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차별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불복종선언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고 권리를 요구하는 권리선언
대학입시거부선언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의 거부는 그저 대학을 안 가겠다는 선택이 아니다. 지금의 입시가, 대학이, 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잘못되었음을, 온몸으로 외치는 것이다. 일단 그래도 대학은 가고 보라는 유예의 주문에 맞서, 지금 여기서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교육에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혀만 차지 말고, 지금부터 같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손을 내미는 몸짓이다.
우리는 낙오자라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거부가 낙오가 아니라 온전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기에, 우리는 거부라는 길을 택한다. 잘못된 쪽은 우리가 아니다. 획일적인 경쟁에서 밀려난 누군가는 불행해져야만 하고, 그래서 모두가 불안과 불행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이 사회이다.

- 2011년 대학입시거부 선언문 中



대학입시거부선언은 경쟁과 차별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불복종선언]입니다.
입시경쟁교육 그리고 대학을 거부하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을 통해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라며 대학을 압박하는 사회가 문제임을 알리며,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낙오자’라 비하 하는
학력학벌 차별사회에 변화를 요구합니다.
 
또한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과 지원을 찾기 힘든 대학중심의 사회에서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고 권리를 요구하는 [권리선언]이기도 합니다.

대학입시거부선언으로 가방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 모두의 다양한 삶이 존중받는 교육과 사회를 함께 만들어요!


투명가방끈들의 외침

사진을 클릭하면 역대 거부선언문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대학중심주의' 사회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인생이 무너질 거라고들 하고,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재촉을 받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 헷갈려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오늘 우리와 같은 청소년들 수십 만 명이 대학수학능력평가, 수능시험을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그 시험은 대학에서 배울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 아니라 수십만명을 점수로 등급으로 줄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걸.


학교는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대학이다. 학교는 가고 싶은 학과에 맞춰 스펙을 쌓으라고 말하고 그에 맞는 스펙을 쌓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 전에 필요한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미래에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도와주지 않고,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대학거부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무슨 거창한 꿈이 있느냐?’, ‘대학을 거부하고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느냐?’ 그러나 당연하게도, 대학거부가 행복의 보증수표는 아닙니다. 남다른 꿈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어서 대학을 가려 하는지, 과연 우리는 대학 덕분에 행복한지.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대학에 가는 것을 꿈으로 삼으라고 하고, 그렇지 않을 거면 너의 꿈이나 행복을 증명해보라며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입시만을 위한 공간인 학교에서 나는 거부 당해왔다. 교실은 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앞으로도 이 사회에서 거부당하는 자리에 있을 것이다. 오늘로써 내가 탈락하지 않는 소수가 되기란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나는 거부당하는 위치에서 이 사회의 학벌에 의한 부조리들을 거부하며, 모두가 탈락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꿈꿀 것이다.


우리에겐 다양한 가능성을 꿈꾸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 소위 ‘정상적’이라는 삶의 궤도는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모두에게 가능하지도 않다. 정상에서 벗어난 삶의 모습을 선택하더라도 안전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입시를 거부한다는 우리의 외침은 거부에 따르는 모든 차별과 불안까지 감당하겠다는 이야기로 오독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는 개개인의 다양한 선택을 존중하고 불안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 선택에 따른 불안과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떠미는 사회는 무책임하다. 


세상은 우리를 가리켜 멈춰 버렸다고, 뒤처졌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멈춘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처럼 여겨집니다. (..) 대학을 가지 않는 삶을 손쉽게 부정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삶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 이기는 것 바깥의 고민들,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무엇인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가치 있는 삶의 요소는 무엇인지. 우리는 이러한 고민들을 되찾아 오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멈추는 이유입니다.


대학 안 가도 좀 살만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가끔 수능 시험 다시 봐볼까 고민하는 내가 내년엔 수능 고민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애초에 좋은 대학을 가야만 빈곤이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단 게 이상합니다. 대학을 거부해도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나는, 대학을 거부합니다.


코로나 시대에도 입시로부터의 해방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지만, 고3의 삶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시험 결과가 인생을 가르며, 대학에 가지 않는 삶이야말로 이 사회에선 ‘위험’한 것이니까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안전’은 없었습니다.

2021 입시 경쟁 반대 청소년 선언


올해엔 투명가방끈 10주년을 맞아 활동을 돌아보고 방향을 확인하는 행사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2021 대학입시거부선언 대신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를 포함한 14개 청소년인권단체들이 모여 <청소년은 입시 대박이 아니라 입시 폐지를 원한다!> 입시 경쟁 반대 청소년 선언을 진행했습니다. 

