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수능과 입시의 환상을 걷어내야 한다
- 포항 지진 이후 수능 연기 사태에 대해
지난주, 예정되어 있던 대학수학능력시험 바로 전날에 경북 포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피해를 입으면서 수능 시험이 한 주 연기되었다. 그대로 충격과 불안과 위험 속에서 시험을 강행하지 않고, 시험장을 정비하고 조금이라도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수능을 연기하기로 정부가 결정한 것은 다행스럽다. 동시에 우리는 이번 지진에서 더 명백하게 드러난 문제들도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수능 직전에 일어난 지진과 그 이후 수능 연기가 결정된 과정, 그리고 이에 관해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수능 시험으로 상징되는 입시교육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공정한 시험’이라는 환상
지진 발생 직후, 큰 피해를 입은 포항 지역의 수험생들에게는 수능 시험을 강행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렇다면 다른 경우들은 어떠한가. 예컨대 수능 때 병에 걸리거나 갑자기 사고를 당한 수험생들은 ‘공정하게’ 시험을 치른 것인가.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그런 경우를 개인적 불행 정도로 가벼이 여기거나 심지어는 자기 관리를 잘하지 못한 수험생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면서 수능 시험의 ‘공정성’이라는 환상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는 단지 규모의 문제일 뿐이었다. 이번 지진의 경우처럼 수험생 수천 명이 ‘불운한’ 상황에 처하자, 더이상 이를 작은 일로 치부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수능 시험을 비롯한 입시는 사회적 문제와 차별, 우연이 겹쳐있는 것을 개인의 노력, 개인의 사정인 양 보이도록 하는 기나긴 세뇌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애초에 수십만 명이 일제히 치르는 시험으로 사람들을 줄세우고 교육에서 차별을 두는 것이 ‘공정하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임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시험을 위해 수십만 수백만 명의 학생들을 시험 준비에 매진하게 하는 것은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방식이기도 하다.
포항 지진 이후 수능 시험을 두고 일어난 일련의 혼란은, 시험과 그 결과를 가지고 개인의 진로와 인생, 교육권을 좌우하는 시스템이 잘못된 것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공정한 경쟁’, ‘객관적 평가’, ‘변별력’ 등 기존 입시경쟁체제의 전제를 버리고, 각자의 교육권을 실현하고 보장하기 위한 다른 관점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입시가 기르는 비인간성
수능 시험 연기가 결정되면서 수험생들 일각에서는 ‘포항 한 지역 때문에 전체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고 피해를 입어야 하는가’ 하는 불만이 나왔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결정되어 있던 시험 일정에 맞춰서 긴 시간 준비하고 컨디션 조절을 해왔기에, 갑작스러운 수능 시험 연기 결정에 당황하고 불편해하는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진 피해라는 재난이 일어났는데도 자신들의 불편함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세태는 씁쓸하다.
그러나 이는 수험생 개개인의 인격의 문제라기보다는 넓게는 입시경쟁과 차별, 좁게는 상대평가식 수능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과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고등학교에서는 그런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한다거나, 경쟁자가 300명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례가 없지 않았다. 입시경쟁교육 속에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거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로 평가받았고, 학생들은 같은 세대의 동료 시민들을 경쟁자로 보도록 강요받아왔다.
이처럼 시험 결과와 출신 학교로 사람의 가치를 가르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입시교육은 생존과 성공을 위해 인간성을 훼손시키는 과정이다. 이런 반(反)교육적 교육이 길러낸 것이 지진 피해보다도 자신의 시험 컨디션과 불편함을 앞세우는 반응이고, 지진 피해를 입은 수험생들을 밟고 올라가야 할 경쟁자로 보는 태도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토양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받고 있는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야 한다
수능 시험은 눈에 보이는 뚜렷한 점수와 등수를 도출해 준다는 점에서 ‘공정한’ 입시 제도인 것처럼 여겨져왔다. 그러나 이번 포항 지진을 거치면서 이러한 일제고사 방식의 입시가 가진 취약점이 분명하게 부각되었다. 수능 연기 결정에 피해를 입었다고 받아들이고 재난 피해자를 탓하는 일부의 모습은 경쟁교육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고 단절시키는 폐단의 증거였다.
