 것도 꺼려했다(하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활동가들이 있어서 실패했다). 이렇게나 과장된 ‘떳떳하지 못함’은 꽤 우스울 뿐만 아니라 운동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여전히, ‘완전히’ 떳떳해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가끔 대학생인 청소년 활동가들에 대한 농반 진반의 비아냥이 오갈 때가 있다. 나는 나의 '특수함'때문에 그런 비아냥에 약간 빗겨 서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 대학에 와서 청소년 운동을 접했기에, 적어도 나는 대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 '공격'받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이때의 나는 '진정' 쿨하지는 못하다. 대학에 대한 반감은 (활동가가 아닌)여러 친구들에게도 있지만, 그 반감이 대학을 거부한 청소년활동가의 것일 때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때의 '반감'은 개인적인 감정이면서도 개인적인 것을 넘어선다는 느낌이 있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그래도 나에게 대학은 소중한 공간이다. 나는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역설적으로 청소년운동과도 만났다. 적어도 나만큼은 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학이 부정당한다고 해서 내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끼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학생 활동가에 대한 반감에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낄수밖에 없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그러면 나는 청소년운동을 왜하지?'라는 의문까지 들기도 한다. 물론 대학에 대한 이다지도 개인적인 감정을 굳이 활동 안에서 승인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 당혹감은 내가 청소년활동을 하면서는 안고 가는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당혹감'이 대학생인 청소년활동가들 사이에서 종종 공유되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이 역시 함께 이야기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 자리가 그런 자리일 것이라고 믿는다.
싫건 좋건 나는 대학에서 조직 당했다. 청소년활동이 이에 힘써야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누군가 또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