FAQ

자주 묻는 질문/오해

A. 투명가방끈 활동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대학입시라는 룰이 자기에게 불리해서 떼를 쓴다는혹은 열등생들의 열폭(열등감 폭발)이거나 자기합리화라는 식의 주장이죠대학/입시거부 선언자들이 공부를 못하고하기 싫어하는 것은 일부분 사실이기도 합니다더 좋은 대학과 더 안정적인 직장만을 위해서시험보고 비교하고 경쟁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하고 싶지 않고이런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활동이기도 하니까요.

 어떤 사람이 지금의 사회는 잘못되었다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할 때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보다그 발언을 누가 했는지를 궁금해 합니다그리고 사회에서 인정하는 스펙과 성적이 되는 사람인지를 따집니다그래서 성실하게 입시를 위해 경쟁하고그 안에서 승리한 자만이 대학 입시 시스템의 부조리함에 대해 발언할 수 있다고 말하지요반면에 수능성적이나 어느 대학 합격자혹은 어느 대학교 학생이라는 지표 자체를 거부한 사람들에게는 떼쓴다’, ‘열폭한다는 평가를 내립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대개 성적이 상위권이거나 상위권 대학을 다니던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또 배가 불러서 그런다고 욕을 하곤 하더군요.)


 한편으로는 투명가방끈의 활동에 좀 우호적인 이들의 경우실력을 갖추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운동을 위해서도 설득력 있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하지만 투명가방끈에서는 경쟁을 통해 획득한 좋은 성적좋은 스펙이 발언력이 되는 것 또한 지금의 경쟁 시스템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일단 입시경쟁에 순응한 뒤에 문제제기하는 방식이 아니라전면적으로 거부하는 행동을 통해 현재의 대입시스템과 경쟁교육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습니다.

A. 대학에 진학할지진학하지 않을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한 개인이지만이 결정에는 너무나도 많은 사회적 시선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개입하고 있습니다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학문에 대한 의지와 흥미가 있는 이들을 위한 곳이 아닌취업을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 들어서야 할 관문이 되었습니다경쟁을 벗어난 곳에는 어떤 사회 안전망도 없는 현실 속에서많은 청소년들이 대학입시를 위한 경쟁에 전념하는 것이 모두가 가는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사회의 압박에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입시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이런 사회에서 다른 선택지는 불안정한 오늘과 내일을 감수해야 함을 뜻합니다. ‘대학 진학이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며의무와 강제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체로 대학/입시를 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은사회의 학력학벌차별과 입시경쟁 시스템에 대한 불복종의 의미를 가집니다지금의 불합리한 구조에 불복종의 방법으로 문제제기하고구조를 바꿀 것을 요구하기 위해 굳이 많은 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대학/입시를 거부한다는 액션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A. 아등바등 경쟁해서 대학에 가거나 취업전선에 뛰어들지 않아도 될 만큼 풍족한 자원을 가지고 있거나대학/입시 거부 이후에도 아무런 부자유 없이 살아갈 만한 살 길이 있는 이는 지금 투명가방끈에 없습니다그리고그것이 투명가방끈의 운동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굳이 불안정한 삶을 선택하고 이를 선언하는 것은 경쟁을 내려놓고 오늘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안정적 내일에 대한 대안을 사회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투명가방끈은 사회가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해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에 쫒기지 않을 수 있도록 할 것을 요구합니다.

A.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거나대학에서 뛰쳐나온 이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와대학의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는 다른 영역의 것입니다저마다 그 역할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대학/입시거부자들은 입시를 거부한 사람대학으로부터 벗어난 이들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또대학을 둘러싼 문제는 비단 특정한 어떤 대학의 문제나 대학에서만 일어나는 대학만의 문제가 아닙니다사회의 학력학벌주의그리고 경쟁적인 삶은 대학 내부에서 만들어내는 문제도대학 안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도 아닙니다. ‘명문대를 위한 경쟁적 교육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되는 취약한 사회안전망에서 비롯되었고사회는 대학입시 전 뿐만이 아니라 대학 안에서직장에서사회에서 계속 경쟁을 요구하며 개인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투명가방끈의 대학입시거부 운동은 대학입시를 향한 경쟁적이고 반인권적인 교육을 문제제기의 시작으로 삼았지만대학문제와 맞닿아 있는 대학 안팎의 여러 사회 구조와 인식을 바꿔나가고자 합니다.

A. 투명가방끈에서는 대학을 모두 없애자거나모든 사람이 대학에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고등학문을 위한 교육기관은 사회에 필요한 것이고대학이 이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하지만 경쟁과 선별을 통해서 살아남은 강자에게만 학문의 기회가 주어지는 형태인 현재 대학의 모습에는 반대합니다.