우리는 새로운 교육 체제를 지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지반부터 새롭게 골라야 할 것이다. 시험이 아니라 사람을 우선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공정한 경쟁’이나 ‘선발의 변별력’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교육권 보장이 교육의 출발점이자 목표가 되어야 한다. 몇 번의 시험 성적이 삶을 좌우하기에 시험 준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체제가 아니라, 수험생들을 줄 세우고 대학이 편의에 따라 선발하는 체제가 아니라, 더 많은 도전과 변화가 용인되고 사람들의 다양한 선택이 존중받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지진은 우연한 재해이지만, 지진으로 인해 우리 사회와 교육 체제는 그 필연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제 우리는 그 문제점을 외면하지 말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2017년 11월 22일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논평]
수능과 입시의 환상을 걷어내야 한다
- 포항 지진 이후 수능 연기 사태에 대해
지난주, 예정되어 있던 대학수학능력시험 바로 전날에 경북 포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피해를 입으면서 수능 시험이 한 주 연기되었다. 그대로 충격과 불안과 위험 속에서 시험을 강행하지 않고, 시험장을 정비하고 조금이라도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수능을 연기하기로 정부가 결정한 것은 다행스럽다. 동시에 우리는 이번 지진에서 더 명백하게 드러난 문제들도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수능 직전에 일어난 지진과 그 이후 수능 연기가 결정된 과정, 그리고 이에 관해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수능 시험으로 상징되는 입시교육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공정한 시험’이라는 환상
지진 발생 직후, 큰 피해를 입은 포항 지역의 수험생들에게는 수능 시험을 강행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렇다면 다른 경우들은 어떠한가. 예컨대 수능 때 병에 걸리거나 갑자기 사고를 당한 수험생들은 ‘공정하게’ 시험을 치른 것인가.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그런 경우를 개인적 불행 정도로 가벼이 여기거나 심지어는 자기 관리를 잘하지 못한 수험생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면서 수능 시험의 ‘공정성’이라는 환상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는 단지 규모의 문제일 뿐이었다. 이번 지진의 경우처럼 수험생 수천 명이 ‘불운한’ 상황에 처하자, 더이상 이를 작은 일로 치부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수능 시험을 비롯한 입시는 사회적 문제와 차별, 우연이 겹쳐있는 것을 개인의 노력, 개인의 사정인 양 보이도록 하는 기나긴 세뇌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애초에 수십만 명이 일제히 치르는 시험으로 사람들을 줄세우고 교육에서 차별을 두는 것이 ‘공정하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임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시험을 위해 수십만 수백만 명의 학생들을 시험 준비에 매진하게 하는 것은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방식이기도 하다.
포항 지진 이후 수능 시험을 두고 일어난 일련의 혼란은, 시험과 그 결과를 가지고 개인의 진로와 인생, 교육권을 좌우하는 시스템이 잘못된 것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공정한 경쟁’, ‘객관적 평가’, ‘변별력’ 등 기존 입시경쟁체제의 전제를 버리고, 각자의 교육권을 실현하고 보장하기 위한 다른 관점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입시가 기르는 비인간성
수능 시험 연기가 결정되면서 수험생들 일각에서는 ‘포항 한 지역 때문에 전체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고 피해를 입어야 하는가’ 하는 불만이 나왔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결정되어 있던 시험 일정에 맞춰서 긴 시간 준비하고 컨디션 조절을 해왔기에, 갑작스러운 수능 시험 연기 결정에 당황하고 불편해하는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진 피해라는 재난이 일어났는데도 자신들의 불편함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세태는 씁쓸하다.
그러나 이는 수험생 개개인의 인격의 문제라기보다는 넓게는 입시경쟁과 차별, 좁게는 상대평가식 수능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과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고등학교에서는 그런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한다거나, 경쟁자가 300명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례가 없지 않았다. 입시경쟁교육 속에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거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로 평가받았고, 학생들은 같은 세대의 동료 시민들을 경쟁자로 보도록 강요받아왔다.
이처럼 시험 결과와 출신 학교로 사람의 가치를 가르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입시교육은 생존과 성공을 위해 인간성을 훼손시키는 과정이다. 이런 반(反)교육적 교육이 길러낸 것이 지진 피해보다도 자신의 시험 컨디션과 불편함을 앞세우는 반응이고, 지진 피해를 입은 수험생들을 밟고 올라가야 할 경쟁자로 보는 태도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토양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받고 있는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야 한다
수능 시험은 눈에 보이는 뚜렷한 점수와 등수를 도출해 준다는 점에서 ‘공정한’ 입시 제도인 것처럼 여겨져왔다. 그러나 이번 포항 지진을 거치면서 이러한 일제고사 방식의 입시가 가진 취약점이 분명하게 부각되었다. 수능 연기 결정에 피해를 입었다고 받아들이고 재난 피해자를 탓하는 일부의 모습은 경쟁교육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고 단절시키는 폐단의 증거였다.
우리는 새로운 교육 체제를 지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지반부터 새롭게 골라야 할 것이다. 시험이 아니라 사람을 우선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공정한 경쟁’이나 ‘선발의 변별력’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교육권 보장이 교육의 출발점이자 목표가 되어야 한다. 몇 번의 시험 성적이 삶을 좌우하기에 시험 준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체제가 아니라, 수험생들을 줄 세우고 대학이 편의에 따라 선발하는 체제가 아니라, 더 많은 도전과 변화가 용인되고 사람들의 다양한 선택이 존중받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지진은 우연한 재해이지만, 지진으로 인해 우리 사회와 교육 체제는 그 필연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제 우리는 그 문제점을 외면하지 말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2017년 11월 22일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