 모두가 서로 다른 이유로 대학에 갈 것을혹은 대학에 가지 않을 것을 결정합니다물론이 결정은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다만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삶은 곧 불안정한 삶이 되어버리는 지금의 사회에서경쟁하지 않으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는 교육제도 속에서는 대학을 거부한다는 결정은 제대로 존중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대학에 가는 결정이 존중받는 것만큼대학에 가지 않는 결정 또한 존중되어야 합니다진정으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대학에 가지 않아도 불안감 없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꾸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A. 대학/입시거부라는 행동은 투명가방끈의 주장을 사회에 알리고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한 하나의 액션이고 행동 방식입니다직접적이고 실제적인 거부뿐만이 아니라 다른 방법들로도 투명가방끈의 주장에 동의를 표시하고 지지해주고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투명가방끈은 학력주의학벌주의그리고 삶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경쟁적 사회를 바꿔내고 싶은 분들 모두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A. 경쟁이 필요한 분야가 있을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운동 경기 같은 경우팀이나 개인간의 경쟁을 중심으로 룰이 짜여 있고이가 재미의 한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가끔은 성과의 향상을 위해 경쟁을 일시적으로 도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투명가방끈은 세상의 모든 경쟁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하지만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일 하고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전부 경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입시경쟁은 쉽게 점수로 나타낼 수 있는 학문만을 강요하거나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여러 가지를 억지로 수치화해서 줄 세우고 있습니다예를 들어자연과학과 인문학은 전혀 다른 영역의 학문이지만 지금의 교육과정에서는 성적에 따라 학과와 전공이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국영수를 비롯한 전체 교과의 등수가 어떤 사람의 흥미나 적성을 말해주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이런 식의 경쟁은 삶의 전반적 부분에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하며 불안만을 낳을 뿐입니다.

 재미혹은 더 나은 결과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은 경쟁이그 결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쉽게 좌지우지 할 수 있게 한다면 이는 본말전도이지 않을까요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과도하게그리고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경쟁은 없어져야 합니다.

A. 대학입시거부가 과격하다공감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대학에 가지 않는 선택을 한 사람들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 불편하다.”는 말과 비슷합니다대학입시거부선언이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사건임은 분명하고개인적 차원의 대학거부수능거부와는 달리 집단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 있어서 더욱 파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하지만 대학입시를 거부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그만큼 입시경쟁이나 학력학벌주의가 견고하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기존의 구조가 견고한 만큼사회의 주목을 이끌어내고 담론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강한 액션을 통해 근본적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면액션이 과격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투명가방끈에서는 대학입시거부와 더불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주장을 풀어내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투명가방끈의 주장에 동의하고 대학입시거부행동에 동참한 사람들은 분명 공감을 통해 참여하게 되었으니까요.

A. 김예슬씨의 대학거부 때부터 대학거부가 화제가 될 때마다 그것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어떠한 정치적 세력이 배후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는 계속 나왔습니다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통해 자기주장을 할 때, ‘배후설이 등장하는 것은 그 개인을 의사 표현 능력이 없는 미숙한 존재로 보고그렇기에 그 행동을 가치 없는 것으로 폄훼하기 위한 주장입니다그리고 여기서 이 미성숙한 존재는 순수해야 하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억압을 받게 됩니다. ‘다른 정치적 목적없이 순수하게’ 사회의 문제를 바꿔내려 한다뭔가 말이 이상합니다대학과 입시를 거부하겠다는 우리의 선언은 그 자체로 정치적입니다지금의 교육과 사회의 모습에 문제를 제기하고이를 바꿔나가자고 요구하는 것이니까요투명가방끈의 활동은 배후조종이 아닌 자발적 참여에 의해 이뤄지지만정치적 의도가 충만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A. 대학입시거부 활동을 지지해 주시는 분들로부터 이런 느낌의 격려를 받기도 합니다. “빌 게이츠가 대학도 안 나왔지만 성공한 CEO가 되었고..” 와 같은 성공담을 기대하는 것이지요하지만 공부나 성적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성공사례를 이뤄내는 것은 투명가방끈이 원하는 사회의 모습은 아닙니다이는 결국 모두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냅니다경쟁이라는 구조의 특성상 누군가 상위권이 된다면 누군가는 하위권이 됩니다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가 만들어 낸 불안정한 삶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전가시키게 되는 거죠투명가방끈의 운동은 다른 길의 특출한 성공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바랍니다.